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호수 위 태고의 섬, 옥천 대청호 부소담악_20220901

사려울 2023. 12. 3. 21:26

대청호는 대전에서 만만하게 찾을 수 있는 전국구 관광지로 주체할 수 없는 욕심에 해 질 녘 도착, 대전 바로 외곽이면서 이내 오지마을처럼 한산한 도로를 질주하여 급히 목적지로 향했는데 사람이 익숙한 냥이 가족의 환영을 우선적으로 받았다.
금세 어둑한 밤이 찾아와 서둘러 차에 오자 어린 삼색냥이 얌전하게 움츠리고 있어 츄르 하나 꺼내 돌아섰는데 녀석이 어떻게 알고는 뒤를 쫓아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깨끗한 햇반 그릇에 츄르 하나를 짜서 주자 녀석이 환장했다.
츄르가 없는데도 녀석은 여운이 남았는지 그릇을 계속 핥아 손으로 그릇을 잡아 내밀자 여전히 빈 그릇을 핥았다.
어느 정도 쪼그려 앉아 있다 그릇을 치우고 손가락을 내밀어 봤는데 살짝 경계의 뒷걸음을 치다 한발한발 신중하게 다가와 손끝에 빰을 문질렀다.
길 건너 댕이 두 마리가 자지러질 듯 짖어대는 통에 동네 민폐 끼칠까 싶어 얼른 자리를 뜨는 수밖에.

열심히 달려 옥천에서 4번 국도를 타고 군북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토끼굴을 거쳐 꼬불길 환산로를 달려 도착한 시각은 18시 반.

여름이 지나 가을로 다가서는 길목이라 낮이 부쩍 짧아지면서 이내 밤이 찾아올 걸 알곤 추소정 주차장에 내려 잰걸음으로 걷는데 초입의 가든에서 돌봐주는 냥가족이 마중 나왔다.

녀석이 달아날까 싶어 옆으로 우회해서 걸어가는데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 친화력 무엇?!

언뜻 봐도 몸집이 작은 어린 냥들인데 우선 녀석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서둘러 길을 걸어 지나쳤다.

호수를 가르는 그 길은 무던히도 적막하여 호수마저도 파랑이 무겁게 일렁였다.
잘 짜여진 길 따라 걷는 발자국은 졸고 있는 세상을 깨울 기세로 집요하게 따라붙었는데 호수에 기댄 쉼터의 애잔한 구조물은 고독의 파고에 바스러졌고, 옆으로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는 정적 속에서 미세한 파동의 안테나인 양 잊어버린 벗의 웃음소리를 그리워했다.
이미 넘어가 버린 석양보다 갈 길 잃은 땅거미가 더 눈부신 공백의 호숫가에서 점점 꺼져가는 길을 밟으며 막연히 그리던, 세상 가장 외로운 섬을 만나러 갔다. 

작은 민가와 가든을 지나 길이 이끄는 대로 걷자 이내 호수를 만났고, 호반의 적막한 길가엔 여름의 양분으로 살찌우며 가을 양분으로 제 빛깔을 키우는 밤송이가 꽤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민가를 지나게 되면 이내 호반 데크길이 있어서 길 헤맬 염려는 없었다.

워낙 조용한 곳이라 가볍게 딛는 발자국 소리도 요란하여 호수를 깨울 굉음처럼 들릴 정도였다.

무성한 여름 수풀 위를 걷게 됨으로써 가는 길에 이질감도 전혀 없었다.

곧 해가 질 무렵이라 호수는 더없이 평온했고, 그 이면에 적막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 중 하나, 부소담악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그중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데크길로 접어들었다.

결국 두 갈래 길은 하나로 귀결되겠지만 먼저 닦여진 호반의 포장된 길은 일관성 있게 호수변과 궤적을 같이 하는데 반해 뒤늦게 닦여진 데크길은 언덕으로 우회하여 추소정이 있는 작은 공원에서 먼저 닦여진 길과 합류했다.

결국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추소정에서 만나 부소담악으로 가는 외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갈림길을 만나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얼마 걷지 않아 추소정이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고, 길의 형태는 바뀌긴 했지만 걷는데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길은 연이어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명소의 특징은 전혀 없었지만 걷기엔 알맞았다.

아직은 완연한 여름이 살짝 지난 시점이라 덥긴 했으나, 해가 질 무렵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는 공기 속에 여름의 지독한 텁텁함은 없었고, 이따금 보이는 모기만 피하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렇게 작은 뜰 같은 공원과 고갯길을 지나면 추소정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아쉽게도 출입은 막아놓은 상태라 주변을 둘러보며 정자가 세워진 지형적 특성만 읽을 수 있었다.

사행천처럼 호수가 급히 꺾이는 품 안에 추소정이 세워져 있어 마치 호수 가운데 우뚝 솟은 것 같았는데 더군다나 추소정 아래는 작은 절벽이 호수와 경계하고 있어 그 감흥은 증폭되었다.

추소정 아래 작은 전망대처럼 호수로 튀어나온 지형에 서면 호수를 발밑에 둔 스릴감도 누릴 수 있는 반면 유속이 거의 없는 담수호 특유의 녹조 내음이 강했고, 그래서인지 호수 곳곳엔 강제적으로 물을 순환시키는 장치에서 내뿜는 소리가 가뜩이나 적막한 부소담악 일대 유일한 소음 장치였다.

추소정을 지나면 다시 완만한 내리막의 외길로 길 양 옆에 호수 전망이 가능했다.

