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25

굽이굽이 아름다운 낙동강과 역사의 예던길, 봉화_20220730

해답을 듣지 않아도 좋다. 어떤 혼탁한 푸념에도 거울빛 드리운 모습 너머 속삭임에 위안을 낚아 가슴 고이 두더라도 사무친 질곡이 스스럼없이 열린다. 자연은 그저 방치했을 뿐인데 방종이 깨뜨릴 수 없는 포용의 온기는 그 어느 성벽보다 견고하고, 심연은 가늠할 수 없다. 출렁이는 다리를 걸으며 불안의 씨앗은 메말라 싸늘한 잡념의 죽어가는 잡초가 되고, 집요 하던 추회는 기름진 돌뿌리가 되어 절벽에 새겨진 미소의 청사진이 된다. 잠시 이 자연을 만나는 동안 해답을 듣지 않아도 좋다. 예던길은 봉화 청량산과 안동 도산을 잇는 국도 35번 주위의 강변길로 퇴계 이황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이다. 은퇴 후 노년에도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며 그가 세상을 뜬 후에도 많은..

쓸쓸한 사림재_20220228

삼강과 회룡포가 인척이면서도 시기와 질투를 견디지 못한 강과 산이 갈라놓는다. 허나 그 심술도 응축된 겨울에 실려 떠나려 하듯 작은 골짜기 이정표 따라 두 개의 둥지를 잇고, 웅크린 봄이 피듯 하나를 바라던 물살도 사뿐한 까치발로 유유히 숨죽인다. 지난 시간에 서린 희망의 찬가처럼 길은 선명한 자태로 산을 향하며 그 길 따라 시선은 이미 고갯길 너머 하늘에 닿는다. 석양에 기댄 강가 너른 들판에 갈 길 바쁜 나그네는 어디론가 사라져 여정을 위로하던 주막도 지는 해처럼 퇴색되고, 이제는 화려한 가면을 쓴 채 갈 길 잃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강문화전시관은 휴관이라 잠시 둘러보는 사이 가뜩이나 짧은 하루 해는 조급하게 서산 너머 내닫는다. 메마른 길 지나 흐르는 낙동강_20220126 이리로 흘러 저리로 간다..

문화의 수풀, 경천대관광지_20220126

우연히 낙동강을 따라가다 들렀던 경천대는 전국 각지의 명승지처럼 선명한 역사가 숨은 곳이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어 별 기대 없이 주차를 하고 간소한 차림으로 느린 산책을 했는데 지역에선 나름 명소였는지 평일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인적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전망대를 거쳐 경천대를 거쳐 별 의심 없이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는 곳을 추종했는데 아주 작은 규모의 드라마 촬영장과 출렁다리였고, 비교적 오래 머문 사이 함께 몰려왔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조각공원에 들렀을 무렵엔 텅 빈 공간에 홀로 작품을 마주했다. 문화와 예술에 문외한이긴 하나 인간의 최종 욕구는 자아실현이며, 그 접점은 문화예술이라 나름 이런 독창적이고 독특한 작품 앞에선 꽤 감동을 받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무한한 창의성에 비록 뱁새가 가..

낙동강에 새긴 절개, 경천대_20220126

삼강주막촌에서 출발하여 반듯하게 뻗은 지방도로를 따라 상주 경천대로 향했다. 경천대 상주 시내에서 동쪽 방면에 위치한 사벌국면 삼덕리에 있는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낙동강 제1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며 자천대 (自天臺)라고도 한다. 후에 채득기가 경천대라는 이름으로 고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왕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인 1628년 봉림대국(17대 효종)의 주치의로 있던 채득기가 터를 잡아 지었으며 주변에 채득기가 만들었던 정자인 무우정이 있다. 또한 조선 장수였던 정기룡이 천마를 얻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실제로 천마의 구유 유물이 있다. 경천대 입구 인공폭포에 정기룡 장군 동상이 있다. 낙동강과 운치를 이룬 곳이라 무우정과 함께 영남 지방 유림들의 모임터로 쓰였다. 전망대에 올라보면 ..

메마른 길 지나 흐르는 낙동강_20220126

이리로 흘러 저리로 간다. 말 없는 강은 미처 소리 낼 틈 없이 바다를 오로지하며 이내 깊은 푸르름에 잠기고, 말 잃은 산은 지나는 강을 시샘할 틈 없이 하늘을 오로지 하며 이내 깊은 푸르름에 잠긴다. 하늘에서 달려온 강이 다시 하늘로 사라질 무렵 각처를 방황하던 강에게 한자리 내어준다. 강을 건너 너른 공원을 지나 홀로 걷는다. 산의 간극이 좁아질 무렵 여러 갈래 나누어 흐르던 길은 하나의 길로 고갯길로 향하고, 이미 말라 버린 인적 물결은 극도의 갈증을 느낄 겨를 없다. 멀리서 달려온 강은 이 자리를 묵묵히 지난다. 그러곤 더 먼 곳을 향해 쉴 틈 없이 느린 걸음을 옮긴다. 짧은 시간만큼 찰나의 머무름. 인적은 증발해 버렸지만 강물은 변함없다.

