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호 14

설경에 함락된 충주산성_20201218

눈이 소복이 덮인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 무심한 시간을 탓할 겨를 없이 허공을 채우고 있던 연무와 햇살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일상을 한발 벗어나고, 인파를 잠시 등지고 있던 찰나가 마치 정적에 휩싸인 허공처럼 한결 같이 머릿속을 맴돌던 잡념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뿌연 안개처럼 걷히며 무념의 가벼움에 도치되었다. 대부분의 산성들이 근래 들어 고증된 역사를 발판 삼아 복원되었지만, 그 땅에 서린 처절 했던 흔적과 달리 마냥 평화롭기만 했던 건 어쩌면 수 없이 흘린 피의 궁극적인 신념과 바램 아니었을까? 위태로운 비탈길을 따라 밟는 오르막길보다 더욱 긴장되는 내리막길은 양귀비의 마력에 혼이 나간 나머지 제 생명을 압박하는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반증하는 만큼 때론 중력이 잡아 끄는 방향을 모르는 게 약이라..

충주의 천리안, 남산 충주산성_20201218

올해 눈과 인연이 많다. 봄의 정점에서는 미리 잡은 여행에 맞춰 뜬금없는 폭설이 내리고, 이번 또한 다를 바 없이 추위를 안고 맹렬한 기세로 눈발이 날렸다. 디딛는 발끝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무심코 걷던 발걸음에 위태로움은 끊임없이 균형을 쥐락펴락하지만 몇 알 굵은 소금이 반찬의 풍미를 더욱 맛깔스럽게 미각을 현혹하듯 현재와 미래, 기억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끈끈하게 뒤섞일 수 있도록 잡념의 티끌마저 하얗게 채색시켰다. 충주 시민이라면 삼척동자도 안다는 산기슭을 오르며 가는 시간의 안타까움마저 잊어버렸던, 찰나 같지만 울림이 깊은 하루였다. 처음 찾아온 곳이라 정확한 진입로를 몰라 헤맬 수 있으므로 충주시무공 수훈자공적비 공영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뒤 진입로가 있는 방면으로 걸어갔고, 생각보다 얼마 ..

벚꽃 명소, 충주 호반_20190415

계명산은 고도상 아무래도 벚꽃이 조금 늦게 피는 걸 감안한다면 평지에선 이미 벚꽃이 질 시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목이라 충주댐 벚꽃 명소를 찾았고 생각보다 남아 있는 벚꽃이 많았다.이 명소를 찾는 관광객들은 충주가 벚꽃이 질 무렵이라 발길이 어느 정도 뜸해졌는데 도리어 많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보다 꽃잎이 조금 지더라도 한적한 게 쉬엄쉬엄 둘러 보기 편했다. 댐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차량을 세워 두고 조금 걸어서 길 끝까지 도착했고, 강변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벚꽃이 아직도 화사한 기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명산과 달리 벚꽃잎이 역시나 많이 떨어졌고, 여전히 진행형으로 한 차례 바람이 불면 눈발이 날리는 것처럼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꽃잎이 많긴 많은게 바닥 자..

봄 내음 물씬한 계명산 휴양림_20190414

4월 14일.마지막 애달픈 미련의 벚꽃이 남아 절정의 봄이 떠나는 귀띔에 따라서 떠날 채비를 했다.강원도, 경기도 지형을 복합적으로 품고 있는 충주, 그 중에서 급격한 산지가 시작되는 계명산에서 떠나려는 봄 마중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절정의 시간들을 보냈다.벚꽃이 일본 국화라고 할 지언정 숭고한 자연을 소유할 수 없는 억지는 동의할 수 없다.또한 자연을 소유하는 건 건방진 우매일 뿐.계명산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자리를 풀고 해가 진 뒤 길을 따라 산책을 다녔다. 호수와 마을이 어우러진 곳, 그 곳에 밤이 찾아 오자 야경 또한 함께 어우러진다. 충주 시내를 갔다 휴양림으로 찾아가는 길에 계명산 언덕을 오르면 어느 순간 호수와 산이 펼쳐진 전경이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떠돌다 한 자리에 앉아 한참을 야경과 ..

올해 마지막 여정, 이른 아침 계명산_20181231

해가 뜨며 호수가 잠에서 깨자 절경도 덩달아 눈을 부비며 일어 난다.충주가 절경인 이유는 산과 호수와 평야의 다양한 세트가 함께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또한 집에서 가장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오지의 형태를 상수도 보호 구역 특성상 충주는 잘도 보존하고 있다.물론 산 언저리 곳곳이 개발의 홍역에 몸살을 앓는 중이지만 조금만 굽이치면 산과 호수는 그저 담담히 지켜 보고 보듬어 주는 아량이 변함 없다.그런 연유로 여주-원주-충주, 경기-강원-충청이라는 세 경계를 밥 줍줍하듯 드나들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어제 못다한 산책을 나선다.충주호의 아침은 화창한 겨울이긴 해도 대기가 미세먼지로 약간 뿌옇다. 자연의 생존은 참 다양하다.햇살이 미치지 않는 바위 틈에 서릿발이 가지치기에 열중이다. 문명이 잠든..

