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 32

힘찬 개울소리가 휘감는 학가산 휴양림_20190924

역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늦잠을 잤다.밤에 도착한 학가산 휴양림은 조성된 지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여 숲속의 집에 들어서자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구조 또한 가파른 계단이 연결된 복층이 딸려 있었다.허나 오래된 만큼 위치 선정이 탁월하여 통나무집 바로 옆이 견고한 제방으로 다져진 개울이라 여름 피서로 오게 된다면 바로 옆 개울로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다듬어져 있었고, 비교적 가파른 길을 통해 듬성듬성 배치된 통나무집이 꽤 많았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개울로 트여 있는 발코니 창을 열자 바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힘차게 흐르는 개울과 그 너머 쨍한 가을 햇살이 바로 비췄다. 텅빈 숲을 오롯이 채우는 물소리가 아름다운 선율의 뉴에이지 음악처럼 밤새 들리며 회색 도시에서 찌든 소음을..

회복과 함께 봉화를 가다_20190815

깁스를 풀고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한 컨디션으로 회복된 지 한 주가 지나 틈틈히 운전대를 잡으며 연습을 해 본 뒤 봉화로 첫 여행을 떠났다.물론 혼자는 아닌데다 아직 자유롭게 활동하기 힘들어 무리한 계획은 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늘 오던 숙소에 머물며 다슬기 잡기나 이른 가을 장맛비 소리 듣기에 유유자적 했다. 봉화에 간지 이틀째, 관창폭포를 지나 의외로 큰 마을과 생태 공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찾아 나섰다.산골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음에도 간헐적으로 인가는 쉴새 없이 늘어서 있고, 더 깊이 들어서자 산골이라고 믿기 힘든 너른 밭이 보인다.각종 약재나 고랭지 야채, 과일을 볼 수 있는데 다행인건 내리던 빗방울이 가늘어져 우산 없이도 다니는데 무리가 없어 이왕이면 카메라까지 챙겨 들었다.너른 밭..

유유자적한 시간_20190713

그리 이른 아침에 일어난 건 아니지만 새벽 공기 내음이 남아 있어 물가에 다슬기를 잡으며 잠시 음악과 함께 앉아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의자를 하나 두고 앉아 있자니 금새 다리가 시려 오지만, 버텨 내면 어느 정도 참을만 하다.다슬기를 잡을 요량으로 여울에 발을 담근 건데 햇살이 강한 편이라 래쉬가드를 입고 자리를 잡았다. 보란 듯이 발치에 앉아 화려한 자태를 펼쳐 보여주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주변에 날아다니며 시선을 끈다.가까이 다가가면 살짝 날아 올랐다 다시 주위를 맴도는 걸 보면 두려움이 별로 없나 보다. 다른 가족의 집에서 키우던 분재가 시들하여 여기 가져다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애매해서 행여나 하는 미련에 땅을 파서 심어 보았다.다시 생명을 틔우면 좋으련만. 언제부턴가 말벌의 출현이 잦아 주..

송이능이 식당 솔봉이_20190516

봉화에 오면 능이나 송이 요리의 전골, 백반을 자주 먹었는데 영주 도심에 있는 동궁을 찾다 빈정이 상해서 다른 집을 물색하던 중 봉화 내성천변에 있는 솔봉이를 방문 했다.동궁과 지극히 주관적인 비교를 하자면 여긴 풍성함에 비해 퀄리티는 아주 높지 않지만 평타 이상은 한다.동궁은 가짓수가 여기 보다 조금 적지만 맛은 조금 더 세련된 수준이랄까?허나 볼륨과 나물 무침은 여기가 좀 더 낫다. 경상도 음식 치고 꽤나 가짓수가 많은데 특히나 녹색 나물 무침들은 감칠 맛 난다.동궁을 가다 결정적으로 발길을 돌린 건 첫 방문 때만 음식을 제대로 음미했고 그 이후 어눌한 한국말 쓰시는 분의 빈정 상하는 상스러움에 단 돈 10원도 아깝다는 주관에 발길을 끊었다.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갈 사람들은 얼마 든지 가니까 그런 마..

범바위를 굽이 치는 낙동강_20190516

관창폭포에 이어 찾아간 범바위 전망대 또한 사람들 사이에 그리 알려진 공간이 아니다.명호면을 지나 시골 치고는 잘 다듬어진 도로를 따라 가다 춘양 방면으로 빠지자 얼마 가지 않아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나오고 이내 한 눈에 봐도 여기가 전망대 구나 싶은 곳이 바로 범바위 전망대다.감히 낙동강 최고의 전망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단언해도 좋을 만큼 절경이라 하겠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이는 절경.절벽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범상치 않은 절경을 보상한다. 조금은 우습게 생긴 외모의 범이지만 이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절경은 절대 예삿내기가 아니다.억겁 동안 계곡을 깎고 깎아 번뜩이는 뱀처럼 휘감는 강의 기세는 첫 눈에 감탄사를 연발시키지 않고는 못 버티게 만든다.이 작은 겨레의 땅에 깨알처럼 숨겨..

