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봄의 절정에서 호수를 품다, 두나_20170410

사려울 2017. 7. 14. 10:49

숙소로 잡아 놓은 휴양림 통나무집으로 돌아와 오마니께서 손주를 데리고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난 10년 만에 찾은 계명산 휴양림 숲길을 걸으며 해가 지기 전 잽싸게 사진 몇 컷을 찍기로 했다.

할머니께 터지기 시작한 말 문에 굳이 찬물 끼얹을 필요도 없고 가끔 가는 여행에 대한 피로도가 일찍 쌓여서 두 분을 두고 혼자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 하늘 만큼 높고 청명하던 충주의 하늘은 마치 호수를 마주 보고 펼쳐 놓은 바다인 양 깊고 드넓었다.

안타까움이라면 해가 지기 전까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

서둘러 계명산 숲길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떨어진 콩고물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 거리며 비탈진 산으로 향했다.

계명산 휴양림 숲길은 10여년 만에 왔건만 통나무집은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산책로는 완전 달라졌다.

(계명산 만추_20071117)



통나무집에서 나와 계명산 산책로를 따라 가며 우선 벚꽃 가지들 사이로 펼쳐진 충주호를 아이폰으로 담았다.

산 사이를 요리저리 비집고 자리 잡은 충주호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한강 상수원이기도 해서 의미는 남다르다.



오르막길로 난 숲길을 따라 더 위로 올라가자 호수를 여과 없이 보여 주기 시작한다.

감도는 낮추고 셔터는 잽싸게 열었다 닫으면 어둡긴 해도 호수의 심연을 부각시켜 표현하는데 그 색깔을 시기하는 하늘은 충분히 그 깊이를 알고 있는 듯 덩달아 더 깊은 하늘로 옷을 갈아 입었다.

하늘에 구름조차 거의 없는 워낙 맑은 날, 드넓은 하늘에 거대한 새털구름이 펼쳐진 모습은 마치 공작새가 거대한 하늘을 혼자 활보하는 모양새다.



있는 힘껏 날개와 꼬리를 펼쳐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공작새는 단 한 번의 날개짓에도 세상 끝에 닿을 기세다.

이래서 광각렌즈가 필요한 벱인데 아이폰 파노라마로 담기엔 색감이 왜곡될 거 같아 걍 좁아도 18렌즈로 찍었지.



숲길로 가는 이 길은 가끔 호수와 어우러진 산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눈에 띄인다.

아무려면 이런 절경에 대한 사람이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낮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조바심에 급히 산언저리 높은 곳으로 올랐지만 높이 자란 나무로 인해 사진 찍기는 쉽지 않았다.

계명산이 비교적 가파른 덕에 이내 턱 밑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트위스트를 추듯 후들거리지만 잠시 참아내기로 하고 틈틈히 사진을 찍어 가며 오르는데 어느 순간 위로 뻗던 산책로가 고도를 낮추며 옆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계속 오를 수도 있었지만 이미 서산을 등지고 있는 휴양림은 보기와 다르게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어둑해지려 하고 산책하듯 간헐적으로 눈에 띄던 사람들의 자취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되자 공포 영화에서 보던 분위기에 덜컥 겁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산책로를 이탈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다니기로 하고 야자매트의 폭신한 길을 밟았다.



가파른 산언저리 먼 곳에 맨눈으로 봐도 진달래 빛깔이 유혹해서 망원을 잔뜩 당겼다.

바위 절벽 아래 진달래와 개나리가 사이 좋게 둥지를 튼 채 자라고 있구먼.



좀 전 충주호반에 자그마한 마을도 아주 작게 움츠러 들어 망원으로 살펴 봤다.

곳곳에 봄꽃들이 어울려 평화롭고 단아한 마을로 만들어 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이런 전망 데크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전망 데크 중 여기가 가장 높은 곳으로 완만하지 않은 경사라 짧지만 제법 숨은 들어 찬다.

평소 반석산만 오르다 몇 곱절 더 가파른 산길을 올랐더니 다리는 후들, 몸은 후끈, 숨은 턱까지 공략한다.

그래도 여행 중에 만난 이 풍경들이 월매나 반가운겨!

근데 이 전망 데크는 가장 높은 곳에 있긴 해도 앞에 길고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빼곡해서 제대로 된 전망을 읽기가 쉽지 않아 가던 길로 계속 가기로 했다.

그 방향이 산의 더 깊은 품으로 향하고 있긴 해도 어느 정도 가공된 길이라 그런지 아직은 입에 개거품이 올라 올 상황은 아니었다.

감도를 높여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이미 날은 어둑해지고 있었고 갈수록 낮의 빛은 어디론가 도망가기 바빴다.



