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7형제에 친척까지 따지면 왠만한 소대 이상으로 명절이면 대규모 이동을 방불케 했다.
그런 아버지 2째 형님 되시는 큰아버지 댁이 이 언덕에 기대어 자리 잡은 마을 중 초입의 이 집이었다.
이왕 고령 온 김에 볕도 좋고 미세먼지 농도가 살짝 낮아진 날이라 오마니 옛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여기까지 찾아온 내 명석한 기억력!
한길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두 번째 집인데 너무 어릴 적에 왔던 기억 뿐이라 찾아 갈 수 있을까 했지만 기가 막히게 잘 찾아와 이 자리에 서자 잠자고 있던 기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온다.
명절에 설레는 기분으로 기 길목에 발을 디디면 그 때처럼 누군가 반가워해 줄 손짓이 보일 거 같다.
높은 축대와 대문녘에 붙어 있는 사랑채, 밑집 사이 위태로운 담벼락, 외양간에서 늘 되새김질 하던 황소까지 기억에 너무도 선명하다.
차이라면 사람이 떠나간 흔적을 반증해 주듯 마당에 무성한 잡초의 흔적과 당시 연한 초록빛 대문이 시간으로 부식되어 녹슨 흔적, 여기저기 땅과 축대의 갈라지고 내려 앉은 흔적.
게다가 가장 큰 변화라면 이제는 남이 되어 버린 예전의 가족들.
큰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제는 흩어져 버린 사촌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작은 덩치에 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늘 반주 한 잔으로 시작해서 몇 병, 그러다 어김 없는 주사로 분란을 일으키던 첫 째.
기골이 장대하고 성량이 우렁차며 성격이 호탕하던 둘 째.
첫 째와 둘 째 중간 정도에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서글한 성격으로 사교성이 압권이던 셋 째.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
첫 째와 둘 째 사촌 형들이 돌아가시고 가뜩이나 뿔뿔이 흩어져 살며 명절에만 볼 수 있었던 그나마의 인연도 모두 끊어져 이제는 소식조차 묘연한 가족들로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까?
마치 사람의 생이란 게 마당에 핀 잡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많은 기억들이 밀려와 감당하기 힘들 거 같아 마당에서 나와 골목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가자 주위 모든 집들이 폐가로 집터만 남은 곳도 눈에 띄인다.
다만 자연은 삭막한 흔적에 대한 배려인지 생명의 자취가 보인다.
이렇게 당시 북적이던 마을은 초라한 흔적만 남기고 시간의 흔적에 지워지고 무너져 내렸다.
정말 그 때 그 시절이 맞나 싶을 만큼 기억은 생생하게 재현되는데 그 기억을 지지해 주던 마을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다만 사람들이 수도 없이 밟던 골목에 자라는 녹색 풀만 초연히 봄볕을 누리고 있다.
동네가 북적이고, 이집저집에서 굴뚝 연기가 끊이지 않던, 낙엽과 땔감이 따며 내던 그 내음만큼 기억이 강렬 하던 시절엔 가까운 미래의 허허로운 시절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현재가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엔 너무 늦은 깨달음이고, 너무 그립기에 혹독한 체엄을 통한 가르침이라 하자.
그리하여 그립고, 정겨웠고, 아득한 시간들.
'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소리_20190310 (0) | 2019.08.17 |
---|---|
일상_20190309 (0) | 2019.08.17 |
일상_20190202 (0) | 2019.08.09 |
오래된 정겨움, 여수_20190116 (0) | 2019.08.08 |
한 해의 마지막 산책_20181231 (0) | 2019.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