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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세계, 상원사_20220504

중력은 약하고, 자태는 묵직한 사찰인 상원사는 남대봉으로 가는 길이라면 꼭 들러야 된다. 탐욕의 비늘이 있는 자리에 나지막이 울리는 산내음이 있고, 둔탁한 엔진소리 대신 발자국 소리마저 숙연하게 만드는 은은한 풍경소리가 있다. 치악산의 파수꾼처럼 잔혹한 세속에서 우뚝 선 절벽 위 큰 어른.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처럼 유혹이 난무한 산행 뒤에 눈과 가슴으로 갈증을 깨친다. 힘든 여정의 감로수, 치악산 남대봉/상원사_20210817 평소 산을 거의 타지 않는 얄팍한 체력에도 뭔가에 이끌린 듯 무작정 치악산기슭으로 오른 죄. 평면적인 지도의 수 킬로를 우습게 본 죄. 시골 출신이라 자연 녹지의 낭만만 쫓은 죄. 여전히 대 meta-roid.tistory.com 상원사에 들어서면 누구나 약속처럼 감탄사를 남발하게 ..

치악에 대한 중독, 치악산 남대봉 계곡길_20220504

모처럼 치악산에 도전, 산으로 가기 전 든든한 식사는 기본이라 가까운 원주 혁신도시에서 에너지 보충과 더불어 커피 한 사발 짊어지고 떠난다. 회사 계단 오르는 것도 턱 밑까지 숨이 차는데 치악산 남대봉에 오를 수 있을까? 첫걸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발을 떼고 나면 어떻게든 오르는 것 보면 저질체력이 아니라 스스로 위안하고 다독거리는 수밖에. 원주혁신도시는 처음 밟는데 무척 깨끗하고 잘 짜여져 있었다. 게다가 외곽으로 치악산이 감싸고 있어 무척 부럽기도 했다. 또한 아침 햇살이 어찌나 강렬한지 산행을 하기 전부터 등짝이 촉촉해질 정도로 날씨 또한 포근했다. 치악산의 눈물, 영원산성_20210809 이 하늘에 모든 망설임을 털고 첫걸음 내딛는다. 티 없이 맑던 하늘의 화폭에 치악산의 미려한 선이 수놓듯 ..

집으로 가는 길, 속리산 휴게소_20220503

힘겹게 넘어가는 백두대간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휴게소 옆 멋진 산세는 굳이 이 휴게소를 들른 이유로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접근성이 좋아져서 그렇지 원래 오지 중의 오지였단다. 오죽했으면 6.25가 발발했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산은 천연 요새며 생명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다. 먼저 아부지 산소에 들러 설 차례를 지냈다. 항상 이 자리에서 인증샷 한 컷을 찍게 되는데 계절의 특징도 잘 나타나고, 인사를 드리고 난 후의 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남쪽 지역의 봄은 비교적 덥기도 했다. 올라오는 길에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보면 속리산 휴게소가 단골 쉼터였다. 그래서 몸에 덕지덕지 끼여 있는 노곤함을 털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의 구병산을 바라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그 자태에 감탄하게 되며,..

친근한 녀석들과의 저녁 만찬, 오도산 휴양림_20220502

숙소에 들어와 모두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저녁을 준비하는데 어렴풋 꼬물이 하나가 보여 불렀더니 정말 다가왔다. 비교적 어린 냥이라 당장 줄 건 없지만 녀석은 내가 그리 적대적이지 않은 걸 눈치채곤 발코니 쪽으로 사라졌다. 여긴 종종 냥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번엔 내 차가 아니라 밥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 또한 눈치를 챘다. 휴양림 투숙객들이 하나둘 던져주는 고기 맛을 알고 있는 녀석들이라 아니나 다를까 회전불판에서 고기 내음이 뿜어져 나오자 발코니에 모여들어 냥냥송을 합창했다. 울가족들은 코코 이후로 전부 냥이들에 대해 호의적이고 측은해하는 편이라 하는 수 없이 고기 몇 점을 잘라 녀석들과 틈틈이 나눠 먹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숙소 출입구 앞에서 까만 무언가를 보고 혹시나 싶어 부르자 그 소리에 달려온..

거대한 핑크빛 출렁임, 합천 황매산_20220502

꽃이라고 해서 꼭 향기에만 취하는 건 아니다. 가슴속에 어렴풋 그려진 꽃이 시선을 통해 굴절된 꽃을 통해 꽃망울 필 때면 잠깐의 화려한 향이 아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관통하여 끝끝내 취한 나머지 행복의 추억에 가슴 찡한 향을 터트린다. 때론 선명한 실체보다 아스라한 형체가 상상의 여울이 되어 흐를 때 비로소 그 기억을 품고 사는 내가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의 꽃밭에서 유유히 도치된다. 1년 전 황매산 행차할 때 코로나 백신 여파로 밤새 끙끙 앓았었는데 이번엔 그런 무게가 없어 한층 가벼웠고, 더불어 조카 녀석도 한 자리 차지해서 웃는 횟수도 많았다. 황매산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대병면과 산청군 차황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1,113m에 이르며, 준령마다 굽이쳐 뻗어나 있는 빼어난 기암괴석과 ..

봄을 만나러 금호강변을 걷다_20220430

인가와 불쑥 떨어진 강변의 봄은 움튼 녹색 물결이 출렁이는 가운데 그 물결 위로 이따금 손짓하는 봄꽃이 바다 파도의 하얀 물거품을 대신했다. 강을 따라 힘차게 흐르는 바람이 신이 난 이유는 어디든 내민 손을 맞잡아줄 새로운 생명이 강변 위에 공백 없이 자라 심지어 바람의 신명에 덩달아 밝은 색의 물결을 잘게 부숴줬고, 때마침 황사도, 미세 먼지도 어디론가 숨어 세상은 넘치는 유희가 강이 되고, 산이 되던 날이었다. 고산서당에서 나와 반대 방면인 금호강과 합류하는 방향으로 걸어 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 꿈나무들이 비지땀을 흘리는 리틀야구장에 다다랐고, 봄에 맞춰 각종 야생화들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폈다. 꿈나무들의 재능 잔치라 꽤 많은 가족들이 한데 모여 열기도 높았고, 좁은 길가에 아슬아슬하게 세워놓은 차량..

봄꽃 너울대는 평온한 고산서당_20220430

꽃들의 잔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온갖 색상이 풍년을 이루는 길을 따라 찾는 이가 없는 서당을 들러 잠시 흐르는 시간을 잊었다. 만발한 아까시 꽃이 강바람 따라 흥겨운 춤을 추는 마당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그 매혹적인 향은 어디론가 사라져 공허한 정취가 자욱한데 잠시 위안 삼아 작은 언덕 아래 몸을 숨긴 서당을 산책하며 평온의 한숨을 들이켰다. 오래된 나무와 근래 끼워진 목재, 아무렇게나 핀 들꽃은 마치 뒤엉킨 것처럼 난무했지만 나름 자연이 살아가는 질서에 따라 오랜 시간 익숙해져 비교적 그들만의 규율에서 절제와 절도가 공존하는 작은 세상이 평온을 떠받드는 곳이었다. 호텔에서 출발하여 용무차 서변동으로 가기 전에 금방 다다를 수 있는 동대구 IC 부근 금호강으로 향했고, 율하동 육상 선수단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