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광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세세히 가을을 낚은 뒤 생태숲 가장 깊이 있는 하늘광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고프로로 계속 촬영을 하며 허술하게 둘러봤던 소나무숲을 천천히 둘러봤다.
허나 그 전까지 몰랐던 진면목,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빼곡한 소나무숲이 압권이었다.
하늘광장에 도착하여 비록 가늘어진 빗줄기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는 상태라 비를 피할 수 있는 야생허브원 앞 천막에 타입랩스를 작동시킨 상태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뽀개고, 광장 일대를 돌아 다녔다.
그 전에 그리 많던 전나무가 대부분 잘려져 나간 상태인데 노랗게 변하는 잎이 그대로 인걸 보면 얼마 전에 나무를 쳐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가을에 맞춰 녹색 이파리가 가지에서 부터 샛노랗게 물드는 모습이 전나무숲을 이룬 상태에서 빛결이 고왔던 걸 대조해 보면 몇 년 동안 자란 시간이 아깝다.
하늘광장의 중심은 숲속광장과 흡사 복제한 것처럼 가운데 동그란 소나무 화단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곧게 하늘로 뻗은 이 모습이 광장, 아니 이 공원 전체의 중심에 설 자격은 충분하다.
하늘광장 중심 소나무 옆 잔디광장은 이렇게 잘려진 전나무가 소복하다.
이 만큼 자랄 정도면 몇 년이란 시간이 걸렸을 텐데 더 이상 전나무가 베어진 곳은 어쩐지 맨살이 드러나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이었던 만큼 아쉬움은 더 증폭 되었다.
한 발 떨어진 상태로 하늘광장을 바라 보면 이 오지에 원래 자리 잡고 있을 숲이 떨어져 나가 뜬금 없는 풍경 같기도 하고, 이렇게 조성된 공원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지독한 고독이 자욱히 깔려 있다.
일 년 중 여기를 찾는 사람이 과연 몇 될까?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를 아끼고 보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속 풍경치곤 이질감 없이 풍성한 생명으로 뒤섞이는 공간이 되고 거듭나길 바란다.
특산식물원인데 여기도 여전히 전나무가 모조리 잘려 나갔다.
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만으로 이 너른 공간이 허허롭다.
길의 우측은 교과서원이라 여러 식물을 배양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야생화가 자라는 땅엔 대부분 가을에 맞춰 특유의 빛을 잃었지만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고, 심심하지 않게 이런 야생화가 피어 하늘을 향해 꽃잎을 활짝 열어 젖혀 내리는 비와 어울렸다.
비록 꽃잎은 작지만 황량한 땅에 이 작은 꽃조차 시선을 끌 만큼 화려하게 다가왔고, 만약 봄이 오는 계절에 이 공간이 꽃으로 뒤덮힌다면 어떤 모습 일까 궁금했다.
자연은 소외에 많은 애정을 쏟아 부어 황량한 벌판을 필시 아름답게 중독 시킬 거다.
가을의 정점에서 보도블럭 사이에 핀 야생화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고귀하다.
시간을 염두해 두지 않고 느긋하게 머무르는 사이 비는 다시 굵어지고 비가 내린 오후 시간은 깊어감과 동시에 전형적인 산골 일기처럼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16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곧 날이 저물것처럼 빛이 많이 약해져 봇짐을 주섬주섬 챙겨 왔던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굵어진 빗방울로 인해 카메라는 가방으로 안전하게 모셔 두고 아이폰으로 찍으며 길을 나아갔다.
야생의 소나무가 빼곡한 숲속쉼터로 가던 중 장뇌삼체험장 자리는 이미 숲의 일부로 희석되어 원형을 찾을 수 없었고, 차라리 허무맹랑한 탐욕을 자극할 바엔 멋진 소나무숲으로 거듭나는 편이 좋을 수 있겠다.
숲속의 길은 이렇게 일일이 데크길로 포장되어 숲을 밟지 않아도, 비가 내려 질퍽이는 수고로움 없이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고, 숲도 지킬 수 있을 것만 같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음지식물원은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은 없고 무덤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소나무 숲속은 데크길과 더불어 곳곳에 벤치와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자리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처음 방문 시 일행과 함께 그 자리에 누워 소나무숲 특유의 향그로운 향기에 취한 적 있는데 여전히 소나무의 향긋한 내음이 세찬 바람에도 아이덴티티를 부여 잡고 지나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미소를 지어 내게 만들었다.
빼곡한 소나무숲 사이로 매끈한 데크길과 중간중간 방문객들에 대한 배려로 벤치가 놓여져 있는 숲속쉼터는 걷는 내내 소나무향이 아득한 추억을 부채질하여 세세하고 또렷한 회상을 거침 없이 기억의 수면 위로 차오르게 했다.
주위를 둘러 보면 이런 멋진 소나무숲을 찾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잊혀져 버린 줄 알았던 솔숲의 향취가 다시금 되살아나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줬다.
가던 길이 아무리 멀고 시간이 늦었다고 할지언정 이 자리에 잠시 서서 하늘을 향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억척스럽던 문명의 활력을 탈피하여 잠자고 있던 후각을 자극함으로써 멀어지는 자연의 기억을 되살려 줬다.
숲속쉼터에서 수생식물관찰장과 숲속광장 사이로 난 작은 길조차 방문객의 배려인지 벤치가 듬성듬성 놓여져 있다.
솔잎이 소복하게 쌓여 이 길을 밟으면 소리 없이 폭신한 감촉은 신발을 신고 있더라도 고스란히 발을 통해 전달 되었다.
숲속광장에서 하늘광장으로 올 때 포장된 콘크리트 길과 달리 이번엔 데크길을 이용했다.
점차 낮은 곳으로 가며 아래에 놓여 있는 숲속광장과 자작나무숲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비는 다시금 굵어져 사방은 온통 비가 사물에 닿으며 내는 소리로 가득했고, 하늘에는 두터운 구름이 덮혀 개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우산 없이 얇은 레인코트를 입고 걸으며 뺨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한껏 안고 있던 청량감을 피부에 나누어 줬다.
길은 자작나무교실을 거쳐 숲속광장으로 안내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데크를 수놓은 나무의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내리는 비가 보드라운 땅에 닿으며 사각이는 소리는 틀고 있던 음악마저 크게할 만큼 달콤한 소리를 연신 재생 시켰고, 사방이 그런 소리에 입혀져 지금까지 꽤나 오랫 동안 머물렀음에도 피로감은 전혀 없었다.
다시 이 자리에 서서 공원을 이룬 모든 것들과 이 자연을 아름답게 수놓은 가을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지독히도 고독한 공간인 양 인적이나 자취가 거의 없어 소홀할 것 같지만 가을은 섬세한 아름다움을 깨워 형형색색 멋진 경관과 더불어 여기에 묻어둔 추억들도 생생하게 펼쳐 줬다.
그 추억의 끝은 과연 언제일까?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들이쉬는 호흡처럼 가을이 만들어준 추억은 어느 계절보다 변질 없이 영원히 이 자리에 타임캡슐처럼 보듬어 안고 있다 필요할 때 내 앞에 공손히 되돌려 주고 다시 묻어두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이 골고루 있겠지만 세상 모든 비교를 떠나 내 추억을 만들어준 이 숲에 감사 드린다.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추억을 묻고 이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자.
수하면 마실에 들러 간단한 식료품을 구입해서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산길로 경유하여 통고산 숙소에 가까워질 무렵 금새 날은 어둑해져 오던 길은 암흑 천지 였다.
이따금 헤드라이트 불빛에 반사되는 가을은 어떤 모습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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