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의 눈물, 영원산성_20210809

이 하늘에 모든 망설임을 털고 첫걸음 내딛는다.
티 없이 맑던 하늘의 화폭에 치악산의 미려한 선이 수놓듯 이어진 계곡과 만나던 길에 서서 또다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마음 구름이 걷히고, 자만이 겸허해지던 순간이다.
모처럼 산에 업혀 걷는 동안 사념 속에 지독하게 기생하던 잡념이 어디론가 흩어지자 저려오는 다리마저 즐거운 투정 같다. 

전날 밤에 원주에 내려와 늦잠을 잔 원흉도 잊고 이 하늘 아래 치악산 능선을 본 순간 주저 없이 금대리로 향했다.

등산객이 많이 애용하는 황골이나 구룡사 방면도 아니고 하필 금대리?

원주 지인 왈, "일단 조용하고, 구룡사에 비해 접근성이 좋으면서 영원사까지는 거리에 비해 무난해요. 사람들한테 덜 알려졌는데 막상 가 보면 좋을 거예요. 야영장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인데 그래도 그 외 물놀이나 야영 통제 구역이라 거기만 지나면 조용할 거예요." 등등

게다가 영원산성이 있어 악명(?) 높은 명산, 치악산에 연을 맺을 좋은 매개체가 있지 않나.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만 챙겨서 고고!

영원사까지 가는 길은 포장된 길이라 수월하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가는 도중 민가도 보이는데 초반에만 등장하고 나머지는 녹음이 우거진 탄탄한 길로 여름의 정점에 볼 수 있는 매혹적인 칡꽃을 볼 수 있었다.

여느 유명 계곡치고 물이 깨끗하지 않은 곳은 없겠지만 특히나 치악산 국립공원은 허용된 일부 구역을 제외한다면 개울 출입이 원천적으로 통제되고, 통제하려는 적극적 의지도 반영했다.

가령 곳곳에 주의 표지판 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제 시설물을 이용했다.

아무렴 모두를 위한 거라면 원천적으로 보호해야 스것지.

가끔 이런 비포장길도 있지만 차량 한 대 너끈히 지나갈 수 있었다.

이런 길도 수풀이 우거져 비교적 여름 더위에 위안이 된다.

치악산이라... 두근두근.

정말 치가 떨리고 악소리가 날까?

애석하게도 날개가 불편한 매미 한 마리가 바닥에 뒹군다.

이럴 때 도와줄 수 있는 건 길 가장자리에 옮겨 주는 것 뿐이라 쏘리쏘리~

수자원 보호 목적으로 물에 접근을 금한다고 계속 써붙여 놓았다.

역으로 접근을 금해서 물이 수정처럼 맑다.

늦잠 잔 핑계로 영원산성까지만 가는 건데 그래도 이렇게 보면 치가 떨리고 악소리 나지 않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말 치가 떨리고 악소리 난다.

비로봉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구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눈에 보이지 않던 난이도 표시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는데 '매우 어려움' 코스가 비로봉과 남대봉 코스였다.

영원사에 들기 전, 옆길에 들자 수국이 반겼다.

한여름의 더위를 생각한다면 금대리는 조금 시원한 감은 있어 비교적 걷기 수월했다.

현혹되지 마라 했거늘 또다시 현혹된다.

적막하지만 무겁지 않고, 뜨거운 햇살이 득세지만 진중한 사찰에 닿아 갈망하던 한 모금 물에 털어내고자 했던 땀을 내려놓는다.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사찰과 달리 이내 쏟아질 듯한 산자락의 장쾌한 기세에 또다시 현혹된 마냥 길이 유혹하는 곳으로 걷게 된다.

그저 단촐한 사찰에 지나지 않지만 치악산에 기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중하고 무게감이 느껴졌다.

 

치악산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 영원산성
영원산성은 치악산의 남서쪽에 있는 석축 산성으로, 2003년 6월 2일 사적 제447호로 지정되었다.
치악산 남서쪽에 있으며 돌로 쌓은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에 쌓았다고 하나 확실한 고증이 없다.
또는 후삼국의 혼란기에 양길(梁吉)과 궁예(弓裔)가 이곳에 거처하면서 인근 고을을 차지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문헌에는 영원성이라 하여 둘레가 3,749척이며, 성 안에 우물 한 개와 샘 다섯 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둘레 4k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으며 높이는 1∼3m이다.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원주와 이웃 고을 주민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지켰으며, 치악산의 서쪽 중턱에 있는 금대산성이나 해미산성과 서로 교류하여 적을 물리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리잡고 있다.
근래에 당시 군사들이 쓰던 솥이며 숟가락 등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금두산성, 해미산성지도 남아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영원사를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 가파른 계단길이 전방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지만 지속적인 오르막길이 어느 순간 완만해지고 계단길이 등장하는데 그 계단길 가운데로 뻗은 소나무의 멋진 자태에 잠시 한숨 돌렸다.

