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였다면 냉큼 청량산으로 향했을 터, 마침 작년 여름 청량사를 방문 했을 때 급경사길에 대한 부담으로 오마니께선 청량사를 가지 못하신 마음의 앙금으로 이번엔 조용한 틈을 타 차로 청량사까지 곡예 운전을 했다.
자식 입장에서 효도는 못할지언정 어떻게 같이 떠난 여정에서 불교 신자이신 오마니를 모시지 못한 후회의 앙금은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고, 가끔 봄에 틔우는 싹처럼 아름아름 양심을 찌르는 소리가 귀에 이명처럼 들려 직접 모시기로 했다.
주위 가족이나 친지들은 청량사에 대해 아주 좋은 평을 늘어 놓으니 연세 때문에 가지 못하신 심정 자식한테 내색하지 않으시지만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역시나 예상대로 청량사 길은 말이 포장길이지 급경사와 좁은 길은 같이 차에 타고 있는 가족 심장 쫄깃하게 만들기 딱 좋았다.
원래 그렇잖아.
운전하는 사람은 브레이크를 밟던 소위 앞지르기로 아슬아슬하게 째기를 하던 미리 계산된 행동이라 당연시 여기는데 동승한 사람들은 그 속을 모르니 월매나 스릴감 넘치겠나.
그와 마찬가지로 급경사 길을 올라가는 나는 그나마 버겁긴 해도 차가 오를 수 있다는 경험적 견적이 서는데 동승자는 그게 아니니 심장은 쫄깃, 손발은 질끈할 수 밖에 없다.
근데 티스토리로 넘어 왔을 때 용량 제한이 적어 과감히 넘어 왔는데 동영상을 올리려니까 500메가 이하만 가능하단다.
종간나 생퀴, 요즘 폰으로 화질 조금만 신경 써도 500메가가 아니라 1기가는 훌쩍 넘어가는데 언제적 이야기 하는겨!
하는 수 없이 다른 SNS가 변환 해놓은 초사이언구라화질 영상을 올리는 수 밖에.
고프로를 질렀으니 시간을 붙잡아 놓고 즐겨야지.
그리하야 떠난 여행길에 일부를 실타래처럼 꼬아 엮었다.
아무리 쉬운 돼지털 기기라 해도 손에 익기 까지 시행착오는 필수라 레코딩을 끄는 시점에서 턴오프가 되지 않아 그 뒤로 완전히 반전되어 촬영은 스탠바이, 턴오프는 촬영으로 의도와 다르게 진행 된다.
그나마 몇 개 찍은 것 중 청량사에서의 영상만 엮었다.
가끔 여행의 충동이 일 때 이렇게 찍어 놓은 영상들을 보며 위안 삼아야지.
차에 달아 촬영한 영상을 보면 하이퍼스무스의 퍼포먼스는 믿음직하다.
중간에 사찰의 물소리-다행히 세찬 바람이 잠잠할 때-를 들으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맑아지는 착각이 들고,
마지막 타임랩스는 찰진 재미는 있는데 앞 차량이 신호를 받으면 아찔하다.
유튜브가 위대하다 느낄 때 중 하나가 용량 제한이 없어 화질, 재생 시간 등 거의 제한 없는 게 엉뚱한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라 본질에만 신경 쓰도록 최대한 도와 준다.
허나 대부분의 블로그나 SNS들은 따지는 게 뭐가 그리 많은지, 시대를 역류하고 있어! ㅉㅉ
청량사는 오르는 길도 그렇지만 사찰에 발을 들이는 전체도 상당히 가파르다.
평소 가파른 길이나 조금 긴 계단은 못 걸으시는 오마니, 근데 청량사 밑에 차를 세우고 뭔가에 끌리듯 힘겹게 오르시는 뒷모습이 짠!하다.
모성애를 갖고 사찰에 와서 절을 올리는 건 엄연히 자식을 위한 기도와 염원 아닌가.
그런 일념으로 평소 체력과 한계를 극복 하신건데 월매나 마음이 아려오는지...
