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54

호반에서의 유유자적, 충주 종댕이길 심항산_20240515

작년 늦여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동경의 돛단배를 타고 다시 찾은 종댕이길은 이제 막 젖어들기 시작하는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의 짙은 녹음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사람들의 손끝에서 비롯된 온기가 종댕이길 일대에 뿌리를 내려 간과될 만한 작은 소품들이 길 위의 모든 존재들과 길가를 겉도는 무형의 흔적들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단순히 이동의 발판이 되는 길의 의미를 넘어 혼탁한 현실을 재조명시켜 주는 치유가 되고, 노동의 걸음이 아닌 지혜의 걸음으로 재탄생한다.내륙 속의 작은 바다에서 말미암은 파동으로 굳어진 사유에 겹겹이 끼인 때는 어느새 바스러지고, 길가 스치듯 가까워졌다 멀어져 간 모든 순간들조차 기억과 추억에 가두고 싶은 곳, 애환을 실어 나르던 종댕이길은 이제 삶의 이완제로 다가온 혈관이 되어 버렸..

호수 속 가슴 아련한 추억의 횡성호수길B_20221011

길을 걷는 동안 바로 옆에 줄곧 호수가 동행하는 둘레길을 따라 A코스를 지나 B코스로 접어들었다.전날 기습적인 추위와 두터운 구름이 몰려와 물안개는 만나볼 수 없지만 걷기 수월한 호반길은 젖어드는 가을이 길섶 호수와 숲을 흔들어 깨웠다.그래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계는 잠시 뒤로하고 오롯이 마음이 추동하는 여유만 쫓다 보니 걷는 걸음에서 피로가 발목을 잡지 않았다.시간의 관용이 일상에서 익숙해진 습성을 마비시켜 늦어도 조급하지 않았고, 앞이 아닌 곳으로 시선을 던져도 불안하지 않는 횡성호반은 얼마 남지 않은 녹음과 다가올 신록 사이에 깊은 잠을 자기 전, 변모의 숙연함이 찰랑였다.B코스와 A코스의 다른 점은 너른 길에서 오솔길로 바뀐다는 점이었고, 같은 점은 호수와 숲의 경계를 예리하게 관통했다는 점이..

가을에 한 발 다가선 횡성호수길A_20221011

이른 새벽에 걷는 호수길 따라 가을은 깊게 뿌리를 내려 정체된 공기 속에서도 독특한 향취가 줄곧 함께 걸었다.대부분 호수 둘레길이 호수에서 멀찍이 떨어져 평행선을 그린다면 이곳 호수 둘레길은 호숫가에 녹아든 나뭇잎도 식별할 만큼 지척에 붙어 묘한 정취가 있었다.마치 동네 공원길을 걷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길은 탄탄하게 닦여져 있었고, 그 길의 지루함에 발길 돌릴까 싶어 파생된 길은 산중 오솔길처럼 한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에 호수와 숲 사이를 교묘하게 뚫고 호수로 돌출된 반도로 지그재그 뻗어 있어 걷는 재미도 솔솔 했다.새벽에 피어오를 물안개는 기대할 수 없는 날씨라 아쉽지만 모든 만족을 채울 수 없는 노릇이었고, 8km 조금 넘는 도보길을 걸으며 도시와 다른 텅 빈 산책로에서 산책의 무료함과 피로를..

작은 산줄기들 사이의 바다, 대전 대청호 거북바위와 전망대_20220902

너른 세상에 대한 갈망은 비단 인간에 한정되지 않았다.흙과 물의 경계에서 알을 놓고 다시 너른 세상으로 떠나려는 거북 한 마리도, 대청호반길에 동경의 알을 찾는 여행자도 시선의 접점은 호반과 하늘이었으며, 혹독하게 옭아맨 의지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함이었다.그래서 호반길 따라 여행을 결단한 게 아니었을까?대청호의 만수 면적은 72.8㎢이고, 저수지 길이 86㎞, 총저수량은 높이 76.5m에서 80m까지 홍수조절 용량을 합쳐 14억 9000만㎥에 이른다. 이 저수량으로 금강유역의 만성적인 홍수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대전광역시·청주·군산·전주 등 유역 내의 인접 도시에 연간 13억㎥의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또한 금강 하류 연안·미호천 연안 및 만경강 유역의 농경지에 연간 3억 5,000만㎥의 관계용..

바다를 향한 꿈, 흰여울 문화마을_20220816

바다를 향한 꿈, 오랜 세월 삶의 무게와 맞물려 장독에 묵힌 구수한 장맛처럼 진면목을 드러내고 비상하는 바닷새가 되어 수평선을 출렁이는 아리랑이 된다. 지칠 줄 모르는 바다 바람이 세 평 쉴 틈 없이 몰아넣어도 태초에 솟은 산에 업혀 엄마 품에서 처럼 곤히 졸고 있는 아가처럼 이따금 근원 모를 함박웃음에 기나긴 설움 터널은 지워지고 어느새 갈망의 견고한 돌탑이 머나먼 걸음 마다한 나그네를 동심의 울타리로 안도시켜 준다. 지인과 만나 영도로 넘어갔고, 비가 내릴 듯 말 듯 애매한 날씨긴 해도 그리 덥지 않은 날이라 도보 여행을 곁들이기로 했다. 우선 태종대 초입까지 또 다른 지인이 데려다준 덕에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버스로 중리방파제에 도착했다. 정박 중인 선박들이 수평선에 사이좋게 걸쳐져 있었다. 걸..

