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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비누 사이_20220505

요즘 공원 같은 공공장소는 시설이나 관리가 꽤 잘 되는데 식당이나 카페 가면 그럴 때가 있다. 생겨 먹은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비누인데 거품이 나질 않고 심지어 1년 전에 봤던 비누가 사이즈만 조금 줄어들었지 그대로 인 곳도 있다. 이걸 비누라고 불러줘야 하나, 아님 돌덩이라 불러줘야 하나? 일 년 전에 내 손을 거친 비누가 아직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다 못해 10년은 버틸 기세다. 상시에는 비누, 비상시에는 무기.

휴일 만의사에서_20220505

산중 사찰의 내음이 봄꽃과는 또 다른 빛깔의 속삭임에 이끌려, 쏟아지는 햇살의 따사로운 눈부심에 이끌려 잠시 걷는 동안 은은한 풍경 소리에 취한다. 새로 태어난 연등은 빼곡히 바람 따라 손짓하는데 그 고운 춤사위에 새겨진 염원은 영혼의 자취를 추종하며 얼마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려는 걸까? 무심히 내려앉은 하늘이 유독 망망대해 수평선이 부럽지 않은 날이다. 서쪽 바다 건너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로 난리라는데 도리어 우리나라는 대기가 깨끗해서 난리다. 사찰 하늘이 유독 바다 같다. 세찬 바람에 미친 듯 흔들어 대는 연등에 적인 염원은 사찰에 비해 맑은 하늘처럼 순수하다. 봄의 마지막 진수를 보여주는 걸까? 하늘에 이끌려 걷다 꽃퍼레이드에 넋을 놓는다. 붓끝이 스친 자리는 온통 정교한 색이 들어차 있다. 인간..

유희의 찬가, 치악산 종주능선과 남대봉_20220504

칼날 같은 능선은 아니지만 치악산의 종주능선길을 걷는 건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유희로 가슴 벅차다. 전형적인 오솔길로 길 폭은 한 사람 지나기에 자로 잰 듯 알맞고, 길가 유기물은 어느 하나 특별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것 하나 없이 여느 길과 완연히 다른 기분으로 착색시켜 이따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충족된 목적에 한숨 응수하며 오를 때의 고단함을 잊게 만들었다. 길이 아름다운 건 그 길의 필연을 역설하기 때문이고, 또한 오래된 시간의 자취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이 잉태된 땅에 불쑥 들어서 환영 받지 못하는 불청객은 길로 인해 손님이 되고, 친우가 되며, 때론 제자가 된다. 비록 뿌연 대기가 세상으로 뻗어가는 시선을 시샘하고, 용인하지 않지만 이 길에서 만큼은 세속과 다른 민낯을 하나씩 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