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마저 졸고 있는 한적한 길의 끝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시간의 빈맥만 울렸다.
길을 걷는 동안 거듭 피부에 달라붙는 거미줄은 외면이 쳐놓은 그물로 이방인의 방문을 꽤나 거부했다.
정상에 가까워 비탈길을 걷노라면 길의 끝은 기약 없었고, 발밑 입자는 급히 굵어져 중력의 저항을 원망하던 찰나 하늘이 마주하며 지친 손을 잡아줬다.
오르는 내내 산성에 대한 의심은 정상에 이르러 돌더미가 희미한 정황인지 한무리 소나무만 위풍당당했던 과거를 속삭이며 허망한 세속에 우두커니 절경을 밟았다.
갑자기 나타난 장수말벌이 흥을 깨기 전까지 주위를 둘러 꽤나 심도 깊은 작품에 몰입하여 금세 올라온 수고를 잊는 사유의 가벼움, 너털웃음으로 대신했다.
마산동 산성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테뫼식으로 축조한 석축 성곽이자 산성.
1993년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산동에서 관동(寬洞)의 회덕황씨 재실 미륵원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거의 다 가서 북으로, 또 갈림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속칭 '사슴이골'에 이른다.
이 고을 입구에 외딴집이 있고, 이 집에서 사슴이골 안에 회덕황씨 민묘가 있는 북쪽 뒷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마산동산성이다. 사슴이골이라고 하는 이름을 따서 일명 ‘녹동산성(鹿洞山城)’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성은 표고 150m의 고지에 쌓은 활[弓]처럼 구부러진 산세에 따라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쌓은 성)으로 축조한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약 600m 정도 되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 붕괴되어 있다.
[출처] 마산동 산성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상정원에서 출발하여 대청호수길을 따라가다 마산동 마을회관 앞 삼거리에서 중앙차로가 없는 냉천로로 우회전하여 아스팔트 길을 따라 계속 진행, 약 1.5km를 진행하자 다시 갈림길이 나왔는데 직진을 하게 될 경우 미륵원지와 관동사라는 명소가 있었지만 빠듯한 시간의 한계가 있어 곧장 마산동 산성이 있는 방향으로 좌회전했고, 거기서 다시 1km 조금 못 되는 한적한 오르막 도로를 경유하면 다시 갈림길이 나왔는데 거기서 차량을 주차한 뒤 마산동 산성으로 향했다.
도로에서 마산동 산성으로 향한 이정표가 있고, 길도 선명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진입했지만 가는 길에 거미줄이 많이 걸려 하는 수없이 길가 부러진 나무 한 자루를 휘저으며 외길을 걸었다.
계속되는 거미줄의 방해만 아니라면 길 자체는 선명했고, 오르막 길도 가파르지 않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여전히 거미줄은 간헐적으로 걸려 있었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었다는 방증이었고, 심지어 더럭 의심이 생길 즈음 산악회 표식을 보고 안도할 수 있었다.
조금 진행하다 보면 나무 높이가 급격히 작아지고 듬성듬성 자라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급한 오르막 구간으로 그리 길지 않지만 산은 산이라 가뿐 숨을 몰아치며 걷던 중 완만한 구간이 나옴과 동시에 비로소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 무리가 우뚝 솟은 곳이 산 정상인데 막상 산성을 기대했건만 성곽의 형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상 부근 나무들은 대부분 키가 낮아서 길가 홀로 장대 같은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띄었다.
드뎌 정상에 도착.
한 무리 소나무와 발밑은 돌무더기가 쌓여있었다.
산성의 남아 있는 흔적이었다.
산의 정상이자 산성에 서면 일대 전경을 가리는 나무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뻥뷰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방이 트여 있어 사방을 전망하기에 충분한 보람은 있었다.
남동쪽은 산자락에 살짝 호수가 가려져 보였지만 멀리 관망하기에 충분했다.
산 정상 한 무리 소나무가 산성 터를 홀로 지켰다.
정상의 남서쪽 방면은 길게 이어진 내륙 산능선들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 장벽처럼 늘어선 산능선을 넘어서면 대전 시가지가 펼쳐져 있겠지만 마산동 산성이 200m를 조금 넘는 고도라 그 산능선 장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는 있었고, 처음부터 도심에 대한 뷰는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처절한 역사를 덮고 있는 자연의 시선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사방의 절경도 잠시, 장수말벌 하나가 짜증스런 저주파음을 나지막이 울리며 흥을 깨버렸고, 어느새 한 녀석이 더 합류하여 주변을 서성였다.
그저 지나가려니 기다렸지만 주변을 맴도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왔던 길을 되짚어 하나뿐인 내리막을 걷다 어느 순간 갈림길이 나와 익숙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어차피 산이 크지 않은 데다 맵상으로 마을로 진입하여 포장된 길 따라 원점회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어느 정도 내려오자 사람이 경작을 한 흔적이 있는 첫 장소 부근에 누군가 버려 놓은, 아니 누군가 폐차를 해놓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산성이 허무했다면 누군가 몰래 버려놓은 폐차량은 허탈했다.
그렇다고 종량제 봉투에 넣을 수 있는 사이즈도 아니었기 때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고, 이윽고 마을이라고 하기엔 인가는 거의 없지만 비교적 잘 가꾼 경작지에서 아스팔트 도로에 닿아 그 길을 타고 걷다 작은 고개를 넘자 주차된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짧은 마산동 산성의 여정을 끝내고 가던 방향으로의 다음 여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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