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곡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도로는 고속도로 버금가는 매끈한 도로였다.
이정표엔 왜관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 데다 저녁에 여주까지 가는 일정상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했던 만큼 방문 예정이 없었던 왜관을 오늘 아니면 언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 김에 생각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괜춘한 여가 활용 아니겠어.
왜관을 왔던 게 언제였던가?
대략 30년 전 병아리 같던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동해 바다로 여름 피서를 떠났다 일행 중 한 명이 왜관에 있는 할머니 댁에 방문하자고 해서 꼬불한 도로를 따라 덜컹이는 완행 버스를 타고 방문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당시 왜관 모습은 기억이 거의 없지만 친구 할머니 댁에 방문해서 굶주린 허기를 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기억은 남아 있다.
그랬던 기억을 표류하며 이내 도착한 왜관은 당시 철길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그 철길이 지나던 철교만 남아 도보길로 새 단장한 상태였다.
낙동강 강변대로를 따라 왜관을 지나치는 바람에 4대강 삽질 작품(?)인 칠곡보에서 유턴하여 왜관으로 진입하자 초입 소방서 부근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한 뒤 간헐적으로 사람들이 걷는 방향을 뒤따라가자 이내 철교가 나와 길을 찾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강변대로를 달리면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철교의 모습은 딱 트인 시야로 인해 먼 곳에서부터 관찰할 수 있었다.
철교를 밟고 주변을 둘러보던 사이 비슷한 시기에 도착한 사람들은 벌써 멀어져 까마득하게 보였고, 반대로 서 있던 곳으로 걸어오던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까마득하게 보였건만 금세 가까워져 옆으로 지나갔다.
낙동강 폭을 감안한다면 꽤 긴 다리지만 한 자리에 서서 한참을 신기한 구경에 빠져 있었나 보다.
다리를 건너며 대구에서 달려왔던 방향으로 낙동강을 바라보자 주변 일대가 훤히 보였고, 주변에 경관을 가릴 장애물이 없어 먼 곳부터 관찰이 되었던 거다.
전날부터 몰려온 추위 덕분에 대기는 비교적 맑아 햇살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고, 걷는 동안 따사로운 햇살이 피부에 닿아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철교를 건너 오자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태로 한참 텅 빈 상황이었고, 인적을 의식하지 않은 채 강 건너편을 느리게 걸으며 둘러봤다.
텅 빈 철교를 서서 건너편 방향으로 바라보자 문득 아득한 세월의 느낌이 물씬 풍기며, 순간 과거 까까머리 학창 시절에 멋모르고 방문했던 기억들이 강렬한 향수처럼 걷잡을 수 없이 감성을 중독시켜 버렸다.
엷은 하늘과 같은 색을 입은 철교는 때마침 청명한 하늘과 파란 낙동강 사이에 놓여 잘 어울렸다.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을,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중간 지점에 놓여 마치 두 마을과 두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것처럼 곧게 뻗어 하나의 접점으로 모이는 곳으로 향하는 철교는 이제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기차는 더 이상 다닐 수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느리게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떠받들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시간이 과거에 비롯된 것처럼 철교 또한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없는 막중한 의미를 떠받들어 새로 가설된 다리와 달리 오래된 보의 모습은 여전했다.
하루 동안 대구에서 출발하여 여주로 가는 경로를 따라 그 가운데 놓인 왜관을 들러 여유를 몸소 느끼고, 더불어 어딘가에 심어 놓은 과거 회상도 더듬은 뒤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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