올해 마지막 여정, 계명산_20181230

2018년의 햇불도 거의 꺼져 가는 연말 즈음 치열 했던 한 해의 조용한 마무리를 위해 도시를 떠나 인적이 뜸한 충주 계명산으로 떠났다.먼 발치에 문명의 불빛은 밤새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이미 소음은 거대한 호수와 빼곡한 숲에 상쇄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적막이 깔린 공간의 산과 호수가 만나는 세상에 불청객인 양 끼어 들어 고요한 그들의 대화를 엿 들어 본다.간헐적으로 지나가는 바람과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한 새소리가 꾸밈 없이 생생하게 들리는 이 진솔함을 얼마 만에 들어 봤던가? 늦게 출발한 궤적으로 계명산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산이 늘어뜨린 그림자가 꽤나 많은 세상을 삼킨 뒤였다. 머뭇거리는 사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일몰이 가속도가 붙어 간단한 차림으로 통나무집을 나..

봄의 절정에서 호수를 품다, 두나_20170410

숙소로 잡아 놓은 휴양림 통나무집으로 돌아와 오마니께서 손주를 데리고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난 10년 만에 찾은 계명산 휴양림 숲길을 걸으며 해가 지기 전 잽싸게 사진 몇 컷을 찍기로 했다.할머니께 터지기 시작한 말 문에 굳이 찬물 끼얹을 필요도 없고 가끔 가는 여행에 대한 피로도가 일찍 쌓여서 두 분을 두고 혼자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가을 하늘 만큼 높고 청명하던 충주의 하늘은 마치 호수를 마주 보고 펼쳐 놓은 바다인 양 깊고 드넓었다.안타까움이라면 해가 지기 전까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서둘러 계명산 숲길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떨어진 콩고물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 거리며 비탈진 산으로 향했다.계명산 휴양림 숲길은 10여년 만에 왔건만 통나무집은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산책로는 완전 달라졌다.(..

봄의 절정에서 호수를 품다, 하나_20170410

입대를 앞둔 조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2년 동안 세속을 떠나 있는데 아이폰이나 플스를 가져봐야 개밥에 도토리고 그렇다고 생까기엔 삼촌으로써의 밑천이 다 드러나 가슴에 양아치 추억만 남길 거 같았다.근데 유형의 상품만이 선물은 아니잖나?특별한 선물이라면 추억도 괜춘한 방법인데다 가끔 내가 가는 여행에 이 녀석도 싫은 내색 없이 따라 나서는 경우도 있고 가고는 싶으나 또래가 없어 혼자 뻘쭘함을 감당하기 거시기해서 망설이다 포기했던 경우도 있었다.그래!때마침 철 좋은 봄날 세상 구경 같이 하자 싶어 오마니 뫼시고 바다처럼 탁 트인 느낌과 강원도 산간 오지 느낌도 낭창하게 누릴 수 있는, 충주호가 발치에 내려다 보이면서 가파른 첩첩 산들이 모여 있는 충주 계명산 휴양림으로 결정했어. 출발 ..

계명산 만추_20071117

동면에 들어간 나무처럼 하드디스크 안에서 오랫 동안 잠자고 있던 사진들 중에서 8년전 요맘 때 충주 계명산에서 찍은 만추의 전경이 있었다는 사실**+ 멋진 가을이 계명산에 놀러 온다는 걸 알고 통나무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지형의 등고차가 심해 충주호를 바로 발치에 두고 있는 휴양림이기에 호수와 그 너머 크고 작은 무수히 많은 산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라 늘 여긴 예약이 쉽지 않다.2007년 11월 17일이면 토요일인데 아마도 16일 금요일에 통나무 집에서 하루 기거하고 다음 날 계명산 산책로를 따라 눈으로 그 빼어난 자태를 기억으로 쌓아 두었을 거다. 통나무 집 안에서 창 너머 바라 본 충주호는 바로 발치에서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어 자칫 폭탄주 쳐묵하고 까불면 바로 굴러서 충주호수를 만질 수 있을..

추억의 사색 2015.11.18

가을이 오는 청풍호_20150913

여행의 끝은 늘 아쉬워 다음을 기약하며 일상에 심취할 수 있어, 그래서 여행은 흥겨운 기다림이다. 영월 시내를 돌아 보고, 상동과 모운동까지 아우를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의 백미는 아마도 상동이 아닐까?등에 맨 가방이 무거우면 어깨가 힘든데 반해 가슴에 만족이 가득하면 도리어 걸음은 가벼워지더라. 영월 모운동과 상동을 다녀온 저녁, 여전히 암흑으로 세상이 바껴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큰 무리 빛은 국민연금공단 인재원이고 우측에 비봉사는 여전히 미세한 빛을 방출하며 존재감을 알려 준다.하단 불을 밝혀 놓은 청풍리조트의 청풍호와 접한 공원은 사진을 찍곤 바로 불이 꺼져 버렸다. 높디 높은 가을 아래 펼쳐진 청풍호의 전경.아주 속이 다 스원하구먼. 청풍랜드에 번지점프를 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고함소리가 숙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