이 길에서 만나는 반가운 친구이자 든든한 누님형님 같았다.

다리 건너 바위 틈을 지나는 길인데 무심코 이 멋진 길을 지나칠 뻔했다.

다음 여정길에 이곳은 꼭 들러야지.

많이 온 거 같은데 영원사에서 겨우 400m??

장난하나!

아님 저질 체력이 문제냐?

뿌듯한 오르막길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산성이 보였다.

산성을 지탱한 건 돌뿌리 뿐만 아니라 처절한 역사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등장한 영원산성은 깊은 숲에 묻혀 외부와 단절되었다.

군데군데 뱀조심 문구도 보였다.

이 구간은 급경사라 우회하는 길을 이용했다.

'뱀주의'란 문구대로 치악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까치살모사의 서식지다.

뱀은 여간해서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아 종종 산에서 뱀을 보게 되는데 서로 개거품 물면서 도망가기 바쁘다.

암튼 무조건 조심하고 길만 다녀야겠다.

성벽을 따라 같이 진행되는 길은 비교적 뿌듯한 오르막이었다.

남문에 다다르면 오르막 기울기가 조금 가팔라지는데 왠지 한숨 돌려야 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인지 수풀이 꽤나 우거져 있었고, 인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점차 올라갈수록 성벽의 소재와 컨디션이 꽤 차이가 났다.

아래 성벽이 정갈하고 근래 복원한 흔적처럼 돌이 말끔했다면 올라갈수록 오래된 티가 역력했고, 많이 흩어져 있었다.

오르던 중 틈 사이 청명한 하늘이 보였다.

짧은 여정에서 이런 청명한 날씨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이런 망대는 꽤나 가파른 지형에서 높게 쌓인 성벽의 일부라 아찔한 기분도 들었다.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이번 여정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더위를 식힐 겸 한숨 돌린 뒤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백운산 방향 같은데 언뜻 드러나는 주변 산세가 연이은 장벽처럼 하나같이 거대하고 하늘과 닿는 선이 미려했다.

오를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좀 더 여유가 생겨 시야가 넓어져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거미줄이 오후 햇살을 굴절시켜 반짝였다.

멋진 길도 다시 보자.

영원사에 다다라 남대봉 계곡길 방면을 바라보자 온통 넝쿨로 도배되어 있었다.

치악산의 악명(?)을 가진 코스 중 하나라는데 조만간 만나자.

치악산의 전설이 깃든 남대봉 상원사 코스는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치악산은 북 비로, 남 남대인가 보다.

비로봉과 남대봉의 '매우 어려움'이라...

정말 어려운 걸까? 아님 자연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겁을 먹고 접근을 못하게 하려는 속셈일까?

그건 직접 체험하는 수밖에.

돌아가는 길에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유희는 넘쳤다.

집에서 만만하게 올 수 있는 원주에 깊디깊은 산속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을 찾은 건 꽤나 큰 수확이다.
늑장과 갈등에 시간을 허비한 결과로 후회의 앙금은 남지만, 허탈 이면에 흡족한 여운도 남아 다시 오게 만드는 셀렘의 씨앗도 뿌렸다.
비록 3시간 여 산책이라 남대봉 능선까지 밟지는 못하고 영원산성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수풀이 우거진 길을 거닐며 오롯이 길의 경이로움을 곱씹는 게 얼마만이던가.
더불어 주변을 장막처럼 둘러친 산세는 혼자서 마법의 주문처럼 곱씹는 몰입이 범접할 수 있는 차원을 초월하여 마치 상공의 두터운 적란운 상층에 평화와도 같아 산세를 정독하는 쾌감은 길에서 간헐적으로 마주하는 야생화의 향긋한 파동이 더해져 무심하게 지나치는 시간조차망각했다.
이 길을 오르는 많은 계단처럼 영원사까지의 평탄한 길과 가파르고 지속된 오르막길이 반복되며 자칫 무료할 틈이 없는 이번 여정, 원주 지인의 사려 깊은 추천에 감사드려야지. 

이건 남에게 보이거나 가식적일 수 없다.

그냥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이 천성일 때 가능한 것.

단언컨대... 마음이 아름답고 포근한 분...
원주에 와서 차에 내리는 순간 훈훈한 정감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