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갯마을 삶의 모세혈관, 논골담길_20220824

사려울 2023. 11. 29. 13:41

삼척과 또 다른 정취의 갯마을.
급경사의 척박한 현실에서 처절한 인고의 세월을 말해주듯 어느 하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고, 그로 인해 그 흔적은 문자가 되고, 언어가 되었다.
그렇기에 바다 앞에서도 당당했고, 아름다웠다.

도째비골 해랑전망대에서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이다. 도깨비방망이를 형상화하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85m 길이의 해상보도 교량이다. 해랑은 바다와 태양 그리고 내가 함께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입구에는 도깨비 영역으로 들어가는 의미를 가진 파란색 진입 터널이 있고, 가운데 조형물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전망대의 봉오리 진 슈퍼트리가 도깨비방망이를 통해 만개했다는 스토리를 조형화했다.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바다 위 파도를 발아래서 느낄 수 있도록 유리바닥과 메쉬바닥으로 구성한 해상 교량이다.
[출처] 도째비골 해랑전망대_한국관광공사
 

도째비골 해랑전망대> 여행지 | 한국관광100선:대한민국 구석구석

도째비골 해랑전망대

korean.visitkorea.or.kr

해 질 녘, 서둘러 바다전망대에 들어서자 끊이지 않던 대부분의 인파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적한 공간이 되었다.

바다를 향해 쭉 뻗어 나온 구조물인데 규모는 꽤 커서 멀리서 보는 게 아니라면 마치 8자 형상이었고, 가운데는 하늘을 향해 펼쳐지는 꽃망울 같은데 때마침 구름이 담겨진 모습이라 그 구름이 하늘로 오르거나 하늘을 지나는 구름을 담는 바구니 형상이었다.

전망대 끝에 서서 동해를 바라보면 망망대해란 표현이 적절한 동해의 적나라한 모습과 선예도가 분명한 수평선이 압권이었다.

해랑전망대를 한 바퀴 돌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봤다.

근래 들어 살벌한 물결이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 이런 전망 구조물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데 파도가 거칠게 부딪칠 때에 정말 실감 나기도 했다.

때마침 동쪽 하늘에서 점점 본연의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해랑전망대 건너편 언덕에 의지한 마을, 논골과 도째비골 마을이 있었고, 바로 거기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에 삶의 혈관과 장기 따라 고난을 극복하며 터전을 일궜다.

이 마을이 아름답고 위대한 이유였다.

계단에 다가설 무렵 어린 얼룩 하나가 버티고 앉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동네 사람 아닌데 어디서 왔냥?'

마치 그런 의문을 품은 호기심 많은 냥이 표정이었다.

계단 밑에 있던 또 다른 어린 냥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급히 몸을 피했다.

오르는 데크 계단은 꽤 가팔라 지그재그 행보를 보였다.

이내 테라스 같은 전망데크에 도착.

마을 유래와 더불어 과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언덕 언저리로 합류하기까지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올라야만 했고, 이 길에 합류하면 차오른 한숨을 뱉어낼 수 있었다.

과거 사진을 보면 여기도 인가가 빼곡했었다니 삶의 무게가 얼마나 다양했던가.

길이 좌측으로 꺾이는 지점에 뭔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보여 거기로 방향을 정해 걸어갔다.

한 무리 냥이 가족들이 누군가 버린 생선뼈 봉투를 뒤적이며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린 냥이와 성묘가 몇 마리 뒤섞여 있었는데 골목길이라 사람들한테 친화적인 줄 알고 서슴없이 다가섰지만 이내 경계심을 보이며 달아날 태세였다.

누군가 검은 봉투에 생선 뼈를 담아놓았는데 거기를 냥이들이 뒤지고 있었고, 가방 속 사료 한 주먹을 떨궈줄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몇 마리는 이미 줄행랑을 쳤으며, 다른 냥이들은 경계 태세에 돌입, 좋은 뜻으로 다가갔지만 방해한 것 같아 한 걸음 멀찍이 물러서 사료 한 줌 바닥에 둔 채 이내 가던 방향으로 진행했다.

이런 모습이 불쌍해서 가슴 짠했다.

부근 축대 위를 서성이던 또 다른 어린냥도 여전히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담장 위에서 경계 중인 또 다른 턱시도.

이 길엔 유독 턱시도가 많았다.

논골과 도째비골 사이 언덕 능선처럼 솟은 지형인데 그 지형에서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듯한 가장 높은 장소에 등대가 있어 우선 그 방향으로 걸었다.

다만 거기로 가기 위해선 똑바로 곧은 길이 아니라 골목이 몇 번 교차되고, 몇 번 휘어지는 골목을 지나가야 되므로 방향만 잃지 않으면 결국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머뭇거림 없이 계속 걸었다.

근데 은근 이런 길 멋지다.

그래서 걷는 동안 바다를 비롯하여 주변을 신기한 듯 쉴 새 없이 훑어보며 걸었는데 자연스럽게 진행 속도는 더뎠다.

그 길에서 발아래 좀 전 거쳐 왔던 해랑전망대가 또렷이 보였다.

