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온연한 사랑의 형태, 회룡포_20220228

사려울 2023. 2. 14. 00:49

굽이마다, 계단 걸음마다 사연을 입고 발자국에 흥을 싣는 울림이 능선 따라 메아리친다.
지난번 자욱한 미세 먼지로 찌뿌둥 대기가 아쉬운 곡소리 남발할 때 못내 아쉬운지 다시 찾은 길은 북풍에 설움 고하며 청명한 민낯의 쑥스런 미소가 마냥 방긋거린다.
봄기운 따라 두터운 꽃가루 뒤집어쓰고 알알이 박힌 겨울색 조롱 하던 꿀벌이 무척 귀하신 몸이라 너룻대 힘겨운 움직임을 응원하는 수밖에.
인간은 223 계단 걸음만 옮기면 강이 새겨 놓은 꽃향기를 담을 수 있지만 봄을 쫓는 꿀벌은 무척이나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한다.

 

고립을 넘어선 회룡포_20210306

조만간 만나야 될 낙동강이 그토록 설레고 그리웠던지 흐르던 강도 잠시 주춤하여 어눌한 듯 발걸음도 굽이치어 오히려 그 자취는 휘몰아치는 붓끝처럼 육지 속에 아름다운 섬을 만들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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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육지 섬마을, 회룡포_20220126

회룡포가 재조명 받은 건 삶의 진수가 녹아든 추억의 류와 다르게 억겁 동안 강이 만든 작품에 대한 감탄의 표현 중 경의에 찬 화답이었다. 주변에 발달한 평야의 가운데 우뚝선 작은 산에서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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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비룡산 봉수대 능선_20220126

회룡대와 연결된 산능선은 걷기 좋은 평탄한 언덕길과 같아서 거리는 짧았지만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비교적 포근한 겨울을 음미했다. 무릇 강이란 바다를 향해 내달리며 그 어떤 장애물도 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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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지나 다시 회룡포를 찾았고, 같은 경로로 순대집에 들러 배를 채운 뒤 장안사를 통해 회룡대에 들리기로 했다.

식당에서 나올 때 너룻대에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꿀벌 하나.

올해 꿀벌의 수난시대로 전국에서 꿀벌이 종적을 감춰 양봉 농가가 울상이라는데 이 녀석 또한 반갑기는 하나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봄꽃에 가장 어울리는 조합이 꿀벌이라 못내 아쉬웠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장안사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조용한 평일이라 주차장엔 차들이 많지 않았지만 간헐적이긴 하나 꾸준한 행렬로 차량이 들락거렸다.

회룡포에 기댄 장안사는 회룡대 길목이라 필연과 같았다.

장안사에서 회룡대로 향하는 계단마다 아름다운 시구가 직물 마냥 짜여 있는, 그래서 아름다운 계단이었다.

계단으로 향할 때 75살 되신 어른이 무릎이 좋지 않아 회룡대까지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망설이신대 계단길이 완만하여 오신 김에 천천히 가보시는 걸 권해 드렸고, 결국 그분은 회룡대에서 뵙게 되었다.

따님이 오자고 해서 오신 거라고, 지금이라도 이 광경을 보시면 앞으로 더 힘드실 것 같았고, 요령껏 걸으시면 무리가 가지 않으실 것 같았는데 그래도 수월하게 오르셨다.

우리나라 어머니들 세대의 지고지순한 모성애로 당신들께서는 청춘을 바치신 만큼 지금이라도 이 땅의 멋진 산하를 보시면 위안되지 않을까?

장안사에서 회룡대까지 계단은 총 223개.

대수롭지 않던 계단이 그 어르신께는 갈망하던 길이었다.

강이 새긴 꽃, 회룡포를 마주할 때면 아득한 흑백사진을 떠올리게 된다.
철옹성 같은 구조물도 감히 단절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심미적인 경계는 더욱 선명하여 유일한통로인 뿅뿅다리는 실낱 같던 존립 의지마저 위태롭다.
허나 그 꽃이 다독이는 내음은 포근한 목화솜에 더해 사랑을 품은 산세의 고혹적인 위안이라 써도 될 성 싶다.

날이 좋아 이번엔 하트가 제법 선명했다.

강이 만들어 놓은 모습은 같았다.

다만 인간은 그 공간을 빌어서 기대어 살며 계절에 따라 분장시키면 된 거다.

회룡포에서 삼강주막으로 가는 고개인 사림재로 가는 꼬불길이 선명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번 방문 때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대기였던데 반해 이번엔 비교적 양호했다.

아이폰의 활약으로 회룡포를 광각으로 담았다.

회룡포를 자세히 보니 저건 미로 같은데?

회룡포의 명물 중 하나, 뿅뿅다리에 미세하게 사람이 보였고, 자세히 보니 서로 마주한 게 미스터 션샤인에서 명대사처럼 "우리 러브합시다." 만휴정에서의 장면 같았다.

회룡대에서 내려와 장안사를 지나가다 냥이를 발견하여 햇반 그릇에 밥을 하나 뜯어주자 녀석도 호의를 알고 다가가 맛나게 식사했다.

이따금 이렇게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맛나게 냠냠.

어느 정도 먹고 배가 부른 지 뒤를 돌아서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돌아가 냠냠.

멀찍이 떨어져 있긴 해도 가끔 인기척을 느끼곤 여전히 경계했다.

녀석이 제 식사를 완전히 비우고 주변에서 인기척이 있는 곳을 한참 응시했다.

몇 발자국 걷던 녀석은 나무 밑에서 잠시 휴식 자세를 취했고, 햇반 그릇을 회수하여 작별인사를 하자 한참 눈을 떼지 않고 뒷모습을 지켜보던 눈빛이 생생한 여운으로 남았다.

더불어 뒤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꼬마 숙녀의 말도 가슴 깊이 울렸다.

"엄마, 저 사람 고양이한테 사료 주나 봐. 역시 이상한 사람이네."

그래서 난 이상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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