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유희의 찬가, 치악산 종주능선과 남대봉_20220504

사려울 2023. 3. 8. 18:24

칼날 같은 능선은 아니지만 치악산의 종주능선길을 걷는 건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유희로 가슴 벅차다.
전형적인 오솔길로 길 폭은 한 사람 지나기에 자로 잰 듯 알맞고, 길가 유기물은 어느 하나 특별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것 하나 없이 여느 길과 완연히 다른 기분으로 착색시켜 이따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충족된 목적에 한숨 응수하며 오를 때의 고단함을 잊게 만들었다.
길이 아름다운 건 그 길의 필연을 역설하기 때문이고, 또한 오래된 시간의 자취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이 잉태된 땅에 불쑥 들어서 환영 받지 못하는 불청객은 길로 인해 손님이 되고, 친우가 되며, 때론 제자가 된다.
비록 뿌연 대기가 세상으로 뻗어가는 시선을 시샘하고, 용인하지 않지만 이 길에서 만큼은 세속과 다른 민낯을 하나씩 열거했다.

 

힘든 여정의 감로수, 치악산 남대봉/상원사_20210817

평소 산을 거의 타지 않는 얄팍한 체력에도 뭔가에 이끌린 듯 무작정 치악산기슭으로 오른 죄. 평면적인 지도의 수 킬로를 우습게 본 죄. 시골 출신이라 자연 녹지의 낭만만 쫓은 죄. 여전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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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를 빠져 나와 종주능선길로 접어들자 언뜻 세존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원주와 서울을 주시하고 있는 조물주의 얼굴 옆모습 같았다.

종주능선길은 계곡길과 달리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게 되는데 산에 오를 때의 둔탁한 근육 속 피로가 상원사에서 털렸는지 힘든 걸 감쪽 같이 잊고 매우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길 만의 특별한 느낌에 도치되어 어쩌면 이 길을 찾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길이 여느 동네 흔한 길이었다면 묵직한 감동을 받았을까?

치악산이기 때문에 길가의 작은 야생화도, 산 아래 전경들도 각별해 보이는 게 아닐까?

봄이 채색하여 상큼한 초록빛깔과 야생화의 다양한 컬러가 어울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화려한 동심원을 그렸다.

남대봉으로 향하는 길은 이렇게 걸음에 친화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지 희열을 잔뜩 충전시켰다.

지상에서 증발해 버린 봄이 치악산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세존대의 모습이 가장 진가를 발휘하는 지점이라 더욱 그 모습이 얼굴 옆모습과 판박이다.

더욱이 그 주변에 진달래와 머리에 빼곡히 자라난 생명은 평범할 뻔한 바위에 하나의 또 다른 인격을 부여했고, 원주를 필두로 한 중원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애써 삼키는 고뇌 같았다.

남대봉에 오르는 완만한 오르막길은 지금까지 치악산의 계곡길과 확연히 다른, 흔한 동네 언덕 같은 정취였다.

치악산을 대표하는 남쪽의 파수꾼, 남대봉에 도착했다.

북쪽 비로봉, 남쪽 남대봉, 그 가운데 끼어 있는 향로봉은 치악산을 대표하는 3봉으로 비로봉과 달리 능선길과 하나로 연결된 남대봉은 완만하여 산봉우리가 되면서 동시에 종주능선길의 일부였다.

이런 모습과 달리 가지에 신록이 맺혀있었다.

여기 올 때마다 이 나무에게 다가가 억척같은 생명의 이야기를 들었고, 내적 본능을 깨쳤다.

능선길은 이따금 큰바위를 우회하여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했다.

그래서 어느 하나 같은 모습도, 느낌도 없이 다른 기분으로 도치되었다.

특히나 개미목의 지형과 큰 바위를 지날 때 어쩌면 가장 위험한 길이 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데크 계단이 있어 위험과 기우는 지워지고 걷는 재미에 활력은 배가 되는 곳이었다.

능선길은 이채로운 형태로 맞이했다.

칼끝 같거나 거대한 바위 옆으로 우회하거나 햇살 넘치는 초록의 숲으로 이어지거나.

저얼대 식용하면 안 되는 호랑고비란다.

종주능선 전망대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거대한 바위가 갈라진 개미목의 늠름한 모습과 함께 산허리 솜을 뿌린 듯한 산벚이 눈에 띄었다.

원주 방면에 미세 먼지로 조금 뿌옇긴 해도 쏟아지는 햇살을 막을 수 없었다.

종주능선길은 치악산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남대봉에서 시작된 능선길은 비로봉에서 화려한 축포를 터트리며 난공불락과도 같은 치악산의 늠름한 거대한 산줄기의 필연이었다.

포유류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 이어진 능선의 정점과 같은 종주능선 전망대에 오르면 지금까지의 기다림과 인내를 통찰할 수 있었다.

많은 유혹과 스스로에 대한 나약함이 문득 고개를 쳐들며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골룸처럼 고행의 의문과 혹사를 좌절이 아닌 당위성으로 연결하려는 가쁜 호흡으로 우린 얼마나 많은 포기에 익숙해 왔던가!

편하고 빠르고 익숙한 길이 진리라 여겨왔던 지식은 어쩌면 비성숙한 자신의 합리화의 피조물 아닐까?

전망대 일대의 세상은 그런 진리를 처참하게 부수며 줄곧 걸어왔던 실낱 같은 희망에 빛줄기와 같았다.

치악산에서 가장 우뚝 선 비로봉은 언제나처럼 당당한 기세로 하늘을 향했다.

여기서부터 치악산에 펼쳐 놓았던 설렘을 추스르고 마음은 하산을 준비했다.

종주능선에서 급격한 내리막과 함께 이제는 오를 때의 지난한 오르막과 반대로 뿌듯한 내리막을 걷게 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능선길을 걷던 중 아쉬움을 반사적 반응으로 문득 뒤돌아 봤다.

비로봉까지 이어진 능선길이 역동적이었다.

내리막길 중 일부 급격한 경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를 때만큼 길거나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남대봉에 오르는 길 중 계곡길은 '매우 어려움'이지만 영원산성길은 '어려움'인 까닭이다.

약속한 듯 일시에 뻗어 나와 따가운 햇살을 잘게, 온화하게, 화사하게, 살뜰히 부수는 신록은 꽃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논한다.

지나온 능선이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고 나무에 가릴 듯 말 듯 보이는 전망대가 멋진 능선에 걸텨 앉았다.

영원산성을 지나 고도가 낮아지면 신록도 부쩍 성숙하여 제법 짙푸름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영원산성의 성곽을 따라 한참을 내려왔고, 이따금 보이는 야생화, 특히 노루삼은 산에 숨은 매력덩어리였다.

원주를 기점으로 서편은 나지막한 대지고, 동편은 강원도의 전형적인 산간지대로 그 교차지점은 치악산이다.
그래서인지 계절의 미묘한 경계와 강원도에 혈관처럼 뻗어나가는 대동맥과 모세혈관의 교차점이기도 하다.
힘들게 올라 하산길을 서두르면 못내 아쉬울까 싶어, 때마침 고개 내민 신록의 선하고 고운 빛깔에 더해 쏟아지는 햇살이 잘게 쪼개지고 무뎌져 시신경이 현혹되어 걷는 걸음은 수 없이 향하고 멈췄다.
그 길에서 허리를 쑥이고 쪼그려 앉아 보면 당차고 다소곳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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