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치악산에 도전, 산으로 가기 전 든든한 식사는 기본이라 가까운 원주 혁신도시에서 에너지 보충과 더불어 커피 한 사발 짊어지고 떠난다.
회사 계단 오르는 것도 턱 밑까지 숨이 차는데 치악산 남대봉에 오를 수 있을까?
첫걸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발을 떼고 나면 어떻게든 오르는 것 보면 저질체력이 아니라 스스로 위안하고 다독거리는 수밖에.
원주혁신도시는 처음 밟는데 무척 깨끗하고 잘 짜여져 있었다.
게다가 외곽으로 치악산이 감싸고 있어 무척 부럽기도 했다.
또한 아침 햇살이 어찌나 강렬한지 산행을 하기 전부터 등짝이 촉촉해질 정도로 날씨 또한 포근했다.
치악산이라는 이름대로 2시간 30분 가량 '치'를 떨면서 '악'소리는 수 없이 뱉었다.
그래서 치악산인가?
물론 최정상인 비로봉에 비해 조금 수월하긴 하나 역치를 넘어선 고행은 어차피 척도를 들이댈 수 없는 고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지속된 오르막을 걸으며 쌍욕 퍼레이드를 연발했다.
그런데 참 희안하지?
그런 체력적 부대낌에도 주홍글씨처럼 따라붙는 극도의 집중력과 몰입감에 어쩌면 나는 그걸 찾기 위해 부질없어 보이는 선택을 한 건지 모르겠다.
시종일관 펼쳐진 오르막길은 경사도가 급해지거나 완만해지는 정도의 차이뿐, 어차피 지속되는 산행에서 발걸음은 천근만근에 폐부는 거의 학대 수준으로 몰아붙였다.
근래 보기 드문 극단적인 활동에도 길가 배시시 눈을 마주치는 야생화와 신록의 싱그러운 초록은 발길을 붙잡는 복병이 아니라 다짐한 종착지를 향한 친우이자 변색될 법한 의지의 방부제와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또한 힘든 찰나를 잊고 어느새 주체할 수 없는 희열만 남는 건 인간이 축복받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의 카타르시스를 질끈 씹었다.
치악산 금대분소에서 출발하여 영원사까지의 평탄한 길을 걸으며 야생화의 자태를 이따금 감상했다.
특히 꿀벌보다 벌각시나방이 더 눈에 많이 띄였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확연히 개체수가 많았고, 정상 일대와 종주능선길에서는 꽤 많았다.
보기 쉬운 생명이 아닌데도 여기서 만큼은 꿀벌이 더 귀할 정도로 흔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도 공격적이지 않은 걸 보면 기질이 호전적이지 않거나 무기가 없는 것 같았다.
"나비야~"
냥이를 부르는 흔한 이름의 나비가 아닌 화려한 날개를 가진 진짜 나비다.
봄에 뒤늦은 냉해 때문인지 올해 특별히 귀하신 몸, 꿀벌.
팍팍 활동해 다오.
우리집 아카시 꿀 거의 다 바닥났단다.
영원사를 지나지 않은 본격적 산행 전에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야 되는데 살랑이는 바람결에 화사한 손짓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 놓은 계곡 여울은 덕분에 투명하다.
산행이 시작되는 영원사 갈림길.
여기까지 약 2.4km 포장된 길은 정말 수월했다.
나머지 3.9km는 마음을 다잡고 각오해야 된다.
단순 수치상으로 금대분소에서 남대봉까지 6.3km!!!
남대봉 갈림길에 가면 5.4km로 표기되어 있다.
앞서 경로와 똑같이 상원사-남대봉-능선길-영원산성 순으로 밟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기는 충천하야 치악산조차 씹어먹을 기세였다.
치악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를 보면 영원사~남대봉 갈림길 구간이 매우 어려움!
아무리 내 체력이 저질이라고 하지만 이 구간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게 봉우리를 내어주지 않는 코스였다.
왠지 위안 되는 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금대 계곡길을 이용하여 오른 뒤 내려올 때는 영원산성을 이용할 예정인데 체감되는 경사도에 비해 너무 완만하게 그려 놓은 게 아닐까?
