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대청호의 바람이 머무는 곳, 명상정원_20220902

사려울 2023. 12. 3. 21:51

문화의 힘, 소외의 껍질을 깨고 관심의 노른자를 일깨워줬다.
위태로운 비탈에 의지한 마을이 바다와 더불어 재조명받는 시대, 그게 이성적으로 용납되는 시대에 접어들자 질펀한 수풀의 텁텁한 장벽이 거대한 호수와 더불어 재탄생했다.
복잡한 호반의 지형은 그들만의 소외에 익숙해져 세상과 유구한 단절에 떠밀렸건만 집요한 문화의 포옹에 더는 버틸 재간 없이 습한 증오를 깨부수고, 햇살 자박한 정원에 길을 그렸다.
때마침 옅은 대기의 창이 열리자 비로소 바람의 언어가 들린 날이었다.

명상정원은 드라마 ’슬픈 연가‘ 촬영지 부근에 2020년에 조성되어 현재 대전시 동구를 대표하는 대청호 관광명소가 되었다. 어린이, 노약자 등도 쉽게 산책할 수 있는 무장애 데크길이 명상정원까지 이어져 있고 정원 내에 전망 데크, 전통담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청호의 수려한 풍경을 더 가까이서 감상하기 위해 만든 감성 교감형 휴게공간으로 대청호의 잔잔한 물결, 싱그러움을 뿜어내는 나무와 풀꽃들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명상정원에 머무르다 보면 내방객들은 아무런 왜곡 없는 순수한 마음 상태로 몰입할 수 있는 명상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명상정원 진입 전 마산동 쉼터에 관광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 화장실, 운동기구, 음수대, 벤치 등이 설치되어 있다.
[출처] 명상정원_대전동구관광문화축제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축제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축제

www.donggu.go.kr

이어 도착한 명상정원 주차장엔 의외로 꽤 많은 차량이 들어서 있어 주차하기 쉽지 않았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미 지역에선 저명한 명소였구나!
게다가 언젠가 드라마에 노출되고 나서 매끈한 정원으로 재탄생한 곳이라 멀지 않은 명상정원까지 데크로 깔려 있어 걷기에도 한층 수월했다.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났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게 결국 한 곳으로 귀결되었고, 다만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난 그게 고민이 아닌 일타쌍피라 도리어 이채로움으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마음 닿는 대로 시계반대 방향을 선택하여 궈궈!

데크길이 끝나고 물속마을정원이란 큰 공원 속의 작은 공원이 있었고, 하나의 거대 공원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작을지 몰라도 자연경관과 인공적인 조경이 조화를 이룬 이쁜 정원이었다.

어릴 적 흔하던 검정 호랑나비를 성장하고 도심에 살고 나서는 인가가 거의 없는 시골에 가지 않는 이상 볼 수 없었는데 눈앞에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반가워 시선으로 나마 녀석을 잠시 쫓아다녔다.

여기 나풀~

저기 나풀~

그러다 내가 따라다녔던 게 신경 쓰였던 건지 이내 비상하여 다른 자리로 옮겼다.

방해 안 할 테니 편하게 하던 일 보면 안되나비~

다시 휙 날아서 바로 옆 꽃단으로 옮겼다.

녀석이 내 심중을 알아차렸는지 앞서와 달리 한 꽃에 머물렀다 눈 깜빡할 사이 사라져 버렸다.
분명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았는데 어디로 사라진 걸까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전혀 보이질 않았다.
곡할 노릇이구먼!

나중에서야 사진을 보고 알게 된 사실, 사마귀가 녀석에게 몰래 다가와 낚아챘는데 날개 끝만 찢어지고 나비는 밑으로 추락했다.
다시 사진을 리와인드 시켜 보면 그제서야 사마귀가 눈에 띄었는데 그전까지는 사마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이게 바로 자연이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단편적인 사실을 떠나 모든 생명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이번 목적지, 명상정원의 지도로 대청호반의 제법 규모가 있는 공원이었다.
물속마을 정원에서 호수로 돌출한 만 형태에 공원이 있었고, 그 사이는 낮은 언덕으로 숨겨져 있어 명상정원을 특정할 수 없었다.
근데 여러 작품에 노출되었다고?

대청호 오백리길 지도를 보아하니 앞서 들렀던 황새바위 일대가 무척 좁게 느껴졌다.
욕심 같아선 종주를 하고 싶었지만 그냥 이번만큼은 욕심으로 끝내자.

가는 길은 잠시 데크길을 거쳐 타이틀처럼 명상에 적합한 환경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특히나 이 소소한 길을 걸을 때 무게감을 느낄 수 없는 가벼움이란 마치 새벽 호반의 안개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백지 위의 외길을 조금 걷다 보면 이내 너른 정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다른 공원들의 여백이 녹색이라면 여긴 대부분 황량한 흙이긴 하나 그게 정원에서 자생하는 생명들을 돋보이게 하는 희한한 착시현상이 생겼다.

