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감성의 미로 골목, 나릿골 감성마을_20220824

사려울 2023. 11. 29. 12:54

고행의 세월을 감수한 재조명으로 바다언덕 옛마을이 감성의 보물창고로 각광받으며, 각양의 모습으로 혈관처럼 얽힌 골목은 어느덧 모퉁이마다 많은 사연과 이야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소외는 이 골목이 붐비던 시대에 생소한 외계 파동처럼 여겼건만 또아리 틀고 숨죽인 직선의 무참한 살상 앞에서 한 동안 속수무책이었다.
시간의 통찰을 거친 직선이 무기력할 때 그 위안 또한 비정형화된 길이 철학적 돌파구가 될 줄이야.
오늘도 노스탤지어를 꿈꾸는 이정표는 갯마을 그 모습을 그렸다.

나릿골은 삼척 정리항 영진안과 벽 너머 사이 어항의 배를 정박하는 나루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으로 거주민 30%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60~70년대 생화 정취가 남아있는 계단과 골목길, 담장 등을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항구문화가 남아있는 아름다운 경치의 어촌 산마을이다.
[출처] 나릿골 감성마을_디지털삼척문화대전
 

나릿골 감성마을 - 디지털삼척문화대전

[정의] 강원도 삼척시 정하동에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되는 마을. [개설] 나릿골은 정라항영진안과 벽 너머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배를 정박하는 나루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척

samcheok.grandculture.net

삼척 촛대바위에 이어 삼척 나릿골로 향했다.

나릿골은 삼척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았고, 전형적인 어촌 산마을치곤 세대 간 거리가 조밀하지 않아 적절한 여유도 뒤섞여 있어서 주저 없이 선택했다.

정면 일대에서부터 좌측 골짜기로 이어진 일대가 나릿골로 지난번 부산 여정에서 흰여울마을처럼 한동안 소외된 관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갯마을이었다.

이사부광장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멀리서 훑어보고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진입로를 찾아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진입하는 골목을 어렵지 않게 찾았는데 CU 편의점 옆 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래된 정취의 골목과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보면 정형화되거나 반듯하지 않고, 이렇게 비집고 파고든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오래된 골목길의 갬성 아니겠나.

집과 집 사이의 비좁으면서 불규칙적인 간극의 골목과 갑자기 맞닥뜨린 비탈에 허겁지겁 조악한 계단을 설치한 흔적, 거기에 바닷가 일기 특성상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많아 배수로도 구겨 넣어야 되는, 그런 골목길 계단이 바로 이런 형태라 헤매지 않고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더운 여름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도 잊고 계단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공백이나 틈을 꾸밀 여유가 없던 시절의 원형 그대로라 빈 공백엔 가장 만만한 방법이 방치로 인간이 방치시킨 공간엔 잡초가 메웠고, 간혹 원주민들이 잡초를 밀어내고 아주 비좁은 땅이라 할지라도 만만하게 뜯어먹을 수 있는 것들을 경작하기 일쑤였다.

가파른 비탈이라 조금만 올라가도 이렇게 밟고 온 길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길에 같은 모습은 없었고, 어느 하나 소외된 집도 없었다.

마을 어느 집 하나 소외될 틈 없이 골목이 비집고 들어가는 바람에 자연히 골목은 쭉쭉 뻗은 게 아닌 이리 휘고 저리 꼬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산출물 아니겠나.

워낙 인가가 골목에 바짝 붙어 있어 발자국 소리를 누르고 자근자근 걷는 걸음마다 뒤돌아보게 되었다.

여행객들을 위한 배려로 헤매는 번거로움을 줄이고자 통로길 바닥에 색상을 입혀 차별화시켰다.

그런데 눈비 내리는 날이면 정작 이 길이 생활 그 자체인 주민들은 미끄러워 불편하지 않을까?

오르막길이 완만해지는 지점에서 바다로 둘러봤다.

바닷가 이사부광장이 시원하게 트여있고, 삼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라항, 현재 지명으로는 삼척항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대기에 미세먼지가 적은 날이라 청명한 편에 높은 구름이 끼어 적당히 화사하면서도 눈 부심이 없던 날이었고, 그 대가로 수평선 또한 선명했다.