왠지 개사기 같은 걸!
상원사 계곡길 초반은 딱 내스탈이었다.
데크길에 한시도 빼놓지 않고 경쾌한 여울 소리까지.
게다가 신록 빛깔은 마치 꽃과 같았다.
저 파릇한 연둣빛 색채는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을 정화시켜 줄 그런 발랄한 빛깔이었다.
여울과 함께 하던 길은 어느 순간 갈림길에 놓이고, 여울길은 출입금지로 막혀 여기서부터 홀로 지난한 산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또한 치 떨리는 치악산만의 진정한 험로가 펼쳐지는데 얼마 오르지 못하고 처음 의욕과 사기는 어디로 가출하고 입에선 개쌍욕과 한숨이 연신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중 몇 곳은 길이 맞나 싶은 곳도 있었다.
그나마 이번이 2번째라고 악을 쓰면서 오르는데도 대부분 길이 낯익었다.
봄에 만나는 야생화는 치악산 전체를 통틀어 그들만의 세상처럼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띄었다.
심지어 이끼에 의지하여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 생명도 있었다.
생선 비늘처럼 오돌토돌 자라나 좀 징글징글하다.
한참을 올랐을까?
산에 오르던 중 어느 정도 거리를 띄워 가시던 노부부를 만났는데 앞서 오르시다 할머니를 기다리시던 할아버지께선 길옆에 쉬고 계시더니 조금 지나 아래를 내려보자 두 분 다 따라오시지 않았다.
아무래도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하산하셨나 보다.
거대 바위 사이를 지나는 대문바위길.
실제 바위 위세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행여 바위 위에 있던 작은 돌이 떨어질까 싶어 대문바위길 가파른 계단 위에 이런 단단한 철망이 씌어져 있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 고비 무리도 많았다.
이거 함부로 먹으면 안된단다.
언뜻 곰취 같아서 다가갔더니 아니었다.
대문바위 지나서 더욱 가파르고 긴 계단을 오르는데 옆에 오래되어 낡은 동아줄이 있었다.
근래 데크계단이 생기기 전에 급격한 경사를 이 밧줄에 의지했었나 보다.
대문바위에서 시작하여 이 언저리까지 경사도는 영원사 갈림길에 서 있던 지도상 '매우 어려움'을 실감케 했다.
가파르고 긴 계단이 끝나면 턱밑까지 완연히 차오른 숨을 가다듬기 위해 바위에 잠시 걸터앉았고, 점차 가쁜 숨이 가라앉자 바로 옆에서 살랑이던 봄꽃이 시선에 왔다.
몸을 숙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야생화들이 많았다.
겸허하고 겸손해지라는 자연의 순응에 대한 메시지일까?
산중턱에서 우산처럼 활짝 열어 젖힌 고비와 달리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고비는 새싹 시절의 웅크린 모습이었다.
야생화는 이렇게 무리 짓는 특성이 있나 보다.
손목 고도계를 보면 1천 미터가 지나 능선길과 가까워진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체력적인 부담과 급박한 호흡으로 인해 기록을 남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남대봉 갈림길에 도착.
고도계는 1,143m를 가리켰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오르는 내내 후회와 자책을 하던 사념은 온데간데없고 잔뜩 찌뿌렸던 미간은 다시 활짝 펴졌다.
능선 갈림길에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상원사 길을 선택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기에 딱 알맞은 오솔길로 지금까지의 치악산과 완연히 다른 착한 산길이었다.
능선에서 상원사까지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오르는데 신물이 나 있는 상태라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올 생각에 이 정도에도 잠시 신물과 우려가 덜컥 올라왔다.
상원사를 앞두고 길섶 빼곡한 가지를 지나면 무척이나 반가운 초봄의 전령사가 반겼다.
대부분의 꽃잎들은 떨어지거나 매달린 것조차 시들해져 있어 이런 함박웃음이 어찌나 반가운지!
진달래와 마주 보며 지금까지 힘겨운 산행의 위안과 응원을 받아 상원사로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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