호수와 눈높이가 비슷해지는 명상정원에 거의 도착.
수면과의 고도차가 거의 없는 데다 흙빛깔이 대부분의 여백을 차지해서 그런지 한적한 바닷가 무인도에 온 착각이 들었다.

그런 휑한 흙 위에 점점이 찍힌 초록의 생명들로 말미암아 공허한 것보단 사막의 오아시스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그 흙빛깔이 삭막, 공백, 건조의 느낌보다 공백, 훈훈한 느낌이 맞겠다.

단지도 널려 있는데 실제 뭔가 있나 본데?

멀리 가마우지? 오리? 무리가 한적하게 쉬고 있었다.

명상정원에 다다르자 몇 줄기 시원한 강바람이 불었다.
먼 길 온 여행자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는 건지 호수의 수면이나 하늘 바다에 둥둥 떠있는 것 마냥 한층 중력감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명상정원은 대청호로 돌출된 반도 형태로 그 끝, 곶과 같은 지형에 다다르면 호수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우뚝 선 작은 섬이 있었다.

아직 여름색이 짙은 날씨지만 호수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이 뜨거움보단 훈훈했고, 그 훈훈함이 세상과 격리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명상정원의 끝은 바다 해안처럼 편평하고 너른 풀밭이었는데 방문객이 많았음에도 사람들이 내는 소음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고, 공기는 비교적 무거워 소리가 쉽게 관통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명상정원이라 명명했던 걸까?

거위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겨울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패딩 부속물이 널려 있는 거다.

거위가 무리 지어 쉴 새 없이 풀을 뜯으며, 물 흐르듯 이동했다.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고, 사람들도 처음엔 신기한 듯 거위 무리에 다가오거나 지켜봤지만 이내 명상정원을 채우는 사람들과 같은 생명이라 인지한 듯 의식하지 않았다.

거위 무리와 사람들이 이렇게 경계가 없었다.

거위 무리들 중 종종 자리에 퍼질러 앉는 거위가 있었는데 그러다가도 이내 벌떡 일어나 다시 걸으며 무리를 이탈하지 않았던 걸 보면 녀석들도 짬짬이 피로를 푸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강바람이 지속적으로 호수 표면에 작은 파랑을 일으키며 그 흐름을 각인시켰는데 그로 인해 호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간신히 떠있는 섬들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왔다.

명상정원 남쪽 수변은 정원이라 이름 붙이기에 적절할 만큼 황량하기보단 여유로 비춰졌다.

듬성듬성 자란 나무들과 그 공백에 옅게 뿌려진 잔디밭이 그림 같았다.

슬픈연가 촬영지가 이제는 포토 스팟으로 변신했다.

섬 정원 또한 하나의 액자 같았다.

요즘 여행에서 가장 큰 아군은 청명한 대기였다.

아침에 흐리던 대기가 낮이 되면서 또렷한 하늘을 드리웠다.

명상정원을 충분히 감상한 뒤 떠나기 전에 뒤돌아봤다.

비록 청명한 대기로 인해 햇살이 무척 강했음에도 명상정원에 다다른 햇살은 화사한 빛줄기로 변신했고, 여름의 열기가 가득했음에도 사람들의 표정엔 지친 내색이 없었다.

좀 전 남쪽 수변과 반대로 북쪽 수면 또한 잔잔한 풍경을 유지했다.

올 때와 다른 길인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 걷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멀리 섬 정원은 여전히 호수에 떠있었고, 수변의 호젓한 풍경은 흐트러짐 없었다.

이런 전망대도 있어 결국 같은 방향이라 들러보기로 했다.

이 길로 전부 귀결되었다가 다시 초입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갈라졌고, 그 갈림길 가운데는 출입 금지 푯말이 있는 걸 보면 사유지가 아닐까 싶었다.

올 때와 달리 이제는 빠져나간 사람들이 많았던지 조금 한적한 분위기였다.

뒤돌아 명상정원을 바라봤다.

하나를 딱 집어 엄지를 치켜세우기보단 전체가 적당한 위치에 어우러져 하나의 멋진 공간, 그게 바로 명상정원의 매력이었다.

비록 넓고 기나긴 대청호의 극히 일부긴 하나 그럼에도 그 일부조차 무척 넓고 광활했다.

좀 전에 봤었던 수변 전망데크에 들어서자 이렇게 나무에 둘러싸인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서의 사색이 명상정원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좀 전 들렀던 전망대는 호수변 밀집한 숲 속이자 호수로 뻗어 나온 작은 땅끝이었다.

올 때와 다른 길을 선택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 그러던 중 갈림길로 뒤돌아봤다.

올 때의 길은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이었고, 갈 때는 데크길을 걸었는데 수변길인 만큼 종종 호수 위를 걷기도 했다.

명상정원 초입에 거의 다다랐고, 앞으로 들러야 될 곳이 많아 잠시 머무른 짧은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무리해서 걷지 않아도 될 대청호의 한적한 공원, 명상정원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마산동 방면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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