전망대이자 쉼터에 도착.

바다 쪽으로 밀집한 마을과 삼척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적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는 항구를 바라보며 가족을 기다리는 어촌의 정취를 상상해 봤다.

전망대이자 쉼터는 마을 상징과도 같은 멋진 소나무가 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한 전체적으로 언덕에 조성한 공원 형태라 힘겨운 오르막길의 가쁜 숨을 토닥여 줬다.

데크로 조성되어 비탈진 지형에도 불안감은 전혀 없었고, 도리어 안정적으로 몸과 심리를 지지시켜 줬다.

쉼터를 벗어나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동해 바다 해파랑길을 걸었다.

백팩에 가득 담긴 호기심을 풀어헤쳐야지.

길과 민가 사유지를 경계로 서 있는 벽에 파란 화살표가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해파랑길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나침반처럼 길 남쪽 방향으로 화살표가 되어 있으면 파랑, 북쪽 방향으로 향하면 빨강이라 방향 감각으로 인해 혼란할 일은 없겠다.

이웃집 나지막한 담장 너머 돌배 하나 가지에 매달려 가을을 손꼽아 기다렸다.

길은 뿌듯한 오르막으로 산 쪽으로 돌아 내려오게 되어 있는데 워낙 길이 좁은 곳이라 이 길은 마을 주민들의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솔밭 전망대에서 뿌듯한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자 어느새 땀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길에서 가장 높은 인가에 다다를 무렵 동해 갯가 따라 멋진 둘레길 코스인 해파랑길을 알려줬다.

길 잃을 염려도 있지만 그만큼 어촌마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옹골차게 드러내준다는 의미에서 더욱 뜻깊었다.

인가가 끝나고 오르막길이 완만해질 즈음 마을 뒤편에 언덕 마을치곤 너른 주차장 공터가 있었고, 거기에선 삼척항 전망이 아닌 오롯이 동해를 향해 시선이 트여 있었는데 동해가 마치 졸고 있는 듯 또 다른 바다 전경이 펼쳐졌다.

이 순간, 세상 시간이 멈추고, 그 사잇길로 갯마을 이야기에 심취했다.
바닷바람 속 짠 내음은 시간의 향기처럼 무럭 피어나 계절을 초월하여 산과 바다의 사랑을 노래했다.

이따금 찾는 여행객들과 교차할 때, 작은 창 너머 마을 사람들이 물끄러미 쳐다볼 때 단 한 마디 언어의 교감이 없어도 공감의 풍차는 요란하게 돌아가며, 숨죽인 발자국 소리 대신 춤추는 심박소리가 보폭 맞춰 꼬리를 밟았다. 

주차장과 연결된 길과 지금까지와 다른 정취가 느껴져 이 길로 걸어가자 경사가 완만한 바다 전망대가 있었다.

그저 평범한 잔디밭인데 아주 특별한 공간이란 착각에 빠졌고, 벤치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벤치에 앉자 더 넓고 먼바다와 마주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 언덕 어촌마을과 느낌이 다른데 때마침 말벌 몇 마리가 알짱거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바다 전망대와 연결된 주차장을 빠져나와 길 따라 걷던 중 아쉬움에 뒤를 돌아봤다.

언덕에 있는 어촌마을치곤 밀도가 그리 높지 않은데 아마도 도시화에 따른 영향 아닐까 싶었다.

명색이 삼척시라면 한 때 인구가 10만 명을 훌쩍 넘었을 터인데 현재는 6만 명을 상회하는 수준이라 인구 감소의 물결을 피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빈집이 늘어나면서 드문드문 철거된 흔적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다를 마주한 이곳, 나릿골은 관광지화된 갯마을처럼 과거 향수와 자취가 잘 보존된 곳이라 인구는 줄었을지언정 역동적인 관심은 점점 큰 파도가 되고 있었고, 때맞춰 주차 공간을 넓히거나 감성의 양념을 곁들여 변화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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