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영양의 숨겨진 보배_20181017

사려울 2019. 7. 22. 00:20

이방인에 대한 경계일까?

카랑카랑한 새소리는 날이 서 있고, 온 세상 사물을 두드려 대는 빗소리는 두서 없다.

인적이 거의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은 낯선 발자국이 신기하고, 콘크리트 먼지에 익숙해진 시신경은 그저 모든게 이채롭다.

조금 이른 가을이라 마냥 아쉬움이 남는 건 미련의 기대를 양산하고, 결정에 매말라 있던 발걸음은 한바탕 퍼붓는 가을비 마냥 호탕하기만 하다.






굵어진 빗방울에 옷이 배겨낼 도리가 없어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수생식물 관찰장의 데크길로 한 발짝 한 발짝 자근하게 걸어갔다.

관리사무소 바로 뒷편이라 아주 가끔 지나가는 차가 빗물에 젖은 도로를 가르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대기를 파고 들어 허공으로 뻗어 흩어졌다.

세상의 소리라곤 오로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우산에 부딪히고 작은 연못에 떨어져 동심원을 그리는 소리, 짙은 녹음에 떨어져 낙엽과 부딪히는 소리 뿐이란 착각이 들만큼 무척이나 고요한 세상이었다.



데크길을 따라 가다 숲속 광장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옆에 자그마한 만남의 장소처럼 반딧불광장이 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차를 세워 놓고 올라온 길이 까마득해 보인다.

그만큼 데크길을 따라 올라 오는 동안 거리감이 마비될 정도로 주위 모든 자연과 계절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고, 오후 5시를 넘어 여전히 낮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도 억누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생으로 방치된 식물들의 키는 한껏 자라고 인간이 재단 했던 성장을 깨뜨려 한층 더 무성해지고 풍성해졌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꺾어 올라오자 생태숲의 숲속광장이 나왔다.

누군가 이 길을 밟기라도 했을까?

참으로 고요한 이 세상은 마치 문명이 쉽게 접근하는 것을 두텁게 차단하여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할 것처럼 공기는 깊은 숲속처럼 텁텁하면서 다가온 계절인 가을 내음이 뒤섞여 낙엽이 지닌 은은한 향도 포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사방은 얇게 내리는 비 소리로 가득했고, 가끔 즉흥적으로 비의 연주에 끼어 드는 새소리는 심심한 자연의 소리에 편견을 말끔히 씻어줬다.

바닥에 깔려 있는 블럭 사이엔 파란 풀이 자리를 틀고 성장하는 중이라 어떤 조건에서도 투정 없이 살아가는 숲의 생명들이 무던한 이치를 엿볼 수도 있었다.




자작나무 교실은 작은 야외음악당처럼 생겨 음악을 작게 틀어 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러 본다면 주위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자연이 함께 들어준다.

바람과 비 소리는 연주의 일부가 되고, 청명하게 메아리치는 새소리는 목소리의 화음이 되어 흥겹게 해준다.




이 익살맞은 가로등 반딧불이는 문명의 오염을 피해 서식해서 그런지 거의 변색되지 않고 특유의 간드러진 미소를 한결 같이 유지한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비구름은 안개처럼 이 지역을 어우르며 지나가는데 한 때는 음악을 펼쳐 놓고 흩어지는 리듬을 음미 했던 적도 있었고, 또 다른 한 때는 반딧불이의 영롱한 빛에 매료된 적도 있었던, 이 곳...

비구름에 덮혀 있음에도 도리어 마음엔 훈기와 포근함이 감돈다.




광장을 벗어나 다시 수생식물 관찰장의 가장 깊은 곳으로 왔다.

도로와 훌쩍 멀어져 버린 거리라 더 이상 도로를 가르는 자동차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와 여전히 자유에 젖은 새소리 뿐이다.



작은 원두막 같은 자리에 앉아 비를 피해도 보고 돌 틈으로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를 가까이 대 보기도 하지만 하염 없이 흐르는 시간은 내가 의도한다고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다.

딱 허용되는 만큼만 즐기고 나머지는 아쉬움으로 남겨 두고 배낭에 챙겨야만 되는게 내가 누려야 될 자연의 경계로 잠시 속절 없는 아쉬움을 참는다면 설렘은 배가 되어 시간과 친숙해 질 수 있다.




차를 세워 놓고 잠깐 둘러 봤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30여 분이 흘러 버렸고, 깊은 산중엔 밤이 일찍 찾아 오는 만큼 올 때와 달리 이미 날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는 운영하는 건가?

누군가 잠시 들렀다 다시 가버리는 걸 보면 자리를 지키는 분이 계시긴 하나 보다.



반딧불이 생태숲 전체 안내도가 있었다.

이번엔 하늘광장과 생태탐방로는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잠깐 사이 다시 시간이 흘러 오후 5시 40분이 넘었다.

어디론가 쉴 새 없이 흘러가는 구름은 여기 일대의 높은 산을 만나 잠시 쉬며 걸어왔던 길을 찬찬히 추스르며 바람이 들려 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을 거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시간은 딱 이만큼.

깊고 높은 산골짜기와 고갯마루를 지나 이제 집으로 가는 길과 일상도 즐겨야만 한다.

바람이 구름을 실어 나르고, 구름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를 뿌리듯 일상에 충실 할수록 이 시간은 더욱 빛을 발하겠지?




앞만 보고 달려 비를 맞으며 높은 고갯길을 지나고 깊은 골짜기를 거쳐 옥방정류소에 도착한 건 오후 6시 20분 조금 넘은 시각, 이미 자연의 빛은 모두 사라지고 중요한 길목과도 같은 위치에서 영광을 누려 왔던 옥방정류소는 36번 국도가 고가로 직선화 되면서 이제 꺼져가는 불빛처럼 발길도 사라져 버렸다.

행여 옥방정류소를 찾는 발길을 위해 등대처럼 불을 밝혀 놓는 것일까?

쇳소리를 동반한 낡은 샷시문 틈 사이로 자그마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 가을 밤은 여전히도 설레고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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