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 9

일상_20191229

하루가 지나 초저녁 무렵에 전날처럼 반석산 둘레길을 같은 경로로 걸었다. 다만 달라진 건 화창하던 날씨가 얇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로 바뀌었다는 것.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걷다 전망데크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여전히 초저녁시간이라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동탄 1과 2 신도시 사이 꽤나 너른 공간은 허허벌판이라 깊은 암흑 바다 같았다. 노작공원 방향으로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내리막길 도중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었다 가고 싶지만 빗물이 흥건해 그냥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걸로 만족했고, 하루 만에 멧돼지에 대한 공포는 사라져 버렸다. 둘레길을 통틀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중 몇 손꼬락 안에 드는 괜춘한 곳이다.

일상_20191228

늦은 시간에 오른 반석산은 언제나처럼 적막했다. 언젠가 동탄에 멧돼지가 출현했다던데 괜한 기우인지 둘레길을 걷던 중에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예민해졌다. 결국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별 거 아닌데 싶었지만 모처럼 야밤에 반석산을 왔던 게 덤덤하던 기분을 잊어버렸나 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노작 마을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아 복합문화센터로 내려왔고, 동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초저녁인데도 벌써 야밤처럼 전등이 켜지지 않은 둘레길은 깜깜했다.

일상_20191225

성탄절의 설렘보단 늘 맞이하는 휴일 중 하루를 대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계절이든 각각의 매력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겨울이나 여름이 되면 마음과 달리 몸은 위축되어 정적으로 바뀌고, 이내 익숙해져 버렸다. 느지막이 집을 나서 여울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가 모처럼 공원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나무를 만났다. 겨울이라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오산천 산책로를 따라 나무가 가까이 있는 북쪽 공원 입구로 들어서 나무를 한 바퀴 둘러보자 그제서야 서쪽으로 기운 석양이 눈에 띄었다. 언제 보더라도 나무의 기품은 변함이 없고, 가지를 지탱하는 기둥이 옆으로 뻗은 나무 가지를 지지하고 있었다. 나무를 잠시 둘러보고 오산천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파트 건물 사이에 걸린 석양이 보인다. 휴일 ..

나무의 자태_20191221

은사 댁에서 포근한 밤을 보내고 이튿날 일어나 밖을 나오자 하늘이 비교적 흐렸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마치 잠시 후 비를 뿌릴 기세라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데 고도 차이로 계단식 밭 한가운데 우뚝 선 소나무 두 그루가 멋스러웠다. 여름 동안 무성히 자랐던 칡넝쿨과 밭을 빼곡히 메웠던 참깨 단, 고구마 줄기는 널부러져 있지만 그 허허로운 벌판에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소나무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밭을 일궈도 소나무가 멋져 그대로 둔다는 은사께선 다음 해 여름을 앞두고 마당에 있는 원두막을 소나무 곁으로 옮기겠다고 하신다. 지대가 높아 마을을 두루두루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고, 언덕배기를 배후에 두고 있어 여름이면 시원할 것만 같았다. 다만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 밭만 오면 소리소문 없이 산..

여주 밤 하늘_20191220

여주에 도착할 무렵 은사께선 여주역에 도착하신단다. 오랫 만에 뵙는 거라 저녁은 여주 재래시장에 들러 삼겹살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역할 분담으로 저녁 식사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다녔다. 은사 댁에 도착하여 허겁지겁 저녁을 뽀개면서 얼큰하게 소주 한 잔을 통해 배 부른 뒤 한층 평화로워진 뱃속을 달래다 문득 여주 밤하늘에 은하수가 관찰될까 호기심에 카메라와 이번에 구입한 삼각대를 챙겨 언덕을 올랐다. 여주라고 해도 한창 벗어난 곳이라 마을 전체는 사위를 에워싸듯 완전 깜깜했는데 주위가 워낙 깜깜해 랜턴을 켜자 대기 중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먼지가 많았다. 대구에서와 달리 여주에 왔을 때는 약간 뿌옇긴 해도 이 정도일 줄 몰랐건만 밤이 되자 옅은 안개가 끼여 밤하늘에 은하수는 고사하고 별도 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철마_20191220

동곡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도로는 고속도로 버금가는 매끈한 도로였다. 이정표엔 왜관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 데다 저녁에 여주까지 가는 일정상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했던 만큼 방문 예정이 없었던 왜관을 오늘 아니면 언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 김에 생각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괜춘한 여가 활용 아니겠어. 왜관을 왔던 게 언제였던가? 대략 30년 전 병아리 같던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동해 바다로 여름 피서를 떠났다 일행 중 한 명이 왜관에 있는 할머니 댁에 방문하자고 해서 꼬불한 도로를 따라 덜컹이는 완행 버스를 타고 방문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당시 왜관 모습은 기억이 거의 없지만 친구 할머니 댁에 방문해서 굶주린 허기를 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적한 시골 마을의 맛집이라?_20191220

추위가 몰려오는 전날 대구에 내려가 지인들과 함께 조촐하게 소주잔을 기울인 뒤 미리 예약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일어나 여주로 가기 전, 문득 해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백종원 3대 천왕 칼국수 집 중 하나인 동곡 손칼국수가 있는 동네로 향했다. 길은 단순하여 거의 헤매지 않았고, 아니다, 신천대로에서 신나게 달리다 서재길로 빠져야 되는데 익숙치 않은 지리라 한 발 앞서 빠지는 바람에 칠곡 방면 매천대교로 빠져 덕분에 팔달교를 한 번 더 건너 다사 산업단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사발 옆에 낀 채 동곡에 도착했다. 역시 백종원 브랜드 파워인지 이곳이 소개된 이후로 동네길을 중심으로 손칼국수집이 몇 개 들어서 칼국수 마을로 재탄생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냄새. 큰 아궁이에 솥가마가 올려져 있고..

강물 위에 뜬 미련처럼, 도담삼봉_20191212

잔도 길과 스카이워크에서 느린 걸음으로 여행을 마친 뒤 단양 구경시장에 들러 5년 가까이 지난 추억을 거슬러 올라 순대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겨울 청풍호의 매력_20150214) 간판 공사인지 2층에 앉아 식사를 하던 중 몇 사람이 오고 가더니 이내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또다시 분주히 2층을 오가는 사람들로 식사 자리가 불편해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식당을 나서는데 용접봉의 파란 불길이 쇠를 달구고 있어 잠시 기다렸다 나왔지만 배려에 대한 감사는 전혀 없는 걸 보면 작업에 너무 열중했나 보다. 머뭇거릴 겨를 없이 바로 단양읍을 빠져나와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이내 도담삼봉으로 향했다. 도담삼봉 주차장에 도착하자 2015년 당시엔 없던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격세지감을 이런 때 느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