낙동강을 건너며_20211025

무척이나 한적한 황강을 지나고 낙동강변길을 달리며 잠시 한숨 돌리기 위해 합천창녕보에 멈췄다. 땀을 훔치기 위해 쉬던 한 무리 자전거 동호회 무리가 아니라면 온전히 공백 상태인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출입은 금지 상태. 찬물에 손을 씻고 주차된 차로 가던 도중 주차장 바닥에 뭔가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어린 뱀 하나가 아스팔트 포장된 주차장 한가운데 일광욕 중이시다. 아마 개발로 인한 보금자리 변화 때문이 아닐까? 독이 없는 아주 어린 뱀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자 걸음아, 날 살려줍쇼 그러는 것처럼 황급히 도망간다. 너무 어린 녀석이라 불쌍한 마음에 더 이상 쫓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뱀을 돌 같이 볼 수 없어 옮겨 주지는 못했다. 합천에서 낙동..

낙동강 굽이 따라 봉화에서_20211003

시간을 맞추기 힘든 사우들과 함께 1박 2일로 여정을 떠나기로 하고, 봉화로 가기 전 영주에서 집결하여 점심으로 쫄면을 먹고 가기로 했다. 정오가 되기 조금 전에 영주에 도착했고, 훨씬 먼저 도착한 몇몇 일행들은 영주 무섬마을 구경 중이란다. 최종 목적지가 영주에서 한참 더 가야 되는 관계로 독촉하여 쫄면집에서 제때 만나 어렵게 주차를 한 뒤 식당에서 만났다. 6년 전 왔던 영주에서 가장 이름난 쫄면집인데 내 기준에서는 맛집은 아니고 다만 추억의 쫄면을 향유할 수 있는 정도. 12시 30분 오픈 시간 동안 팬데믹으로 매장 시식은 어렵고 포장만 가능하단다. 일행의 쫄면 호기심에 몇 군데 중 여기로 집결했는데 일찍 줄을 섰음에도 23번째 대기에 주변에 꽤 많은 분들이 쫄면을 기다린다. 분식에 포함되는 쫄면 ..

장마철 다대포_20210708

근래 부산의 명소로 거듭난 다대포는 일몰의 유명세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단다. 잠시 부산 들른 김에 다대포와 광안대교와 함께 이어진 남항대교, 부산항대교를 질주하며, 지극히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정취를 감상했다. 매끈한 도심이나 오래된 벽화 마을은 어디서든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거대한 항구를 발아래 두고 마치 공중부양 한 듯 서서히 그 위용을 영화처럼 감상한 건 지극히 ‘부산’다운 모습을 체험한 것과 진배없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 모습을 생생히 기록해 두기로~ 이틀 전 엄청난 폭우로 인해 낙동강 수량이 급격히 늘어 제방과 불과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수심이었다. 다대포가 낙동강 하구라 낙동강변길로 질주를 하는데 부산 지리에 문외한이라 신세 진 입장에서 세세하게 둘러볼 수 없었다. 다대포 도착..

먼 길 떠나기 전, 삼강주막_20210306

강의 두물머리에 옛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던 자취는 덩그러니 터만 남아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야속하게 바라보며 속절 없이 웅크리고 있다. 어쩌면 시간 앞에서 자연도 휘청이는데 사람인들 건재할 수 있을까? 유별난 강바람도 계절 따라 분주히 오갈뿐 무심한 시간에 떠밀린 옛터의 흔적처럼 벙어리 되어 유유한 강물에 투정이다.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상류에 회룡포가 있다. 전형적인 겨울의 강변 정취다. 나루배를 재현시켜 놓았는데 이마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삼강의 물결이 한데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삼강절경? 표지석이 눈에 띈다. 삼강문화단지에 옛 모습을 재현시켜 놓았다. 낙동강을 건너면 행정구역상 문경이고, 이렇게 두 고을을 잇는 달봉교는 특이하게도 전망대까지 설치하여 여행객에 대해 배려해 놓았..

소중한 시간의 창고, 태백을 떠나며_20201110

예기치 못한 경험을 마주하며 기억을 조각하는 게 여행이라면 태백은 창작을 하는 작업실이라면 솔직한 표현일까? 전날 홀로 집을 지키던 냥이가 후다닥 놀다 방에 갇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꺼내곤 곧장 다시 태백으로 건너와 늦은 시각-태백의 시계는 20시만 넘어도 식사 가능한 곳이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았다-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을 찾다 신전 떡볶이 집에서 모처럼 분식으로 배를 불린 경험도 여행에선 꽤나 값진 기억이었다. 밤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뒹굴다 이튿날 늦게 부시시 일어나 태백을 떠나 다음 여정지로 출발하는데 늘 그렇듯 아쉬움 금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숙소를 떠나기 전, 베란다에 나와 정취를 담았는데 여전히 옅은 미세먼지가 대기를 덮은 날이었다. 청명하면 좋겠지만 이 또한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