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란 도시는 제법 넓다.
왜 그런고 하니 파편화 때문인데 과거 여천과 합쳐져 사이즈는 꽤 큰데 적재적소에 위치한 산이 도시를 파편화 시키면서 이동시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편하면서 헤메는 수고로움을 덜어 낼 수 있다.
게장 동네에서 조금 늦었지만 점심을 해결하고, 처음으로 버스를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잡은 해양공원과 고소동 벽화마을로 이동해 보기로 했다.
곧장 한 번에 가는 차편이 없어 서시장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건너가 환승을 하는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시장에 내려 북적대는 도로와 사람들 사이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큰 봇짐을 지어 매고 같은 버스를 타는 어르신 물품을 대신 들고 차에 오르는데 빈 소쿠리 더미라 양에 비해 무게는 홀가분하다.
버스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목적지인 해양공원, 특히 밤바다와 포차로 유명한 거리에 내려 추위로 텅빈 해안 공원을 걷는다.
기습적인 추위로 조금 한산하지만 밤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어떤 이들은 밤이 설레고, 또 다른 이들은 밤이 아쉽다.
난? 후자~
아직 찾아야 할 것과 밟아야 할 땅이 더 많은데 한꺼번에 모든걸 해 버리면 식상함이 아쉬움을 몰아 쫓겠지?
다음을 기약하기엔 남은 시간 중 선택해야 될 것들이 혼란스럽고, 그래서 일단 쉬는 시간을 줄여 즐겨보자는 심산으로 해양공원으로 걷다 바로 벽화 마을로 들어섰다.
오전에 내가 잠시 몸 담았던 케이블카가 거북선대교와 나란히 바다를 건너고 있다.
매끈한 건물들 사이로 고개를 내민 고소동 벽화골목과 마을이 모습을 보인다.
부산 감천마을이나 통영 동피랑 마을처럼 미로 같은 골목, 틈틈히 낡은 모습과 겹쳐진 벽화가 여수 고소동 벽화마을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여수는 익살스러운 캐릭터와 만화의 영향이 농후하다.
벽화 마을 초입, 골목으로 발을 딛기 전 서쪽을 바라보자 꽤나 많이 넘어가 버린 석양이 보인다.
서녘으로 기우는 석양을 보면 하루의 아쉬움이 농축되어 있다.
하루가 짧고 현재 즐기던 시간을 멈추고 또 다른 꺼리를 찾아야 된다는 것.
초입에 이 좁은 계단 아래에서 헤매던 중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아주머니께서 이 집에서 나와 어디로 가란 말씀을 하신다.
나처럼 헤매는 사람이 많나봐.
일러준 방향으로 몇 번을 구부정 꺾자 돌 축대를 끼고 있는 길쭉한 골목이 보인다.
좌측 담벼락 너머엔 바다가 보이고, 우측 축대 위엔 하얗게 도배된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빼곡한 담장 너머 철조망과 덩쿨의 흔적을 보면 예전 그대로 뒀나 보다.
바다가 지척에서 훤히 보이는 마을이라 더 아름답고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법 가파른 마을이다.
그래서 뒷집도 바다를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다.
비좁은 골목을 누비다 보면 이렇게 너른 공터도 나온다.
허나 그 조차도 소홀하게 방치한 게 아니라 옛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보존시켜 놓고 때론 복원시켜 놓았다.
밤이면 여수 밤바다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정취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산과 바다를 가까이 두고 감상할 수 있어, 특히나 근래 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각 지역을 다니다 보면 벽화마을마다 특색은 분명하다.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벽화.
만화가 허영만님의 대표 선수들 벽화다.
미로처럼 짜여진 골목과 걷다 보면 전혀 길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굽어진 길도 막상 그 곳에 가 보면 눈에 쉽게 띄이지 않던 또 다른 골목이 나오거나 계속 가면 또 다른 마을이나 골목으로 연결될 성 싶던 길도 막다른 길이거나 민가 대문으로 트여 있어 쉽게 예측하기 힘들고, 그래서 찾는 재미와 각양각색의 정취를 곱씹을 수 있다.
어찌 보면 흔하고 단순한 벽화도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불에 그을리고 소실된 흔적.
