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거대한 핑크빛 출렁임, 합천 황매산_20220502

사려울 2023. 3. 5. 05:36

꽃이라고 해서 꼭 향기에만 취하는 건 아니다.
가슴속에 어렴풋 그려진 꽃이 시선을 통해 굴절된 꽃을 통해 꽃망울 필 때면 잠깐의 화려한 향이 아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관통하여 끝끝내 취한 나머지 행복의 추억에 가슴 찡한 향을 터트린다.
때론 선명한 실체보다 아스라한 형체가 상상의 여울이 되어 흐를 때 비로소 그 기억을 품고 사는 내가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의 꽃밭에서 유유히 도치된다.

1년 전 황매산 행차할 때 코로나 백신 여파로 밤새 끙끙 앓았었는데 이번엔 그런 무게가 없어 한층 가벼웠고, 더불어 조카 녀석도 한 자리 차지해서 웃는 횟수도 많았다.

황매산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대병면과 산청군 차황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1,113m에 이르며, 준령마다 굽이쳐 뻗어나 있는 빼어난 기암괴석과 그 사이에 고고하게 휘어져 나온 소나무와 철쭉이 병풍처럼 수놓고 있어, 영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산이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합천호와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이 모두 보인다.
합천호는 가깝다 못해 잔잔한 물결의 흐름까지 느껴질 정도다. 
합천호의 푸른 물속에 비춰진 황매산의 세 봉우리가 매화꽃 같다 하여 수중매라고도 불린다.
이른 아침이면 합천호의 물안개와 부딪치며 몸을 섞는 산 안개의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출처] 황매산 군립공원

 

황매산의 분홍 나래_20210428

하루 주어진 시간이 졸음에 힘겨워할 무렵 한참을 달려 황매산에 도착했다. 이미 차량 행렬은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길처럼 줄지어 하산하는 길이지만 다행히 낮은 머물러 떠날 채비는 늑장이었

meta-roid.tistory.com

 

 

고원에 부는 세상 향기, 황매산_20210513

인간이 품어온 동경이 쉬어가는 곳, 철쭉이 질 무렵 뒤따라온 신록의 물결이 바람결에 출렁이며 자욱한 봄내음이 가슴까지 술렁인다. 봄이면 철쭉이, 가을이면 억새가 터줏대감이 되어 무던히

meta-roid.tistory.com

쉬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려 고령휴게소에 도착, 모두 급한 용무를 끝낸 뒤 다시 출발하려는데 휴게소 뒤편에 작은 텃밭이 있어 히쭉 쳐다보자  한무리 불두화가 화사한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수국인 줄 알았는데 카친님의 가르침에 의거, 곱슬곱슬한 부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불두화란다.

가까이 다가가서 화사한 꽃을 담으려 했지만 까만 산모기 부대가 기습하는 바람에 후퇴해 버렸다.
까만 모기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저 꽃과 내 코가 붙어서 댕이처럼 킁킁거렸을 터, 바로 옆에는 개조심 푯말이 쓰여있는 걸 보면 나보고 조심하라는 선견지명이 용해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수국이 보기 좋아도 특공 무술을 연마한 산모기 부대는 더러워서 피한다, 퉤퉤!

1년 전에 비해 조금 넘은 시점임에도 꽃잎이 지기 시작한 작년과 달리 올해엔 꽃망울을 막 틔운 시기라 우려를 불식시키듯 절정의 미모를 과시한 찰나 같은 순간이었다.
게다가 전날 살짝 뿌린 봄비에 더해 기세 좋은 바람살로 비교적 청명한 대기까지 곁들여져 그 고운 빛결 어느 하나 견줄 수 없었다.
인생에 있어 찰나 같은 순간, 현실이 아닌 꿈이라도 조~타
세상을 향해 터져 나오는 봄빛에 흠뻑 젖은, 그 달콤한 자극에 젖을 수 있어서.

줄지어 황매산으로 진입하는 차량의 행렬 따라 차를 주차했는데 여긴 주차 안내하시는 분들이 많아 엄청난 인파, 차파에도 불편이나 불안 없이 주차를 할 수 있었고, 작은 매장들이 입점한 곳도 밀리는 불편 없이 바로 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출발점인데 벌써 가슴에 각인된 핑크빛은 두텁게 쌓였다.

인파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휩쓸리면 철쭉 군락지를 두루두루 볼 수 있었는데 완만한 오르막길을 어느 정도 걷자 흐드러진 철쭉 너머 미려한 황매산 정상과 연결된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물론 철쭉은 주차장 인근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사진 찍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생선 비늘처럼 우뚝 솟은 황매산 정상부에서 좌측에 도드라지게 돌출한 부분이 정상되시겠다.

