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 9

나무와 동물숲을 떠나며_20200507

가뜩이나 더위가 성급한 대구에서 하루 차이로 서울과 완연히 다른 계절의 파고를 실감한다. 숲 속에 은둔한 숙소를 이용한 덕에 생각지도 못한 애증의 생명들을 만나던 날, 가련함이 교차하여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거리를 활보하는 공작이 이색적이긴 하다. 오전 느지막이 봇짐을 챙겨 떠나는 길에 숙소에서 마련한 차량을 거절하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애니멀밸리를 관통하게 되는데, 고도가 가장 높은 숙소에서 차량이 있는 입구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반대로 지속된 내리막이라 이른 더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아 꼼꼼히 둘러보기로 한다. 프레리독. 사진도 충분히 귀엽지만 실제 녀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더 귀엽다. 카피바라? 한길을 중심으로 꼬불꼬불 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익살맞은 귀염둥..

숲 속 호텔의 이색적인 경험_20200505

신천지 코로나 사건으로 홍역을 앓은 대구에 무수히도 많은 시민들이 속절없이 피해를 보고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될 무렵 회사 복지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궁금증을 불러내던 리조트로 여행을 떠난 건 학창 시절 스승을 직접 뵙기 위함이었다. 전날 저녁에 도착하여 리조트 입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자 이쁜 경차가 내려와 가족을 싣고 미리 예약된 숙소로 이동하는데 산중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겉과 완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캐리어에 갇혀 있는 보따리를 풀고 홀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차로 이동할 때와 또 다른 조경과 불빛이 어우러져 산길을 산책함에도 지치기는커녕 쾌속으로 지나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 숙소는 산속의 고급스런 통나무집처럼 나무향이 그윽하고, 한옥 쪽문을 연상시키는 후문이 있어 가족은 마..

하얀 하늘숲길을 거닐다_20200203

원래 계획되었던 하늘숲길은 기존에 출발점으로 삼았던 화절령과 만항재가 아닌 두 고개 사이, 하이원CC 인근에서 화절령 방면으로 출발했다. 서울 수도권은 코로나19로 인해 심리적으로 잔뜩 위축되어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고 바깥 외출은 극도로 기피하는 것과 달리 여행 떠나온 3일 동안 강원도 일대는 마스크를 끼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식당 같은 곳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하등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를 포함하여 지나가는 몇몇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코로나 관련 뉘우스가 나오면 강원도는 괜찮다는 주변 이야기도 드문드문 들리는 걸 보면 아직은 경각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구나 싶은데 평소 서울 수도권에서 정선 사북/고한으로 오는 여행객이 많았던걸 대비해 보면 지금은 여행객..

포근한 둥지로_20200202

이른 시간에 파크로쉬로 돌아와 저녁을 기다리던 중 주변을 둘러 보다 이색적인 것들을 만났다. 산중 추위는 서울의 추위와 비교할 수 없이 매섭지만 공기 내음이 향그롭다. 그래서 잠깐 둘러본다고 옷 매무새를 허접하게 꾸렸던 후회도 들었지만 적막을 뚫고 타오르는 불꽃들이 온기를 대신 채워줬다. 우선 숙소에 들러 편한 옷차림으로 변신하고 창밖을 내다봤다. 실제 가리왕산의 위용은 거대하다. 처음 여길 왔을 때 창 너머 가리왕산자락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더랬지. 우측이 서편 가리왕산 정상 방면이라 그쪽으로 해가 지고 땅거미도 진다. 파크로쉬에서 볼 수 있는 야경들 중 진짜 불도 있다. 장작 대신 석탄인데 첨엔 진짜 불인가 싶어 다가섰다 온기를 느끼고 잠시 눌러 앉았다. 불을 보고 있자니 문득 미스터션샤인의..

세 번째 방문, 여전한 밤_20200201

세 번째 방문하는 파크로쉬는 개인 취향이긴 하지만 편안한 분위기에 몇 가지 특징적인 것들로 인해 이번에도 선택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시설로 따지면 꽤나 고급스럽고 분명한 컨셉을 지니고 있어 주말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사실 단순하게 고급스럽다는 표현보다 차분하고 단아한 고급스러움이랄까? 게다가 정선이란 지역 특색이 버무려져 위치에 대한 아우라도 무시할 수 없다. 허나 방문 횟수에 비례해 청결에 점점 균열이 생긴다. 루프탑에서 내려다 보면 나름 주변이 화려하다. 가리왕산자락 알파인스키 코스가 암흑에 파묻혔지만 낮이 되면 가리왕산의 위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주말 저녁에 정선을 왔건만 여기라고 미세 먼지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자욱한 먼지층에 밤하늘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그 휘영청 밝던 달은..

