바다 51

애국가처럼 거룩한 자태, 추암 촛대바위_20210630

해암정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제자를 가르치며 생활할 때 지은 정자로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처음 짓고,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광이 다시 지었다. 심동로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였는데, 고려말의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다가 권력을 잡고 있던 간신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왕은 그를 말렸으나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리면서 결국 허락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을 제외한 3면은 모두 4척 정도의 높이까지 벽을 만들고 모두 개방하였다. 이곳에는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들러 남긴 '초합운심경전사(草合雲深逕轉斜)'라는 글..

매력의 고유명사, 장호항_20210630

장호항(莊湖港)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리에 있는 어항이다.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관리청은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 시설관리자는 삼척시장이다. 장호항은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등처럼 생긴 부분에 위치하며, 본 항이 위치한 장호리는 항의 형상이 장오리와 흡사해서 장울리, 장오리라고 부르다가 장호리가 되었다. 장호항은 방파제가 있어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항으로 1973년 기본시설계획을 수립했으며 1993년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현재의 안정된 항세를 갖추게 되었다. 수로부인 설화로 유명한 헌화가의 발원지로 나폴리형 해안선이 있어 동양의 나폴리라고 부른다. 장호리 당두산 연안에 내장오, 외장오가 있어 깊은 어항으로 어족이 풍..

구름도 연모한 수로부인 헌화공원_20210630

수로부인 헌화공원 임원항 뒤편 남화산 정상에 위치한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헌화가'와 '해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이다.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꺾어다가 바치고, 가사를 지어 바친 것이 4구체 향가인 '헌화가'다.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 갔는데,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자 다시 수로부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신라가요인 '해가'다. 공원에는 이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조성돼 있다. 이와 함께 산책로, 데크로드,..

강릉 가는 길_20210629

동해, 삼척 가는 길,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굵은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대관령을 지나자 다른 세상인 양 화창하다. 피서를 대신한 이번 여름 마지막 여정은 당초 계획했던 담양/순창을 대신하여 급하게 날조한 계획이지만 대신 처음 가보는 여행지를 끼워 충분히 심적 보상이 되리라. 횡계를 지나 대관령터널에 진입하기 전, 마치 영화 mist를 연상시키는 연무가 자욱했다. 대관령 터널 하나를 지나 동해 바다가 보일 것만 같음에도 두터운 운무로 영동지방 날씨를 예측할 수 없었다. 동해바다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6 터널에 진입하기 전, 7 터널 중 어찌 보면 제대로 된 마지막 터널인 셈이다. 강릉이 가까워지자 한순간 운무는 걷히고 화창한 하늘을 드러냈다. 동해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옥계 방면으로 운행 중인..

안개속으로, 죽변_20210614

동해의 매력을 시기한 포세이돈이 짙뿌연 안개 장막을 덮어 고이 자취를 감춘 눈부심이 이따금 손을 흔든다. 꽤 오래된 드라마 세트장이지만 컨텐츠는 빛을 바래도 바닷가에 의지한 한 뼘 작은 공간은 어쩌면 영원을 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주에서 부지런히 달려 늦지 않게 죽변에 도착했고, 익숙한 동네에 들른 것처럼 주차한 뒤 바로 바닷가 작은 절벽 위 드라마 세트장으로 향했다. 몇 번 찾아왔던데 비해 다른 가족들은 처음이라 울진에 온 김에 새로 개통한 36번 국도와 가까운 죽변으로 왔고, 죽변의 명물인 드라마세트장은 꽤 오래전 컨텐츠임에도 드라마는 대부분 잊혀졌지만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주위 풍광과 한데 묶여 여전히 명소로 남아 잘 보존되고 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요상한 구조물이 생긴 걸 보면 조만간 모노레일..

재즈 선율 같은 석양 자락, 선유도_20200905

평이한 두 개가 모여 각별한 하나로, 단조로운 바다와 흔하디 흔한 바위산이 만나 세상 하나 뿐인 자태, 그 모습이 보는 시점과 지점에 따라 다른 옷으로 단장했다. 만약 두 바위 돌기가 서로 시기했다면 그 모습이 남달랐을까? 고립의 아픔에서 서로 의지하며 고단한 바다 한가운데 생존하는 숙원을 조화롭게 이룬 경관이, 그래서 절경일 수밖에 없다. 대장도를 떠나기 전, 뿌연 대기 사이 다음 목적지인 망주봉 방향을 바라봤다. 때론 옅은 안개도 고마울 때가 있다.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미운 오리 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날 수 있는 전경이었다. 대장도에서 차로 이동하여 선유도에 도착, 주차된 차들이 길 양 편에 늘어서 주차는 물론이거니와 통행조차 쉽지 않았다. 망주봉을 지나 선유도 해변의 끝이 보일..

