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묵혀둔 정감, 나릿골 감성마을_20220824

사려울 2023. 11. 29. 13:07

마을길을 따라 좀 더 오르자 언덕의 너른 지세가 펼쳐졌고, 그제서야 파도치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좀 전 지나온 길은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 아니라 인가가 비교적 적었고, 언덕에 올라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인가가 밀집한 골짜기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마을 뒤편 가장 높고 너른 고원 같은 곳인데 여기는 완연한 공원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산책하기 최적의 길이 뻗어있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이라 육각정 전망대와 쉼터가 있었는데 때마침 말벌 몇 마리가 또다시 주변을 윙윙거리는 바람에 오래 있지 못했다.

길과 전경에 몰입해야 되는데 말벌로 인해 연이어 방해받는 기분이라 벩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가야 될 방향을 조금 서둘러 걷자고 생각해야지.

좀 전 지나친 원주민처럼 보이는 분이 잠깐 사이 벌써 시야에 보이는 길 끝을 지나고 있었고, 그 자리가 핫플 아닐까 싶었다.

길과 하늘이 만나는 품새라 사방으로 전망 끝장날 거 같았다.

길을 걸어가다 말벌로 인해 방해받은 기분이 들어 아쉬워 문득문득 뒤돌아봤다.

하늘과 맞닿은 전망대의 모습에서도 그냥 멋지다는 생각만 들었다.

좀 전 앞서가던 분이 포착된 지점에 서자 예상에서 한치 빗나가지 않았다.

길 양 옆에 한창 조성 중인지 녹음보단 맨땅의 흙빛이 더 많았고, 중간중간 묘목 같은 것도 많이 심겨져 있었다.

하늘과 가까워진 길을 따라 걷자 다른 형태의 길과 함께 핑크뮬리원이 있었는데 잘 관리된 건 아니지만 바다가 맞닿아 있어 전망만으로도 멋진 언덕 공원으로 손색없었다.

잡초와 뒤섞인 핑크 뮬리 중에서 벌써 핑크빛 물든 게 눈에 띄었다.

벌써 물드는 게 맞는 건가?

핑크뮬리원은 이렇게 잡초들과 뒤섞여 무성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요것!

강철을 의도적으로 녹이 나게 만들어 독특하게 보였는데 분명 의도적으로 이렇게 녹을 만들었을 거야.

핑크뮬리와 잡초가 무질서로 섞여 있는데 거부감보다 나름 괜춘한 이유는 뭘까?

핑크뮬리원은 언덕의 고도차를 십분 활용해 입체적인 효과가 극대화되었고, 가장 아래편엔 전망대처럼 꾸며놓아서 이 공간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취한 건지 발걸음이 느려지고 자꾸 걸음이 멈춰졌을 정도.

핑크뮬리원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바로 덩그러니 서 있는 나무와 그 아래 벤치, 가로등, 녹음 아니겠나.

하늘과 맞닿은 지상에 한 폭 수채화 같았다.

앞서 지나왔던 마을과 골목들을 내려다봤다.

솔밭 전망대와 뿌듯한 오르막 지세, 그리고 주차장과 연결된 바다 전망대까지.

마을 아래 너른 이사부 광장과 주차장, 그리고 그 너머 멋진 동해 전경이 펼쳐졌다.

꽈리가 달랑달랑 매달려있었다.

핑크뮬리원 전망대 방면에서 내려가는 길로 낮은 담장은 도시와 달리 보호받거나 배척하기 위함이 아닌 길의 형체를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완연한 내리막길 따라 내려가면 나릿골로 들어올 때 이용했던 도로와 마을이 펼쳐졌다.

여기서 추억길 광장으로 궈궈!

진정한 나릿골에 접어들자 더 많은 인가들이 뒤엉켜있었다.

애환이자 정감이라 읽어도 되는 그림이었다.

처음과 달리 내리막길은 일순간 급해졌는데 가파른 축대 벽화와 아름다운 말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말이라도 이런 환경에선 정성스럽게 이쁜 손글씨로 쓴 편지 같았고, 더불어 유채색의 화사함 속에 과거의 흑백 정감을 멋지게 풀어낸 그림이라 걸음이 느려졌다.

이런 아이디어 누가 낸 겨!

나릿골 따라 인가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이런 골목길이 있어서 따닥따닥 붙은 인가라 해도 소외는 없었다.

개편한 자세로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녀석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앞 축대에 늘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별 반응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달콤한 휴식이라 조심조심 지나갔다.

골목길이 꽈배기처럼 꼬여 있음에도 과거를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잘 정비되었다.

물론 길 잃는 깨알 같은 재미도 있겠지만 그런 시간을 아껴준 수훈도 인정해 줘야 된다.

추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단다.

허나 사전적 의미의 유한한 굴레에 갇힌 것보다 더 거대하고 상상적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추억을 즐긴다.

향수와 정취의 만남.

넥스란 맥주 오랜만에 들어봤다.

인가 작은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지나는 골목길의 상형 문자로 보였다.

사소하지만 아주 알찬 구성들이 바로 요런 게 아니겠나.

마을을 내려와 뒤돌아봤다.

가장 꼭대기집 너머 핑크뮬리원과 고원의 들판이 있었다.

내려오는 동안 많은 걸 보고 되씹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갯마을 한 바퀴 돌아 괜한 성취감에 트위스트 한 번 땡기려던 찰나, 멋진 옷을 입은 냥이 태연하게 앞을 지난다.
살가운 마음에 불러도 성의 없는 눈길 한 번 삐쭉 주곤 거나한 기지개 한 번 펴고, 제 갈 길을 가는데 도로 위 지나는 차가 익숙한지 좌우 살피곤 태연하게 횡단한다.
"차 조심해!" 외치자 역시나 냥무시 하곤 마을 골목길로 들어가 어느새 사라져 버린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삼척까지 와서 냥무시 당한 자괴감을 딛고 향수 자욱한 마을 여행을 기억 창고에 구겨 넣는다.
마을 축대에 널브러져 단잠을 자던 녀석 또한 내가 가까이 가거나 말거나 냥무시 했었더랬다.
이것들이 츄르 트위스트 추는 맛을 보여 줘야 하는데! 

갯마을에 냥이들이 빠질 소냐.

불쑥 나와 기지개를 켜는 녀석은 아숏 옷을 입었다.

녀석을 불렀더니 냥 귀찮은 눈길 한 번 찍! 주곤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제 갈 길을 갔다.

이게 소위 말하는 냥무시?

한 치 망설임 없이 도로를 횡단하려는 녀석이 불안해서 서있던 자리에서 계속 주시했다.

차 조심하라고 해도 이번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거북이처럼 꾸역꾸역 도로를 건넜다.

삼척에서 냥이한테 무시당하는 기분 묘했다.

뭐가 저리 태연하고 당당하지?

곁눈도 한 번 안 주고 밍기적 건너가는데 마치 알아서 피하고 정차하라는 경고 같았다.

무사히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사라졌다.

저게 감칠맛 나는 츄르 맛을 못 봤나!

가방에 소지를 못해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감성 가득한 마을, 나릿골 여정을 마무리하고 마을에서 조망되던 이사부광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주차된 곳이기도 했고, 바다 인접한 너른 광장이라 눈에 띄어 호기심 발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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