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봄꽃 너울대는 평온한 고산서당_20220430

사려울 2023. 3. 3. 15:12

꽃들의 잔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온갖 색상이 풍년을 이루는 길을 따라 찾는 이가 없는 서당을 들러 잠시 흐르는 시간을 잊었다.
만발한 아까시 꽃이 강바람 따라 흥겨운 춤을 추는 마당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그 매혹적인 향은 어디론가 사라져 공허한 정취가 자욱한데 잠시 위안 삼아 작은 언덕 아래 몸을 숨긴 서당을 산책하며 평온의 한숨을 들이켰다.
오래된 나무와 근래 끼워진 목재, 아무렇게나 핀 들꽃은 마치 뒤엉킨 것처럼 난무했지만 나름 자연이 살아가는 질서에 따라 오랜 시간 익숙해져 비교적 그들만의 규율에서 절제와 절도가 공존하는 작은 세상이 평온을 떠받드는 곳이었다.

호텔에서 출발하여 용무차 서변동으로 가기 전에 금방 다다를 수 있는 동대구 IC 부근 금호강으로 향했고, 율하동 육상 선수단지 인근에 차를 세워 잠시 만개한 이팝나무를 구경한 뒤 고산 방면으로 다시 출발했다.

이름이 늘 헷갈리는 이팝나무.

조팝나무와 구분할 때 즈음 봄이 물러나는 바람에 다시 일 년 지나 익숙한 기억을 망각해 버리지만 화사함은 기억한다.

안심교와 성동교를 건너 주차할 곳을 찾다 철길 아래 간신히 주차할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운 뒤 걸어서 강변을 따라 바람결에 날리는 아까시향을 맡으며 여러 꽃이 안내하는 대로 걸었다.

허리 숙여 관심을 주면 눈에 잘 띄지 않던 들꽃이 아름다움으로 관심에 응수했다.

올곧차게 들어선 아까시 꽃은 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렸고, 여느 해와 달리 올해엔 만개한 꽃망울에 비해 향은 비교적 약했다.

난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아 후각 기능은 정상이었던 걸 감안하면, 또한 초봄에 꿀벌의 많은 개체수가 집단 폐사(?) 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 조금은 비정상적인 봄이었다.

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 꽃이 질 무렵이면 여름이 부쩍 다가오는데 역시나 비쥬얼에 비해 향은 무척 약했다.

강변을 걷던 중 서당이 보여 자연스럽게 거기로 발길을 돌렸다.

고산서당은 조선시대 서당으로 1984년 대구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퇴계 이황(1501∼1570)과 우복 정경세(1563∼1633)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이황 선생과 정경세 선생이 강의하였던 곳이라 하여 150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숙종 16년(1690)에는 서당 뒤편에 사당을 지어 서원이라 하였다. 고종 5년(1868)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서원 옛터에 강당만을 다시 지어 고산서당이라 하였다. 그 뒤 1964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현재 사당 자리에는 이황·정경세 선생의 강학유허비가 서 있다.
[출처] 고산서당_위키백과
 

고산서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고산서당(孤山書堂)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이다.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퇴계 이황(1501∼1570

ko.wikipedia.org

일대 지역이 고산인데 서당 뒤편 작은 언덕배기에 맞춰 지역명과 서당이 명명된 걸 알았다.

1500년대 건립된 건물치곤 나무나 담벼락이 시간에 맞지 않은 걸 보면 근래 재축조된 게 아닌가 싶다.

근데 찾아보니 2021년 12월 20일 화재가 있긴 했다.

대구시 문화재 고산서당 화재 전소_노컷뉴스

 

대구시 문화재 고산서당 화재 전소

대구시 문화재인 고산서당에서 불이 나 목조 건물 한 채가 모두 불에 탔다. 20일 오전 3시 50분쯤 대구시 수성구 성동 고산서당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서당 건물 한 채를 모두 태우고 30여

www.nocutnews.co.kr

서당 정문에서 좌측 담벼락을 돌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느티나무로 향했는데 300년 수령치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활짝 펼친 가지를 따라 촘촘히 열린 이파리가 더해져, 그리고 나무 굵기는 마을 수령님이라 해도 모자람 없을 만큼 그 자태는 한눈에 들어왔다.

서당 앞은 금호강의 지류인 남천이 흐르고, 그 뒤엔 경부선이 지나는데 때마침 KTX와 SRT가 교차했다.

그 경부선 너머엔 바로 금호강이 지나는데 멀리 산줄기 아래까지 드넓은 평원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대구분지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서당은 완만한 고산의 지형 따라 아래와 위쪽으로 나뉘는데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와 한적한 마당을 둘러봤다.

서당 윗편과 아래편 사이에 작은 정원이 있고, 거기엔 동네의 평온한 정취를 반영하듯 대부분의 소음도 정제되고 정체되어 우주처럼 적막할 지경이었다.

규모가 작아 천천히 둘러봐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마지막 떠나기 전 서당 가장 큰 형님이신 느티나무를 찾아 인사 드린 후 담장을 벗어났다.

서당을 휘리릭 돌아보곤 올 때처럼 천천히 돌아 나오는데 담장 바깥은 들꽃이 공존하는 세상이었고, 그게 평온을 함께 떠받드는 영혼들이었다.

작은 마을에 흔히 지나칠 법한 작은 서당을 뒤돌아 왔던 길 따라 그 방향으로 뿌듯하게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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