일상_20190706

바람 좋은 주말, 길섶에 웅크리고 있는 풍경들이 특히나 반가워 집을 나선다. 화사한 햇살, 청명한 대기로 개망초 군락지에 우뚝 솟은 나무, 이 장면이 영화에 나올 법한 수채화 같다. 2016년 처음 보게 된 새끼 고라니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 초록이 넘쳐나는 먹이의 풍년을 누리고 있다.허나 홀로된 두려움은 반복되는 시련일 거다. 지나는 길에 풍뎅이 같은 게 있어 허리를 숙이자 바글바글하다.바람 좋은 날, 바람 나는 날이여? 오래된 공원의 작은 길을 따라 놓여 있는 벤치가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다. 강한 바람에 넘실대는 건 비단 개망초 뿐만 아니다. 폰카의 발전은 어디까지 일까? 어느새 저녁이 다가와 교회 너머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다.강한 햇살로 인해 늘어뜨린 그늘이 고맙고, 뜨거운 대지의 열기로 인해..

일상_20190629

늑장을 부리는 장마 대신 보슬한 비가 나풀거리던 주말, 반석산에 올라 둘레길을 따라 비가 지나간 궤적을 되밟아 본다. 개망초 꽃길을 지나. 매력적인 독버섯. 낙엽 무늬 전망 데크에 가까워질 무렵 산딸기 군락지가 있다. 벌써 밤송이가 맺혔다. 벤치로 제2의 생을 보내고 있는 나무. 뭔 사연이 있길래 나무가 이렇게 자랄까?같은 나무일까, 아니면 다른 두 개의 나무가 함께 자라는 걸까?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가지가 뻗은 나무. 이 꽃은 뭐지?엷은 비에도 벌 하나가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을 정도다. 장미 꽃잎에 피어난 보석 결정체. 산딸기 군락지에 아직 남아 있는 산딸기의 볼그스레한 열매가 탐스럽다.어느 젊은 여성이 수풀 사이에서 뭔가를 조심스레 따먹길래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산딸기를 열심히 줍..

일상_20190609

먼 여행 대신 가까운 산책을 선택한 주말, 청승부르스 같긴 하지만 내가 사는 고장에 대한 애착은 모든 여행의 각별한 시선을 제공해 준다.어중간한 시간, 아니면 괜스리 귀차니즘에 멀리 가기 귀찮거나 움직이는 것 조차 갖은 핑계로 늑장을 부리다 포기하는 경우 느지막이 현관을 차고 꾸역꾸역 돌아다닐 때 적당한 타협점은 방황에 가까운 동네 산책이다.밤꽃향이 지천에 날리며 여름을 선동하는 시기인 만큼 무더위에 비한다면 그래도 이 계절의 이 시기는 크나큰 행복을 머지 않아 깨닫게 해 준다.하긴 전날 무주 다녀온 여독도 남았는데 뭔 거창한 여정이여!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위에 나풀거리는 나비의 춤사위가 쏟아지는 햇살을 잘게 부수어 화사한 파도를 일렁인다.어찌나 사뿐한지 살며시 다가서서 한바탕 흥겨운 춤을 보다 다시 ..

봄 내음 물씬한 계명산 휴양림_20190414

4월 14일.마지막 애달픈 미련의 벚꽃이 남아 절정의 봄이 떠나는 귀띔에 따라서 떠날 채비를 했다.강원도, 경기도 지형을 복합적으로 품고 있는 충주, 그 중에서 급격한 산지가 시작되는 계명산에서 떠나려는 봄 마중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절정의 시간들을 보냈다.벚꽃이 일본 국화라고 할 지언정 숭고한 자연을 소유할 수 없는 억지는 동의할 수 없다.또한 자연을 소유하는 건 건방진 우매일 뿐.계명산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자리를 풀고 해가 진 뒤 길을 따라 산책을 다녔다. 호수와 마을이 어우러진 곳, 그 곳에 밤이 찾아 오자 야경 또한 함께 어우러진다. 충주 시내를 갔다 휴양림으로 찾아가는 길에 계명산 언덕을 오르면 어느 순간 호수와 산이 펼쳐진 전경이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떠돌다 한 자리에 앉아 한참을 야경과 ..

일상_20190413

한 주 지나 찾은 오산천 산책로는 예견대로 벚꽃이 만발 했고, 거기에 맞춰 인파가 북적였다.오산천엔 물이 흐르고, 산책로엔 인파가 뒤섞여 흐르는 곳, 그곳으로 걸어가 함께 인파에 섞여 발길이 닿는대로 흘러 다녔다. 나루마을 인근에 산책로 초입부터 벚꽃을 찾은 사람들이 북적인다.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아니면 홀로 찾은 사람들로 다양하게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하나 같이 사진을 찍으며 심취한 표정이다.일 년 중 아주 잠깐 만날 수 있는 날인 만큼 일시에 사람들이 몰리는데 가을에 단풍이라면 벚꽃에 비해 꽤 오래 볼거리를 유지하지만 벚꽃은 화려하게 폈다 어느 순간 급격히 꽃잎이 떨어지며 사그라들어 사람들의 애간장을 더 태운다. 봄이라고 해서 벚꽃만 있는게 아니다.하지만 벚꽃만큼 화사한 봄의 전령사가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