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남한강 물결처럼 단양에서 느리게 걷다_20191212

사려울 2020. 1. 29. 02:22

전날 퇴근과 함께 서두른다고 했음에도 밤늦게 소선암 휴양림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휴양관에 들어서자 미리 지펴 놓은 보일러 훈기가 긴장을 녹였고, 이튿날 오전 느지막이 숙소를 나서 미리 예정했던 단양 잔도 길에 다다랐다.

스카이워크를 먼저 둘러볼까 하다 기습적인 추위로 텅 비다시피 했던 잔도 길로 접어들었고, 역시나 잔도 길은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어 '느리게 걷기'라는 모토에 발맞춰 아주 천천히 걸으며 남한강 위를 공중 부양하는 기분을 느끼려 했다.

 

잔도 길에 도착하자 남한강가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가는 길이 보였고, 절벽 너머 산언저리엔 잔도 길과 경합을 벌이던 스카이워크가 한눈에 보였다.

잔도 길은 단양읍에서 그리 멀지 않아 걷다가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은 단양 주민들처럼 보였다.

전날 급격히 차가워진 공기를 피부로 느낀 건 예고편인 듯 하루 종일 서늘한 공기와 함께 바람은 대체적으로 강했다.

 

 

잔도 길을 따라 철교 아래에서 턴 한 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으며 천천히 걸었다.

단양 방면으로 걸을 때 마주쳤던 사람들을 다시 마주치며, 가벼운 눈인사가 오고 갔다.

드넓게 펼쳐진 남한강에 굴절되는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여 세상 모든 것들을 전부 태워버릴 기세였지만, 느리게 걷는 동안 줄곧 따라오던 햇살은 걷는 내내 겨울바람을 뚫고 따사로운 여유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느리게 걷는 덕분에 시간은 꽤나 흘러 정오를 훌쩍 넘겼다.

스카이워크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와 이번엔 스카이워크로 가기 위해 필수 관문과도 같은 셔틀버스를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평일임에도 스카이워크로 가는 여행객은 꽤 많아 셔틀버스는 자리가 거의 없었고, 스카이워크에 도착하여 댐에서 수문이 열리듯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지어 전망대로 향했다.

거의 뛰다시피 잰걸음으로 전망대에 도착하자 남아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빠르게 단양 시내 방면으로 돌출된 3개의 유리 데크를 차례로 오가며 만천하라는 이름답게 일대를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절경을 여러 각도로 관망했다.

 

유리 데크에 멈췄을 때 스릴감이 거의 없었던걸 보면 원래 가지고 있던 고소공포증은 사라진 것 같았지만, 그런 만큼 긴장감이 주는 쾌감은 없었고, 다만 함께 셔틀을 이용해 올라온 여행객들 중 몇몇은 유리 데크의 난간을 붙잡고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바로 발치에 먼저 들렀던 잔도 길이 듬성듬성 보였고, 육안으로도 지나가는 사람이 보일 만큼 그리 높은 고도는 아니었지만, 남한강 물길 따라 단양 시내를 비롯하여 동쪽 방면이 트여 있어 자연스레 천리안의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

 

유리 데크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첩첩한 산을 지나 하류를 향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볼 수 있고, 특히나 강렬했던 정오의 햇살이 강에 굴절되어 미세하게 찍혀 있던 강의 이랑으로 인해 강물을 잘게 부수었다.

미세 먼지가 옅게 들이닥친 대기가 아니었다면 그 반짝이던 강물이 얼마나 눈이 부시고, 아름다웠을까?

 

강렬한 햇살만큼이나 두 아이를 안고 유리 데크에 서 있는 애기 아빠의 노력이 눈부시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함께 셔틀버스를 이용했던 여행객들이 사라진 걸 뒤늦게 알아챈 뒤 주위를 둘러보자 원형의 타워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뒤따라 내려가며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고, 느리게 흐르는 남한강 물결이 마치 느리게 흐르는 시간인 양 짧지만 느긋한 단양의 향기를 시작으로 하루 동안의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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