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고산에서 빠져 나와 서둘러 영양으로 향했다.
옥방까지는 이제 편하게 올 수 있어 그만큼 시간을 단축 했고, 그 이후로는 예의 그 고불고불한 산길을 넘어 영양 생태숲으로 넘어 왔는데 출발할 때 불길한 예감은 산길을 넘어 오는 동안 확신으로 바뀌어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작년 10월에 2차례 먼 길 마다 않고 방문 했건만 유독 여기 오는 날만 골라서 비가 내리더니 올해도 어김 없이 비가 마중 나왔다.
뭔 일이다냐!
몇 번 왔다고 길은 이제 익숙해 졌는데 비까지 익숙해지면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해 안타까워 부득이 아이폰으로만 촬영 했던 작년과 똑같이 올해도 그럴 판이었고, 도착해서 차창 밖은 세찬 비바람이 낯선 자의 방문을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여기 방문 했던 첫 해 2015년만 온화 했던 기억이 난다.
(반딧불이를 만나러 갑니다_20150627, 영양에서 가을을 만나다_20151024, 가을을 따라 영양으로_20181017, 영양의 숨겨진 보배_20181017, 다시 찾은 영양의 가을, 한티재에서 생태숲_20181026)
여전히 굳게 닫힌 통나무집 앞은 쓸쓸히 마당을 지키는 나무 몇 그루가 가을에 채색되어 있고, 세찬 비바람을 못이겨 뽀얗게 떨어지는 낙엽도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닐까 싶어 잠시 차에 돌아와 앉아 있는 동안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진 것 같아 관리사무소 앞에 주차한 뒤 수생식물 관찰장을 통해 숲속 광장으로 향했다.
행여 하는 심정으로 가방에 카메라와 커피, 샌드위치를 넣어 숲속광장으로 왔는데 간절한 기분 탓인지 비가 조금 잦아드는 기분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벤치에 가방을 두고 고프로를 들고 주위를 서성이는데 눈에 띄게 비가 가늘어졌고, 후드를 결착한 채 요령껏 사용한다면 카메라 렌즈에 낙인을 피할 수 있겠다.
우선 비를 피한 상태에서 육각정 솔바람 전망대를 바라 보고 사진을 찍는데 그 너머 산에서 구름이 용솟음 쳤다.
비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건 쨍한 햇살이 없어 수전증만 없다면 사진은 무난하게 나오거니와 이런 산속에서 구름과 섞여 있는게 묘한 기분이 들기 까지 했다.
산중에서 비와 함께 쉬고 있던 구름이 흐느적거리며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 마치 수중에 수초가 흐르는 물살에 이리저리 유연하게 춤을 추는 모양새라 한 동안 그 장관을 쳐다 보고 있었고, 그러던 사이 빗방울이 부쩍 가늘어져 조금만 신경 쓴다면 우산 없이도 카메라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다.
산중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언제 비가 굵어질지 몰라 분주하게 주위를 돌아다니며 가을 풍경에 흠뻑 취했다.
숲속광장의 중심은 이렇게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처음 방문과 비교해 보면 4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의 자라지 않은 것만 같다.
뿌리가 깊고 크게 뻗는 동안 서로 엉켜 버린 건가?
주차장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동심원처럼 그려진 길을 따라 걸으며, 때론 앙상한 나무를 만나거나 때론 한창 가을이 무르익은 나무, 때론 아직도 설익은 가을 옷을 입은 나무를 일일이 만나 본다.
작년과 비한다면 통고산과 마찬가지로 가을이 조금 늑장을 부린 티가 나는게 여전히 푸른 나무가 많다.
가장 바깥 동심원길을 따라 걸으며 가을 정취가 절정에 달한 이 장면을 보면 어찌나 설레는지.
여전히 가을 옷으로 갈아 입는 단풍도 많지만 길에 자욱한 단풍도 많아 아주 아담한 사이즈지만 가을 느낌은 이 하나만으로도 함축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길을 따라 자작나무 교실로 향하는데 머리 위에서 나풀거리는 가을 손짓에 소강 상태로 접어든 비를 피해 냉큼 사진으로 담았다.
여전히 비는 한 두 방울 떨어지지만 렌즈만 하늘로 향하지 않는다면,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무사히 렌즈 상처 없이도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있겠다.
자작나무교실에 발을 들여 놓자 이 자리에서 스피커를 두고 음악을 듣던 추억이 되살아 났다.
사람들이 찾지 않던 텅빈 공원에 앉아 음악을 틀어 놓고 감상과 대화를 나누던 그 사소한 시간들이 지나고 보면 사소했거나 허투루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기억이 유기적으로 엮여 하나의 추억이 되듯 그 기억들이 묶여 하나의 강렬한 추억이 될 줄이야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된다.
그런 규정할 수 없는 깨달음을 반복하며 현재의 시간들이 충실해지려 하는 건지 모르지만, 결국 그 추억으로 인해 이 먼 곳까지 주저 없이 달려와 이 땅을 밟으며 작은 소리에도 감사하고 있었다.
마치 야외음악당처럼 꾸며진 자작나무교실은 주위가 하얀 자작나무로 둘러 쌓여 있고, 군데군데 다른 나무들도 응원 하려는지 뒤섞여 있는 모습이 가을을 맞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숲속광장을 한 바퀴 둘러 보고 광장의 중앙으로 와서 주위를 다시 한 번 더 둘러 보자 강한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이 대해에서 어딘가 흐르는 해류처럼 크게 용솟음쳤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도착한 덕분에 시간에 대한 구애를 받지 않고 구름처럼 유유자적하며 하나씩 면밀히 가을 색결을 감상하는 이 순간, 시간과 바람이 멈춘 착각에 이 공간을 홀로 전세낸 사람처럼 익숙한 발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차분히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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