이렇게 딱딱한 콘크리트 벽에 친숙하고 멋진 벽화가 그려져 있어 마을 전체가 아기자기해 보인다.
천사 벽화 너머 석양이 아쉬운 빛을 반짝인다.
전부 좁은 골목은 아니다.
이렇게 널찍한 계단과 길은 아마도 커뮤니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곳곳에 이런 지도가 있어 각 골목마다의 서로 다른 테마를 헤매지 않고 볼 수 있다.
너른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려 걷던 중 중간중간 테라스와 공터에 문화 컨셉의 쉼터도 만난다.
여긴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포토존인데 기타에 앉는 순간 가수로 착각해도 된다.
바다 속을 익살스럽게 재현한 벽화.
오포대에 서자 돌산도, 돌산 대교와 장군도를 비추는 석양은 제법 많이 기울었다.
석양이 하루 중 마지막 사력을 다해 따스한 빛을 뿌려댄다.
벽화마을의 등대지기와도 같은 오포대는 마을 중간 가장 높은 곳에 빼곡한 마을 답지 않게 널찍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자리에 서면 전망대처럼 뻥 뚫린 사방을 둘러봄과 동시에 여수가 품은 바다와 산도 함께 관측된다.
해양 공원에 내려 곧장 걸어온 길이 아니라 꽤나 많이 걸었음에도 피로를 느낄 겨를 없이 서녘으로 치닫는 석양이 더 깊숙이 사라질까 노심초사하며 더 많은 숨겨진 보물들을 찾는 착각에 빠졌다.
마을 자체가 그리 크지 않지만 잘게 나눠 놓은 각 구역별 컨셉이 있어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골목을 거니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잡념을 떨치고 시간이 남긴 흔적들을 쫓고 있었다.
낡고, 지저분고,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시간의 경험과 통찰을 겪는 동안 배려와 정겨움이었단 걸 아는데 꽤 많은 시간을 지불했던 거 같다.
값진 깨달음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이제는 이런 배려와 정겨움이 단편적인 편리함을 능가해 소중한 자취이자 위안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흔적을 찾아 살펴 보며 막연히 산재되어 있던 깨달음을 규정 짓게 되었다.
골목처럼 이 냐옹이도 아주 친숙한 표정으로 재탄생 되었다.
바다 관망 반대편은 이렇게 여수 시내를 볼 수 있다.
바다와 산, 마을과 다른 마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두루두루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로처럼 엮여 있고 꼬여 있는 골목길은 어느 하나 똑같은 모습이 없어 지루하거나 식상할 겨를이 없다.
마을 대부분이 내리 쬐이던 햇살을 거두고 밤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자 덩달아 집으로 가야될 시간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길게 뻗어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시선이 닿는 곳에 냥이 한 마리가 신기한 듯 나를 쳐다 보고 있다.
여수 여행 중 마지막 종착지와도 같은 벽화 마을은 잊고 지내던 골목과 곡선들이 바다와 산을 품고 있었다.
수 많은 볼거리가 즐비한 여수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니었는데 막상 여수에 발을 딛고 다니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다.
많은 직선들이 탄생하며 그 길 아래로 묻혀 버린 또 다른 많은 곡선들은 불편함이 아니라 모든 삶을 빼곡히 연결해 주던 배려였다.
직선이 즉흥적이고 빠른 이면에 직선에서 벗어난 것들은 곧 소외 였다.
현대 사회에서 곡선은 지나친 인간미로 인해 차별이 거의 없어 돋보이고 싶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더욱 돋보이고 싶기 때문에 불필요한 방해와 거추장스러운 허례로 간주 되어 왔었다.
골목과 고샅길은 모든 집을 하나도 빠짐 없이 연결 시켜 주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있어 삶의 애환이자 핏줄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잊혀질 약속만 남겨 졌지만 이렇게 새로운 옷을 갈아 입고 추억과 함께 아름다운 미덕을 재각인 시켜 줌으로써 더 아름답게 비춰졌는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저무는 석양에 물들어 삶의 고단함을 털듯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어버이 세대의 무거운 어깨가 이토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날이 앞으로 살면서 몇 될까?
시간의 유적을 끝으로 이번 여수 여행을 일단락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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