할 수 있는 거라곤 도중에 쉬시는 장소 옆 작은 약수터 물을 한 움큼 떠서 드리는 것 뿐이었다.
절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싱그럽고 활기 넘치는 듣기 좋은 소리라 귀를 귀울여 본다.
겨울이 만연한 세상에서 봄이 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증거를 수집하고 물증이 확보되면 확신을 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꽃이나 새싹을 보며 봄이 기지개를 피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시각이나 후각만 있는게 아니라 청각도 완벽히 수집 되었을 때 확신하듯 그 청각의 물증이 바로 봄 새의 지저귐과 산에서 들리는 물소리 아니겠는가.
세차고 역동적이지 않으면서도 경쾌한 물소리,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그 물증을 수집하는 게 쉽지 않은 터라 당연히 청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시 그 소리에 취해 본다.
약수터 옆길로 시선이 닿는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데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 꽃에 매료될 수 밖에 없다.
생강나무는 얼핏 산수유꽃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봤을 때 완연히 구분 된다.
공통점이라면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단 것.
깊은 산중에서 태초의 순수한 스펙트럼을 겨우내 품고 있던 자연은 봄의 양분을 먹고 큰 기지개와 함께 세상에 부시시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하게도 전혀 조작하지 않은 봄은 문명의 가공을 거치게 되면 수억 컬러를 그대로 표현한들 시신경은 다른 반응으로 일관한다.
육안으로 보이는 꽃은 눈이 맑아지는 반면 사진으로 가뒀다 모니터로 보게 되면 그 느낌이 당최 재현 되지 않는다.
숫자로 재단해 버릴 수 없는 감각의 유전자는 자연의 전유물인가 보다.
이렇게 사찰 내부에 계단길도 가파르다.
그마저 계단이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길이다.
결국 오르고 올라 청량사 가장 깊고 높은 자리를 밟았다.
충분한 봄볕을 받아서 일까?
대청 마루 같은 느낌의 여기를 밟자 발바닥이 따끈따끈하다.
잠시 이 자리에 서서 세상을 둘러 보는 기분이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발치 아래 위태로운 벼랑에 피어 있다.
파란 하늘이 넘치고 넘치던 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무르며 전체가 평온에 휩싸인 사찰의 적막에 깊이 빠져 들었다.
적막 하다고 해서 모든 세상의 소리가 차단되고 사라진게 아니라 자연의 소리는 그대로다.
바람이며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잠자고 있던 다른 자연의 소리는 봄과 함께 경쾌한 울림으로 승화되어 웅크린 마음을 덩달아 일깨워주는 파동이기도 했다.
그 소리에 취해 잠시 양지 아래 있다 다시 사찰을 벗어나 올 때와 같이 경사가 급한 길을 위태롭게 내려갔다.
청량사 초입으로 오던 중 폭포와 텅빈 주차장 공간이 떠올라 차를 세워 놓고 주변을 둘러 보기로 했다.
이거 꽃인가?
꽃이 아니라면 꽃처럼 도도한 거다.
지나는 길에 전혀 몰랐던 폭포가 있어 잠시 이 자리에 서서 타임랩스를 찍은 건데 세찬 바람 소리를 뚫고 경쾌한 폭포수가 이 공간을 흔든다.
마지막에 출발 전, 안내소에 들러 지도와 다음 여행에 필요한 자료를 줍줍하러 갔더니 중년 한 분이 계신다.
무뚝뚝하지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걸 챙겨 주시는 손길은 이 고장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자랑도 포함 되어 있었다.
깊은 산중이라 여긴 봉화와 그 봉화에서도 더 깊은 곳에 있는 청량산은 가을 명소란다.
어떤 자연의 힘 앞에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산인 청량산은 어떤 계절에도 가을 못지 않은 탄성이 필요할 빼어난 경관을 보여 주고, 또한 어떤 일상의 찌든 푸념을 뱉어도 모두 들어주고 받아 줄 듬직한 보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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