평온의 호수_20200111

망해사를 벗어날 무렵 해는 벌써 서쪽으로 제법 기울었다. 그만큼 망해사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건가? 익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망해사로 오면서 큰 호수를 눈여겨 봤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리겠노라 점 찍어 놨는데 그러길 잘 했다. 위성지도로 본 호수의 모양도 특이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여길 리조트 단지로 조성하려 했는지 출입이 금지된 유람선형 숙소와 카페가 있다. 호수 위로 뻗어 나온 가지에 까마귀가 빼곡히 쉬고 있는 모습들이 쉽게 포착되는데 언젠가 김제에서 만난 거대 까마귀떼가 이렇게 흩어져 쉬고 있다는 거다. 뜨거운 석양과 어울려 온통 출렁이는 금빛 세상을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그 길목에 나무처럼 멈춰진 장면 또한 장관일 수 밖에 없다. 호수가엔 말끔한 주차장이 많고 특히나 호수 서북편 근린공원에..

두 번째 방문한 파크로쉬_20190328

2월 중순에 찾아왔던 파크로쉬를 이번엔 하루 이용할 요량으로 역시나 밤길을 달려 왔다. (정선 파크로쉬로 떠나다_20190216) 지난번 도착 시각이 저녁 8시 반 정도 였다면 이번엔 한 시간 가량 늦어 주변을 둘러 보고 자시고 할 겨를 없이 바로 뻗었다. 한적하고 편안한 숙소로 더할 나위 없어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회사 복지 프로그램을 이용, 평일이라 좀 더 저렴하고 조용하며, 스키장 뷰 였던 2월과 달리 이번엔 도로와 콘도 뷰. 두 번째 방문은 마치 웰메이드 영화의 아류작처럼 적당한 실망도 있었다. 이번엔 가리왕산과 반대되는 방향의 백석봉 방면이라 경관에 대한 흠 잡을 만한 꺼리는 없고, 발바닥에 집요하게 엉겨 붙은 몇 가닥 긴 머리카락이 성가시다. 이봐! 난 단발이라구! 호텔을 나와 정선 방면으로 조..

정선 파크로쉬로 떠나다_20190216

원래 의도와 다르게 혼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좋았던 이번 여행.영동 고속도로 진부에서 내려 정선 숙암으로 천천히 흘러갔다.토 요일 저녁이라 차가 많을 법도 하지만 진부를 벗어나 매끈하게 뻗어있는 59번 국도를 따라 밤길을 달리는 동안 지나는 차가 거의 없어 진행하는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정선 푯말을 따라 나아갔다.정선이 멀고 험한 길을 거쳐야 한다는 편견과 달리 어두운 밤길을 가는 내내 도로 컨디션은 상당히 좋았고, 과거 2015년 늦봄 무렵 정선에서 반대 방향으로 갔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정선을 벗어나 두타산으로 향하던 중 한창 공사 중이었던 곳이 바로 파크로쉬 였다.(용평 산중에서 정선까지_20150530)지극히 일상적이어야만 하는 여유가 기근 현상으로 점점 메말라 가는게 정말 시간이 없..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나무를 넘어 빛이 스며 들고 있는 무보정 사진. 비발디파크에 환한 불빛과 안개에 그을린 빛이 큰 나무로 인해 마치 호기심의 종착역인 엘도라도 같은 환상의 단상 같다.산 언저리에서 굴러 내려오는 빛이 만들어내는 어두운 빛 덩어리가 퇴색된 녹색인 것은 산에 남은 자연의 공존이 지상에서는 의미가 상실되어 암흑의 때에 물든 빛 바랜 녹색이 되어 세상 천지에 가득할 뿐.폐부로 흡수되는 왜곡으로 인해 그 불빛의 근원을 철저히 지향하게 만들어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같은 자리에서 하염 없이 셔터를 눌러 버렸지만 순수한 동경만 남아 나무를 지나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욕구는 어느 외풍에도 왜곡되지 않는다.시골이면서도 인적이 넘쳐나는 문명의 덩어리에 잠시 등을 돌린 채 바라보는 산엔 나 외에 달도 같이 찬양하듯 묵묵히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