또한 고원 같은 지형에서 철쭉을 제외하면 억새 군락지라 황매산은 소위 여행에 최적화된 계절인 봄과 가을 산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전형적인 봄날씨라 산중은 포근함과 코끝에 스치는 서늘함이 공존했다.

가족들과 천천히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는 내내 만개한 철쭉은 동행했다.

따가운 햇살도 화려한 철쭉을 이간질시키지 못하고, 세찬 산바람도 봄에 빠진 몰입을 훼방 놓을 수 없었다.

철쭉 사이 길을 걷다 보면 드문드문 사진 찍기 수월한 데크 같은 게 설치되어 있어 인물 사진을 찍든가 아님 철쭉을 찍든가 이쁜 사진이 담겼다.

핑크빛 물결 너머 나무 한 그루가 압권이었다.

거대한 무리의 철쭉 군락지에서 서편의 작은 언덕을 넘으면 또 한무리의 철쭉 군락지가 나오기 때문에 서서히 그쪽으로 이동했다.

하늘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햇살이 부담스러웠지만 봄의 작은 투정 정도로 여겨도 될 만큼 고원의 서늘한 공기와 궁합은 좋았다.

제1철쭉 군락지와 제2철쭉 군락지 경계인 작은 언덕에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하늘을 바삐 날아다니는 까마귀.

제2철쭉 군락지에도 철쭉에 가린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고, 철쭉 사잇길로 거침없이 헤쳐 나갔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다.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면 그 자체로 아직은 미완의 존재지만 철쭉과의 어울림으로 인해 미완이 아닌 결정체로 보였다.

여름이 되면 온통 녹음으로 뒤덮일 때 저와 같이 도드라져 보일까?

지난해 걷다 만 궤적을 따라서 갈 길을 잃어버린 구름인 양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시시각각 지나치는 꽃잎을 무심히 응시하며, 또한 물끄러미 바라보는 꽃잎과 시선을 마주하며 쏟아지는 한 줄기 햇살에 아름다운 편지를 매듭지어 응수했다.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이 시선과 시선 사이에 끼어들어 살짝 찡그린 꽃잎의 미소 한 조각 떨어져 나부낄 때면 불쑥 하늘로 손 내민 봄 가지도 덩달아 찡긋 거렸다.
많은 발자국이 꽃길 공백에 침묵을 깨어도 싫은 내색은 커녕 그 지나는 길손의 어깨를 토닥이는 봄정취의 관용은 거듭 붉게 뻗어 나와 푸르게 승화했다.
아름다운 풍경 따라 걷는 사이 산책도, 기억도 모두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지도상 황매평원 중 산성과 정상부 아래 불긋한 부분이 제4철쭉 군락지며 거기와 철쭉 발아래 철쭉 군락지 사이 공백처럼 연한 신록을 띈 곳이 억새 군락지가 된다.

평이하던 퍼즐 조각들이 모여 아무렇게나 자리를 채운 것 같지만 기실 절도가 있고, 신중한 의미가 베어든 규칙이었다.

다른 가족들을 뒤로하고 제3철쭉 군락지로 넘어와 그 사잇길을 따라 헤집고 다녔다.

때마침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던 찰나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며 사진 그물에 포획되었다.

카메라에 다이내믹 모드를 작동시켜 사진을 찍었다.

특유의 강렬한 색상으로 변조되자 그동안 존재감을 잊고 있었던 구름이 도드라졌고, 산 너머 긴 띠처럼 걸린 구름으로 인해 고원의 정취는 한층 풍성해졌다.

작년에 황매산에서 찍은 사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도가 바로 요 지점이었다.

황매산이 온통 핑크빛으로 뒤덮였다고 해서 철쭉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신록과 녹음, 핑크 솜뭉치를 흩뿌려 놓은 것 같다.

해가 잔뜩 기울어 서산 너머에 걸렸고, 가야 될 시간임을 암시했다.

다른 가족들은 카페에서 기다리며 먼 길 달려온 피로를 풀고 있었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통해 천천히 내려오던 중에도 철쭉에 질리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고,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고자 오후 햇살이 철쭉 꽃잎에 부서지는 이 장면도 담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쉬움이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밑으로 내려오자 카페에 있을 줄 알았던 가족들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셔터를 내릴 준비 하느라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고.

이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심지어 변함없던 석양조차 특별한 곳, 시신경만 호강한 게 아닌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즐겁던 날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