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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한 그리움, 망해사_20200111

점심을 해결하고 미리 훑어본 지도의 잔상을 따라 찾아간 곳은 만경강 하구의 정취를 지대로 누릴 수 있는 망해사다. 가는 길은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김제평야의 드넓은 평원을 한참 지나 바다와 맞닿을 무렵, 도로에서 한적한 우회길로 빠지자 작은 언덕을 넘어 한눈에 평원과 그 평원을 가르는 만경강이 들어찼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이 바로 망해사였다. 망해사는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한적함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적과 문명의 소음이 없었고, 사찰 한 가운데 도드라지게 자리 잡은 나무의 위세는 다른 모든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사찰에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석탑이나 종은 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한시적인 동반자 같았고, 평원을 가르는 만경강은 이 자리에 서 있는 심적..

여주 밤 하늘_20191220

여주에 도착할 무렵 은사께선 여주역에 도착하신단다. 오랫 만에 뵙는 거라 저녁은 여주 재래시장에 들러 삼겹살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역할 분담으로 저녁 식사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다녔다. 은사 댁에 도착하여 허겁지겁 저녁을 뽀개면서 얼큰하게 소주 한 잔을 통해 배 부른 뒤 한층 평화로워진 뱃속을 달래다 문득 여주 밤하늘에 은하수가 관찰될까 호기심에 카메라와 이번에 구입한 삼각대를 챙겨 언덕을 올랐다. 여주라고 해도 한창 벗어난 곳이라 마을 전체는 사위를 에워싸듯 완전 깜깜했는데 주위가 워낙 깜깜해 랜턴을 켜자 대기 중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먼지가 많았다. 대구에서와 달리 여주에 왔을 때는 약간 뿌옇긴 해도 이 정도일 줄 몰랐건만 밤이 되자 옅은 안개가 끼여 밤하늘에 은하수는 고사하고 별도 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철마_20191220

동곡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도로는 고속도로 버금가는 매끈한 도로였다. 이정표엔 왜관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 데다 저녁에 여주까지 가는 일정상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했던 만큼 방문 예정이 없었던 왜관을 오늘 아니면 언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 김에 생각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괜춘한 여가 활용 아니겠어. 왜관을 왔던 게 언제였던가? 대략 30년 전 병아리 같던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동해 바다로 여름 피서를 떠났다 일행 중 한 명이 왜관에 있는 할머니 댁에 방문하자고 해서 꼬불한 도로를 따라 덜컹이는 완행 버스를 타고 방문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당시 왜관 모습은 기억이 거의 없지만 친구 할머니 댁에 방문해서 굶주린 허기를 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물 위에 뜬 미련처럼, 도담삼봉_20191212

잔도 길과 스카이워크에서 느린 걸음으로 여행을 마친 뒤 단양 구경시장에 들러 5년 가까이 지난 추억을 거슬러 올라 순대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겨울 청풍호의 매력_20150214) 간판 공사인지 2층에 앉아 식사를 하던 중 몇 사람이 오고 가더니 이내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또다시 분주히 2층을 오가는 사람들로 식사 자리가 불편해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식당을 나서는데 용접봉의 파란 불길이 쇠를 달구고 있어 잠시 기다렸다 나왔지만 배려에 대한 감사는 전혀 없는 걸 보면 작업에 너무 열중했나 보다. 머뭇거릴 겨를 없이 바로 단양읍을 빠져나와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이내 도담삼봉으로 향했다. 도담삼봉 주차장에 도착하자 2015년 당시엔 없던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격세지감을 이런 때 느끼..

남한강 물결처럼 단양에서 느리게 걷다_20191212

전날 퇴근과 함께 서두른다고 했음에도 밤늦게 소선암 휴양림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휴양관에 들어서자 미리 지펴 놓은 보일러 훈기가 긴장을 녹였고, 이튿날 오전 느지막이 숙소를 나서 미리 예정했던 단양 잔도 길에 다다랐다. 스카이워크를 먼저 둘러볼까 하다 기습적인 추위로 텅 비다시피 했던 잔도 길로 접어들었고, 역시나 잔도 길은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어 '느리게 걷기'라는 모토에 발맞춰 아주 천천히 걸으며 남한강 위를 공중 부양하는 기분을 느끼려 했다. 잔도 길에 도착하자 남한강가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가는 길이 보였고, 절벽 너머 산언저리엔 잔도 길과 경합을 벌이던 스카이워크가 한눈에 보였다. 잔도 길은 단양읍에서 그리 멀지 않아 걷다가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은 단양 주민들처럼 보..