8자 형태가 아닌 도째비골의 도깨비 방망이 같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흩어지고 드문드문 인적만 눈에 띌 뿐이었다.

 

해파랑길 34코스

해파랑길 34코스는 관동팔경 녹색경관길 동해2코스, 산소(O2)길 2코스와 동일한 구간입니다. ‘동해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해안을 따라 걷다 강릉으로 넘어간다. 묵호등대에서 동해의 전경을

www.durunubi.kr:443

작은 풍차가 앙증맞게 서 있는 언저리 갈림길에 진행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거나 아님 우측으로 크게 꺾어 오르막길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크게 꺾어 오르막길로 향했다.

여긴 해파랑길 34코스로 묵호역에서 옥계 여성수련원까지 구간으로 여길 지나 등대전망대를 거쳐 북으로 뻗어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어느 하나 같은 게 없었고, 그렇다고 어느 하나 어색한 것도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길이었지만 이게 걸음을 멈추게 할 순 없었다.

좁은 계단길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집이 붙어있다시피 했는데 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있고, 뒷켠 문 너머엔 작은 텃밭과 이웃집 창이 있을 것만 같았다.

묵호의 향기.

잔 속 바다와 기적 소리가 담겨있었다.

계단식 가옥에서 이 모든 것들의 상호작용으로 단단히 버티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블럭을 쌓아 토사 유출을 막고, 지반의 침하를 방지하는 정취의 정겨움을 따라 오르막 계단에서 우측으로 꺾었다.

담백한 채색으로 벽화를 꾸며 놓았다.

멀리 등대전망대가 보이는데 확실히 높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지형을 십분 활용했구나.

꽃길만 걸으소서.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과 미려한 손길이 뻗어야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마치 가을처럼 하나하나 뜯어보면 투박한데 매크로하게 보면 지형지물과 어울려 비로소 아름다웠다.

등대 가까이 도착할 무렵, 기력이 없어 축 늘어진 어린 삼색냥이가 민가 축대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눈 뜰 기력조차 없어 보였는데 차라리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졸려 쉬고 있길 바래야지.

계단길 아래를 내려다보자 누가 봐도 어미로 보이는 삼색냥이가 생선뼈를 물고 계단 발치에 머뭇거렸다.

아무려면 나보다 어미가 있어야지.

그래서 방해가 될까 싶어 자리를 비켜줬다.

등대전망대에 오르자 가장 먼저 맞이하는 바닥에 대형 그림.

바다를 가르며 물거품을 일으켜 시원하게 질주하는 보트가 보였다.

발치에 해랑전망대가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생선 같았다.

오르막길이 대부분인 골목길과 계단을 오르면 어느 순간 완만해지고, 언덕이라 여겨지지 않는 너른 등대전망대가 있었다.

하늘과 함께 창대하게 펼쳐진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접점에 미려한 수평선이 한눈에 쏟아졌다.

등대광장엔 불을 형상화한 조형물일까?

등대전망대 바로 아래엔 가파른 언덕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가옥들이 촘촘히 뿌리를 내렸다.

도째비골에 가장 눈에 띄는 스카이워크가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늠름한 위용의 등대가 가장 당당히 서있었고, 비교적 늦은 시각인지 대부분 문은 닫혀있었다.

등대박물관을 지나 논골로 내려가는 골목길에 잠시 발을 들였다.

시간이 없어 낯낯이 둘러볼 수 없고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서 잠시 서녘을 바라본 뒤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확실히 삼척 나릿골에 비해 규모도 크고, 인가 밀집도가 높았다.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데 올 때와 달리 이제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맞았다.

이 녀석들 득템 했구나.

혹시 얼룩이가 삼색이한테 협박해서 뺏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녀석들의 질서에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오를 때 밑에 있는 저 길을 따라 올라왔더랬다.

이 지형에 맞는 잘 짜여진 멋진 길이었다.

인간의 삶에 모세혈관처럼 파고 들어 어느 하나 외면하지 않는 골목길이 바다를 아래에 두고 비탈을 포섭하여 지그재그로 오르고 내리길 수도 없이 반복하는, 그런 어촌의 삶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이 투영된 그런 아름다운 길이 분명했다.

골목길치곤 꽤 너른 길 따라 느긋하게 걸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오를 때 봤던 삼색이 가족 중 어른 냥이들이 쉬고 있었다.

마을 여행을 끝내고 도로와 이어진 초입에 다다르자 카오스냥의 구슬픈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을 찾는 걸까?

앉아서 쳐다보는데 녀석이 다가왔다.

'혹시 내 새꾸들 못봤냥?'

이렇게 어미는 좌불안석이었다.

냥이들의 애정 어린 슬픈 표정이 겹겹이 쌓여 녀석 또한 무척 서글픈 표정으로 비춰졌다.

오늘 하루 무사히 여정을 끝내고 마무리하는 것도, 지난한 삶의 무게에 지친 표정도 하루 일과를 끝내는 과정에서 책갈피처럼 기억에 선명히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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