바다와 섬이 그린 그림, 고군산도/대장도_20200905

섬들이 이토록 사이좋게 나고 자라는 곳을 밟으며 먹먹한 가슴을 밀어내 눈이 포근했던 섬 여행. 사소하게 물결치는 획 하나에도 저미는 가슴을 다독이며 한 발 한 발 걸어 올라가 끝내 다스렸던 기대감을 벗어던지는 쾌감은 그 어디에 비유할 바 없었다. 망망대해에 기댄 섬들은 작은 소품처럼 미약하지만 늘 같은 모습의 바다와 달리 시시각각 소박한 옷을 갈아입는 품새는 꼬깃꼬깃 접었던 종이학이 나래를 펼치며 고이 품었던 스펙트럼을 승천시키는 날갯짓이다. 화려하다고 해서 아름다울 거란 핀잔을 애써 삼키며 섬과 계절이 어우러져 감탄의 파도가 덩실거렸다. 가던 날, 안개가 뿌옇게 끼어 시야가 그리 트이지 않았지만 자연이 나에게 맞출 수 없으니 다음 기회를 설렘에 맡기자. 김제 사는 동생을 만나 군산에서 소주 한 잔 뽀개..

나른한 진풍경, 송지호_20200414

화진포에서 다시 남쪽 방면을 향해 7번 국도의 매끈한 직선을 따라 출발, 송지호의 평온에 이끌려 옆길로 샜다. 텅 빈 해변에 발을 들여 걷기 힘든 고충도 잊고 바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다내음 짙은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시야가 뻥 뚫리는 기분, 동해의 매력엔 가희 반할만하다. 파도가 해변을 집어삼킬 듯 돌격해 오다 해변의 평온에 중화되어 급격히 잠잠해진다. 큰 파도에 아슬아슬한데도 갈매기들은 아랑곳 않고 태연하다. 가끔 녀석들끼리 침묵을 깨는 장난과 울음소리가 들리다가도 이내 다시 찾아온 평온. 한 마리 갈매기의 비상, 미친 듯 부딪히는 파도와 미동도 하지 않는 죽도,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고깃배... 몽환적이다. 바다에 죽도란 섬이 있는데 이 섬을 돌아온 파도가 죽도와 해변 사이에서 서로 맞부딪히는 게 ..

나른한 봄의 평화, 화진포_20200414

파도와 바람은 지치지도 않는다. 허나 그 선율은 치유의 유전자가 있어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음에 대한 위로를 해주며 동시에 왔던 길을 고스란히 바라고 떠날 응원도 빼놓지 않는다. 세상에서 발자취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무수히 많아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시간의 감회를 자근히 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정의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의 스승인지 통감한다. 내가 떠나더라도 자연은 무심하게도 안색 조차 변하지 않지만 또한 다시 만나더라도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하며, 언제나 변치 않는 신뢰로 회답한다. 요란한 믿음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한낯 휘영청한 거품일 뿐. 숙소에서 출발 준비를 모두 끝내고 베란다에 나와 전날 거대한 암흑과도 같던 바다가 전날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

둔중한 밤바다, 고성 대진해변_20200413

모두가 잠든 가운데 홀로 깨어 밤새 분주한 파도는 적막을 집어삼킨 채 지칠 줄 모른다. 그럼에도 소음이 아닌 자장가로 거듭나 긴 여정의 끝에 경직된 신체를 이완시켜 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행복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밤이다. 밤에 도착하여 처음 맞는 적막에 밤 산책은 접고 숙소 베란다에 나와 쉴 새 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이따금 창 너머에 반짝이는 등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휴전선과 접경 지역이라 늦은 밤이면 출입이 통제되는 해변은 환한 불빛만이 자리를 지키고, 이따금 비치는 등대 불빛이 불현듯 외로움을 알려줬다. 이러한데 해변 앞 작은 섬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독한 고독에 시달렸을까? 오래된 시설이라 내부에 오래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특히나 주방기구들은 낡은 데다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