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큰 어르신 지리산에 안기다_20191127

사려울 2019. 12. 23. 03:20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따라 곧장 남원 인월에 도착한 건 정오가 살짝 지난 시각이었다.

지리산의 거대한 형체가 먼곳부터 어렴풋이 유혹의 촉수를 뻗히고, 그와 더불어 최종 목적지인 구례 또한 지리산에 기대어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단아한 도시라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로 언젠가 부터 벼르고 벼르던 결정이었다.

2013~2014년 초까지 출장이란 명분으로 남원을 뻔질나게 다니던 인연으로 제법 익숙한 지역이란 명분에 힘 입어 뱀사골 너머 구례는 늘 '멀지만 두루두루' 가봐야 되는 여정의 코스로 낙인을 찍어 두었고, 더불어 예전엔 산채 요리가 잡초향 가득한 몸에 좋은 음식 정도로 치부 했지만 뱀사골 초입 즐비한 산채 식당을 방문한 이후로 몇 년 지나도록 그 즐겁던 혀 끝의 미각을 잊지 못하고 있었기에 과감히 뱀사골을 경유하는 구례행을 긴 시간에 걸쳐 질러 버렸다.



굽이굽이 좁고 기나긴 노고단길을 따라 남원 인월에서 부터 성삼재까지는 꽤나 멀고 험한 길이었다.

남원에서 뱀사골까지는 그리 험하다 할 수 없지만 좁은 계곡길이 한편으로는 작은 협곡처럼 길 양 옆에 산허리 장벽이 끝도 없이 줄지어 하늘을 가리고 있고, 도로 폭은 그저 왕복 2개 차로만 간신히 허용할 만큼 좁았지만 지리산 자락의 근엄한 자태에 마법이라도 걸린 양 연신 신기한 구경에 빠진 사람처럼 넋 놓고 길을 자근히 따라 갔다.

뱀사골이 지나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철옹성 같은 산세를 빌리는 건지 급격한 오르막과 지금까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커브길을 돌았고, 차가 더이상 오를 수 있으까 싶을 만큼 감각적으로도 하늘과 많이 가까워질 무렵 간절한 휴식의 속내를 알아 차린 건지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너른 고갯마루가 나타났다.

비록 국도변임에도 유료로 출입가능 공간이긴 하나 그 값어치가 충분할 만큼 멋진 전망을 선사 했고, 그 고갯마루에 걸터앉은 휴게소가 노고단의 베이스캠프라 평일 방문이지만 주차된 차량은 의외로 많았다.

휴게소에서도 전망이 좋은 위치에 카페가 있고, 그 앞은 몇 개의 마을이 합쳐져 구례 산수유 마을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전망을 발치에 둔 터라 나도 모르게 산에서 불어 오는 찬바람을 잊은 채 세상을 훔쳐 보기에 여념 없었다.

산수유 마을에서 곧장 1천m가 넘는 오르막을 따라 쉴 틈 없이 뻗어 있는 지리산 산세를 아래에서만 지켜 보다 이렇게 위치를 달리 하자 그 매력은 한꺼번에 가슴을 터트릴 듯 꿈틀 거렸다.



성삼재에서 살짝 내리막을 따라가면 시암재 휴게소가 산 능선에 기대어 있었는데 마침 이날부터 옅은 미세 먼지가 밀려와 아쉬움을 억누를 수 없었지만 잠시만이라도 이 자리에 서서 서편으로 기우는 태양과 지리산 능선을 둘러 볼 수 있다는 감회는 근래 들어 무엇보다 각별했다.



16mm 광각으로는 도저히 광활한 산 아래 세상을 담기엔 감흥이 미치지 못해 고프로로 찍어 봤더니 화각은 적절했다.

노고단길은 성삼재를 기점으로 구례 방면은 급격한 내리막을 걷게 되는데 남원에서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오롯이 왕복2차로의 폭이 좁은 길을 따라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 가며 꽤나 길게 내려가야만 했다.

허나 그 길고 긴장되는 구간이 싫지는 않은 걸.



성삼재에서 시안재로 이어지는 구례 방면과 달리 지금까지 거슬러 올라 왔던 남원 방면은 끝도 없을 것만 같은 첩첩한 산능선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고, 우측으로 조금 고개를 돌리면 금새 도착할 것만 같은 거대한 산세의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 왔다.

등산객의 내리막 행렬이 있던 노고단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울컥 밀려 들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여정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어 충동을 억누르고자 애써 등을 돌렸다.




사실 성삼재를 오르기 전에 고행과 같은 뱀사골 코스를 결정한 건 산채 음식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내 생애 가장 매력적인 산채 요리가 뱀사골 초입에 늘어선 산채 식당들인데 어디를 가나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하고, 특히나 된장과 구이 요리를 곁들일 경우 음식을 절대 남길 수도 없거니와 과식을 할 수 밖에 없다.

점심 시간대에 방문하자 이런 저런 이유로 잠시 문 닫은 곳이 태반이었고, 때마침 한 식당에서 중년 여성분들이 식사를 끝내고 줄 지어 나오던 모습을 포착 하곤 바로 그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산채 음식들이 요리되어 나오는 시간이 좀 걸리는 걸 알기 땜시롱 막간을 이용하여 주변을 둘러 볼 요량으로 식당을 빠져 나왔는데 들어갈 때 살짝 눈길을 끌었던 감 말리는 전경이 보여 살짝 군침도 흘렸다.



식당가 맞은 편 뱀사골 초입에 남원 관광지도가 입간판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그 부근을 맴돌던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와 낙엽을 부리로 흩뿌리거나 통통 튀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이 익살 맞어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 봤고 어느 순간 이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의식해서 인지 갑자기 조신하게 변했다.

올 봄에 무주에서 오마니께서 까마귀떼 덕분에 멧돼지 무리로 부터 위험을 모면한 기억이 있어 지금까지 흉조의 편견과 함께 영물스러움을 발견하곤 까마귀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던 만큼 까치나 까마귀의 친숙함이 정겹기까지 했고, 더불어 눈 앞에서 그런 익살스런 행동이 마냥 귀여워 한참을 쳐다 봤는데 이 녀석도 별 다른 경계심이 없었다.

잠시 들린 산채 식당이지만 몇 년 동안의 숙원도 풀고 함께 입도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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