금단의 영역, 관창폭포_20190516

정글처럼 깊고 눅눅한 습기 내음까마득한 산 속처럼 칼로 도려낸 듯한 수직의 바위만년설로 뒤덮혀 메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물길더불어 언뜻 보게 되면 소리만 공명시킬 뿐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런 폭포가 있다.조물주가 거대한 바위를 이 자리에 두고 예리한 칼로 수직의 평면을 완성시켰고, 자연은 그 견고한 그릇에 물줄기를 그어 영속적인 징표를 약속 했다.변함 없는 관심을 두겠노라고, 그래서 늘 생명이 외면하지 않게 하겠노라고.깊디 깊은 비밀의 방에 그들만의 세상인 양 날벌레와 꽃 내음이 진동을 한다. 관창폭포를 찾은 건 온전히 지도의 힘이다.종종 가는 봉화 인근에 뭐가 있을까?산과 계곡이 깊다는 특징 외에 디테일과 지식이 없어 자근히 찾던 중 눈에 띄는 몇 군데를 발견하고 후기를 찾아 보는데 정보가 ..

청정의 봄을 찾아_20190516

많은 봄의 물결이 출렁이던 하루, 산 속에 숨어 수줍은 듯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화려한 빛과 향긋한 내음을 서로 나누는 봄을 마주한다.오감을 매혹적으로 반긴 장본인들은 문명의 세계와 조금 거리를 두고 관심과 상관 없이 숙명적으로 계절을 보낸다.이름도 모를 수 많은 봄들은 오로지 다른 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며 그렇다고 이기심은 전혀 없이 공존공생한다. 봄꽃 치고 매혹적이지 않은 게 무어냐 마는 녹색 바다 위에 유독 이 녀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품을 뿜어 보호막으로 삼는 벌레는 평창 두타산에서 이 녀석을 처음 알게 되었다.(용평 산중에서 정선까지_20150530) 좁쌀 만한 하얀 작은 꽃들이 모여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요 녀석은 산미나리라 불리며 미나리 대용으..

금강을 마주하는 향로산_20190430

작다고 무시했다가 큰 코 다치는 사람 수도 없이 많이 봤다.뭔 썰인고 허니 애시당초 무주 향로산 휴양림에 숙소를 잡으면서 그저 휴식만 취하는 이색적인 그렇고 그런 마실 뒷녘 정도로만 봤다가 도착하자 마자 모두들 연신 탄성을 질렀다.이 정도 삐까한 시설에 비해 옆차기 할 정도의 저렴함, 가뜩이나 겁나 부는 바람에 밤새 오즈의 마법사에서 처럼 공중부양 중인 통나무집이 헤까닥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불안함을 금새 잠재우는 묘한 매력.미리 계획했던 적상산을 다녀온 뒤 찔끔 남은 여유 덕에 향로산에 올랐다 초면에 무시했던 생각에 송구스럽기까지 했다.낮지만 지형적으로 큰 산들이 가진 특징을 아우른 멋진 산이란 걸 알았다면 진작 왔을 터인데.게다가 무주는 생각보다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가족 일원이 임시 둥지를 만들어..

대가야 품으로_20190303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 오마니 고향을 찾아 보기 위함이었고, 더불어 오랫 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먼 친지의 소식이 전해져 반가움을 실현해 드리고자 했다.너무 느긋하게 밟았나?5시간 걸려 고령에 도착, 저녁 식사를 해결할 마땅한 식당을 찾느라 30분 동안 헤메는 사이 8시를 훌쩍 넘겨 버렸고 하는 수 없이 치킨 한 마리와 햇반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오마니도 기운 없으신지 대충 해결하자고 하시는데 그래도 배는 불러야지.지도 검색에 치킨집은 많지만 막상 댓글 평이 좋은데가 많지 않아 여기로 선택했는데 불친절에 착한 가격은 아니다.맛이 있다면야 가격이 문제겠냐마는 자극적인 소스에 절여 놓는 수준이라 치킨 특유의 식감과 맛은 찾기 힘들다.배 고픈데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응대..

일상_20190213

시간은 골짜기의 세찬 강물처럼 부지불식간에 세상의 등을 떠밀어 벌써 19년의 한 달과 보름 정도를 집어 삼켜 버렸다.다만 소리가 전혀 없다.그 기운찬 시간의 물결을 보다 보면 산을 깎고 바위를 도려 내듯 얼굴에 자글한 주름을 패고, 머릿칼에 검은 색소를 시나브로 현혹시킨다.약속처럼 언젠가 기다림에 익숙해 지리라 단언했건만 자취 없이 할퀴는 촉수의 야속함에 익숙해졌던 초연마저 상실되는 시간의 흐름.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아직은 많아 번번히 서운함을 잊게 된다. 석양 빛이 아파트 건물에 부딪혀 눈부시다. 이번 겨울은 혹한이 거의 없었지만 반석산에서 흐르는 여울은 여전히 얼어 있는 걸 보면 아직은 겨울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