짧은 시간 정든 것들과의 이별_20191129

구례에서의 2박 3일, 아니 25일부터 29일에 이르는 올 들어 가장 긴 여정의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떠나면서 새롭게 정을 맺었던 많은 것들과 이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구례에 도착할 때부터 따라온 미세 먼지로 인한 뿌연 대기는 아쉽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여행지의 멋진 전경과 생명들은 반가웠고,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의 인연일지라도 정이 깃들어 시원 섭섭한 여운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인가 보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느긋하게 떠날 채비를 하며 그간 암흑과 추위를 피하며 편안하게 잠자리를 제공해 준 이 공간이 못내 아쉬워 밖을 나와 가까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평화로운 전경과 그에 어울리지 않은 공사로 인한 소음은 짧지만 정이 들었다고 제법 익숙해졌다. 다만 숲속 수목가..

범상치 않은 웅크림, 화엄사에서_20191128

지리산 일대 사찰 중 규모와 짜임새가 유명한 화엄사는 꽤 가까이 있어 큰 마음 먹지 않아도 쉽게 접근하고, 둘러 볼 수 있었다.월정사, 해인사, 통도사와 같이 상징적이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화엄사를 찾았을 때는 다행히 방문객이 적어 둘러 보기 수월했다.북에서 내려오는 겨울이 이곳까지 당도하기엔 시간이 좀 걸리는지 찬란한 단풍색이 입구에 서서 오는 이들을 반기느라 화려한 손짓에 현혹되기 쉽지만, 사찰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화려함을 넘어선 진중한 분위기에 직면하게 된다.엄밀하게 따진다면 지리산이 아우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터, 큰 어른 답게 일체 미동도 않고, 그저 한 자리를 지키며 굽이굽이 살피는 것만으로도 화엄사는 영속적인 부모의 그늘 아래 있는 거다. 화엄사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사찰까지 도보로..

지리산이라는 거대 장벽을 마주하다_20191128

구례 2일째 되는 날은 딱 2군데만 들리기로 했다.회사 동료 한 명이 구례가 고향이라 강추한 맛집과 외지인이 잘 모르는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를 빼곡히 귀띔해 줬는데 사실 혼자라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잦은 이동에 따른 체력적인 부담과 더불어 피로도가 증가할 수 밖에 없어 최대한 동선을 줄이면서 알짜배기만 다니기로 했다.그래서 화엄사와 구례 맛집 2군데를 들리기로 했는데 화엄사는 동료가 추천한 건 아니고 지리산, 아니 전국 사찰을 통틀어 워낙 유명한 사찰이라 어찌보면 당연하게 방문해야 되는 것 아니것소잉.아침에 자고 일어나 넓게 트인 전망으로 난 커튼을 열어 젖히자 아쉽게도 대기가 뿌옇다.이미 뉴스에서 한 바탕 호들갑 떨었기 때문에 감안은 했지만 막상 미세 먼지로 뿌연 대기를 마주하자 아쉬움은 이만저만이..

지나는 가을에 남은 미련, 천은사_20191127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 남원에서 오를 때보다 더 가파른 도로를 굽이쳐 내려와 어느덧 경사길이 완만해 질 무렵 차량 지도에는 천은사가 표기되어 있고 그 옆은 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구례 여정에서 지낼 숙소는 미리 예약한 야생화 테마랜드 내 숲속수목가옥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목적지가 가까워진 만큼 시간 여유가 있어 861지방도 인척에 있는 천은사에 들르는 건 부담이 없었다.도로와 지척에 있는 주차장에 차량을 두고 얼마 걷지 않아 바로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초입부터 인상적인 풍경으로 인해 도보로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는 사찰까지 세세하게 주변을 둘러 보며 30분 정도 소요됐다. 주차장에 차를 두면 바로 천은사가 어느 방향인지 초입을 이내 짐작할 수 있다.입구 바로 옆은 절정의 단풍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