부소담악이 호수에 돌출된 작은 반도라 가는 길을 걷노라면 마치 호수 한가운데를 걷는 착각이 들었다.

조금 너른 공간에 텅 빈 안내소가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을 잊어 버렸는지 이음새에 시간의 때가 끼어있고, 전체적으로 조금 오래된 흔적도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 길 한쪽에서 힘찬 물소리가 들렸는데 극심한 녹조에 대한 대책 같았다.

빛깔과 더불어 녹조 악취도 생각보다 강했지만 평온한 호수 전망에 감각은 서서히 마비되어 갔다.

추소정을 지나면 길 양옆은 호수에 떠밀려 지형의 폭이 급격히 좁아졌다.

위태로운 길과 달리 걷는 걸음은 먼 길 달려온 보람을 충족시켜 줘 경쾌했다.

부소담악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길은 매우 독특했다.

호수 표면과 고도차가 거의 없었고, 길도 호수 위를 간신히 지나는 형세였다.

부소담악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길은 점선처럼 희미해졌다.

돌이 뒤섞인 위태로운 길과 모퉁이를 지나면 결국 길도 사라졌다.

 

옥천군 - 문화관광 - 관광명소

옥천군 문화관광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www.oc.go.kr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
호수를 담은 뭍조차 심약한 손길이 사치라 여겨 그 끝에 이끼가 서릴 정도로 까마득했다.
외로움에 몸서리친 바위가 서로 몸을 기대어 의지하는 동안 사무치던 아픔은 잊혀졌고, 하늘 정취를 가둔 호수의 가녀린 호흡 따라 어느새 통찰의 청사진으로 감광되었다.
점점 자취를 감추는 하루 사이로 섬은 하나의 조각으로 결집하여 태고의 시간을 기억할 뿐이다. 

바위는 서로 의지했고, 나무는 그런 바위들의 결속에 뿌리를 내렸다.

바위에 바짝 붙어서 걸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끝점에 다다르면 거기서조차 바위들이 한 데 어우러져 걸음을 떠받들어줬다.

자칫 미끄러질 수 있는 만큼 걸음 하나에도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뭍의 끝은 손길을 거두고 이끼를 뒤덮었다.

서강의 선돌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징표일까?

남은 미련처럼 미약한 땅거미가 외로운 섬을 비췄다.

부소담악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서녘으로 넘어가는 땅거미의 시간도 잠시 멈춰 섰다.

넋 놓고 뭍 끝에 서 있는 사이 남은 땅거미는 더욱 바랬다.

부소담악을 벗어나 무사히 돌아가는 길.

호수 위 길을 지날 무렵 멀쩡하던 렌즈에 이슬이 자욱했다.

그리 후덥지근한 공기가 아닌데도 묘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이처럼 무거웠다.

추소정 앞 데크 전망대에서 혼신을 다한 땅거미를 지켜보던 중 또 다른 한 팀이 추소정에 올라 이 광경을 감상 중이었다.

19시 20분에 길 초입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근접할 무렵 어린 삼색냥을 다시 만났다.

주차장에 돌아오자 거의 어둑해졌던 찰나, 마중 나왔던 어린 삼색이한테 가기 위해 트렁크에서 츄르를 꺼냈을 무렵 어둠 사이를 뚫고 미세한 가로등 불빛이 쏟아졌다.

츄르를 꺼내 돌아서 어린 삼색이한테 가려는데 녀석이 무언가 직감했던 건지 길어귀까지 따라와 지켜보고 있었다.

깨끗한 햇반 용기에 츄르를 짜서 주자 녀석은 정신없이 해치웠다.

햇반 그릇이 너무 가벼워 여기저기 미끄러지며 어느새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래서 손으로 잡아주자 남은 것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잔향이 아쉬운지 계속 핥았다.

녀석이 츄르를 완전히 비우기까지 10분 만에 날은 어두워졌는데 녀석은 하염없이 그릇을 핥았다.

그릇을 치우고 손가락을 내밀자 녀석은 몇 걸음 도망쳤다가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렇게 다가온 녀석은 손가락에 뺨을 문지르는 꽤나 사교적인 아이였다.

주차장 옆 댕댕이 2마리가 자지러질 듯 짖어대는 통에 동네 민폐인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녀석과 작별을 했다.

욘석아, 건강하게 자라길 바래~

10여 년 전 대전 출장에서 유성온천에 숙소를 잡았던 기억을 회상해 보면 지금은 휘영청 야경이 화려한 빌딩숲 번화가가 되어 미리 예약한 호텔 체크인 후 바로 거리에 뛰쳐나왔다.
도로 바로 건너편에 큰 근린공원이 있어 잠시 산책하려는데 공원에 듬성듬성 이와 유사한 족욕탕이 있었다.
족욕탕?
대중족욕탕의 성격이라 시민들을 위해 항시 개방한다는데 그게 익숙한 사람들은 단순 족욕을 넘어 책을 보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이리저리 다니며 지압을 했다.
신기하면서 익숙하지 않아 그저 명물 구경으로 끝냈지만 인상적이었다.
근데 잠시 서 있는 중에 모기한테 몇 번의 헌혈을 했는데 족욕 중인 분들은 괜찮나?
'피 한 방울은 입장료다엥~' 

공원이라 해도 그럴듯하게 꾸며 놓았다.

이로써 대전에서의 첫날을 인터시티호텔에서 마무리하고, 다음날엔 대청호 따라 여정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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