광각렌즈로 갈아 끼기 귀찮아서 걍 아이폰으로~

무쟈게 많이 올라온 거 같은데 마을은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평소 산책로를 밟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반증인 듯 야자 매트 곳곳에 이런 봄의 새싹들이 뚫고 나온다.



산책로를 따라 산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 와서 고독에 휩싸여 있던 정자에 숨을 돌릴 겸 앉아 음악을 틀었다.

어차피 휴양림 통나무집 부근에서만 산책 중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산책로를 따라 조금 올라오는 그 순간부터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만큼 가져간 메가붐 스피커를 더블업으로 활용, 평소보다 소리를 높게 올려 적막한 공간에 음악으로 채워 버렸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천장으로 고개를 돌리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자임을 귀띔해 주듯 아직은 깨끗한 속 나무의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망 데크와 야자 매트, 정자의 나무들을 보면 조성된지 오래지 않았다는 건데 소재는 친환경적 일지라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급격히 어둑해진 대기를 퍼뜩 깨우치고 내려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고 그 길 곳곳에도 봄을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다.



산 능선 먼곳에 뭔가 하나가 포효하는 것만 같아 망원으로 잡아 당겨 보니까 바위가 튀어 나왔구만.

혼자 쫄았네.



내가 걸어왔던 산책로의 골짜기 가장 깊은 곳에 가까워 졌다.

고도는 낮아졌지만 이왕 내려가는 거 안쪽으로 굽이쳐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는데 깊은 산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나무향과 어우러진 습기 내음을 느낄 수 있다.



돌 틈에서 자라는 풀인데 시선을 사로 잡을 만큼 아름답게 보인다.



처음에 산으로 올라 올 때 봤던 공작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겹겹이 쌓인 새털구름의 잔해만 남았다.



드뎌 골짜기 가장 안쪽으로 들어 왔구만.

여긴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출입을 통제하고자 철조망이 쳐져 있어 더 이상 안으로 갈 수 없는데다 이젠 달빛이 선명하게 보일만큼 어둑해졌다.



요따구로 달이 선명하게 보일만큼 날은 어두워지고 통나무집 가까이 서성이던 사람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지저귐이 들려 시선을 따라가 봤더니 그 주인공이 가는 길 정면의 먼 발치에 앉아 맑은 노래를 연주한다.

저 작은 울림통에서 어찌 저렇게 선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까?



통나무집이 모여 있는 인근까지 다다랐다.

어디론가 사람들이 사라진 이 공간이 거짓말처럼 적막에 지배당하자 나 또한 가족의 품이 그리워져 통나무집에서 출발할 때처럼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멀리 보이는 이 통나무집엔 아마도 가족들이 따스한 저녁을 차려 놓고 달콤한 이야기에 취해 있겠지?

세상의 모든 아늑함을 압축시켜 놓은 이 느낌이 좋아 난 더 이상의 다른 의지들을 접어 두고 가족의 품으로 금새 돌아왔다.



산으로 가던 길이 짧지 않았건만 해가 서산으로 넘어감과 동시에 저녁은 내 등을 떠밀어 짧지 않았던 산책을 단숨에 사진으로 채워 주곤 보금자리로 안내까지 해 주는, 이 친절한 자연과 봄날의 시간이 한 없이 친근해져 버렸다.




짧지 않은 저녁을 끝내고 뽕양해진 배를 두드리며 밖으로 잠시 나와 장노출로 평화로운 마을 사진을 담았다.

오순도순 모여 있는 마을 인가들처럼 이곳은 아무런 사연이나 근심 없이 늘 한결 같은 봄 풍경이 연출되고 시시때때로 지나는 이들의 발목을 잠시 붙잡아 쌓인 여독을 토닥여 풀어줄 것만 같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정취가 흐른다.



어느 날보다도 맛나고 풍성한 저녁을 해치우고 강변으로 트인 큰 창을 활짝 열어 제친 후 봄기운이 방 안 곳곳에 들어 찼을 때 알콩달콩 살아왔던, 살아갈 이야기를 3대가 나누며 추억에 웃기도 하고 아쉬움에 미간도 살짝 찌뿌리다가 이내 훌훌 털어 내듯 끊임 없이 오고 가는 봄바람에 근심의 앙금을 맡겼다.

늘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가족으로써의 행복에 감사하며 앞으로 함께 위로하고 웃음을 나눌 수 있기를, 그 행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과 존재에 감사하는 사이 깊은 밤이 다가와 그 미소 띈 얼굴로 잠을 청했다.

울 조카님아, 국방 의무를 무사히 끝내고 건강히 돌아 오길.

그 시간이 지루 할지라도 지나고 나면 결코 헛되지 않을 거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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