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27

애환의 경계, 솔고개_20210910

오랜 역사를 관통하며 희열과 고통의 일기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을 솔고개. 멋진 소나무의 형상은 인고의 세월과 나그네의 슬픔에 한숨 쉴 그늘을 만들어준 통찰 덕분일 게다. 세상만사 고통과 통증 없는 생명이 어디 있겠냐마는 한가득 펼친 가슴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보듬어준 것들이 가지의 굴곡으로 승화시킨 덕분에 충분히 우러러볼 기개를 가진 신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더보기 사라진 광산마을, 상동_20150912 동화처럼 단아했던 모운동을 뒤로 한 채 더 깊은 산중으로 뻗어난 한길의 끝엔 또 다른 한 때의 부귀를 누리던 탄광마을이며 오늘의 최종 목적지였던 상동이 있었다. 한때 세계 텅스텐의 10%가 meta-roid.tistory.com 다시 넘는 솔고개_20161015 잊혀지는 세월의 슬픔에 어쩌면..

곧은 기개, 정이품송_20210121

가는 날이 장날이 바로 이런 말이렷다. 때마침 보은장이라 복잡한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 겨우 차를 세워 놓고 시장통을 방황했다. 분주한 한길과 달리 시장길은 생각보다 썰렁한데 그나마 큰 통로는 행인이 보이지만 살짝 뒷길로 접어들면 장날을 무색케 한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신기하고 정감 가득한 곳이다. 재래시장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바로 순대와 먹거리다. 메인 통로인데 진입로가 북적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적하다. 이름 멋지다. 결초보은이라~ 낮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이품송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서둘러 법주사 방향으로 출발했다. 역시나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아 짧은 구간에서 한참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겨우 빠져나와 곧장 법주사로 향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서서히 굵어져 법주사..

떠나는 길의 쉼표, 상동과 솔고개_20201007

하늘숲길에서 빠져 나와 만항재를 넘어 숲길을 지나 상동으로 진입하기 전, 첫 인가가 시작되는 시점에 잠시 멈춰 산자락이 복잡하게 엮인 상동을 향해 바라봤다. 조금 뜬금 없는 건 인가와 뚝 떨어진 자리에 쉼터가 있어 각종 운동기구들은 덩그러니 외면 받을만 했다. 하늘숲길 아래 고도가 조금 낮아진 곳이라 가을색이 확연히 옅긴 해도 짙은 녹음은 그 절정의 빛을 잃고 이 땅을 서둘러 떠나기 시작했다. 영월군 상동읍(上東邑)은 태백산맥의 중부 산간에 위치한 영월군의 읍이다. 면적은 139.5 km2이고, 인구는 2017년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1,157 명이다. 광산 취락으로 성장해 한때 인구가 4만 명을 넘었으나, 광산 채굴이 중단되면서 인구가 급속히 감소해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이다. [출처..

유유자적한 시간_20190713

그리 이른 아침에 일어난 건 아니지만 새벽 공기 내음이 남아 있어 물가에 다슬기를 잡으며 잠시 음악과 함께 앉아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의자를 하나 두고 앉아 있자니 금새 다리가 시려 오지만, 버텨 내면 어느 정도 참을만 하다.다슬기를 잡을 요량으로 여울에 발을 담근 건데 햇살이 강한 편이라 래쉬가드를 입고 자리를 잡았다. 보란 듯이 발치에 앉아 화려한 자태를 펼쳐 보여주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주변에 날아다니며 시선을 끈다.가까이 다가가면 살짝 날아 올랐다 다시 주위를 맴도는 걸 보면 두려움이 별로 없나 보다. 다른 가족의 집에서 키우던 분재가 시들하여 여기 가져다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애매해서 행여나 하는 미련에 땅을 파서 심어 보았다.다시 생명을 틔우면 좋으련만. 언제부턴가 말벌의 출현이 잦아 주..

숨겨진 아름다움, 영월 상동 가는 길_20190422

만경사를 거쳐 상동으로 가던 중 통과 의례로 거치게 되는 솔고개는 나도 모르게 주차를 하고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겨 천천히 오르게 된다.하루 종일 따가울 만큼 강렬한 햇살이 내리 쬐이며 그에 더해 힘겹게 오르던 솔고개를 넘어 서자 하나의 성취감과 더불어 단조롭던 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특이한 풍채에 반해서 마법의 덫에 걸린 양 끌려 가는게 아닐까? 솔고개의 주인공 소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면밀하게 살펴보면 세월의 굴곡이 무척이나 많이 패여 있다.한 해가 지나도록 뭐가 그리 달라 졌겠냐마는 자주 올 수 없는 길이라 변화를 찾는게 아닌 존재 과시에 안도한다. 솔고개 너머 단풍산은 여전히 아래를 굽이 살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산신령처럼 이 지역을 다스린다.늘 무고하게, 그리고 앞으로도 둥지처럼 평온하게 지키는 파..

모든게 쉬어가는 겨울_20181209

늦은 밤에 봉화에 도착하여 간단한 다과를 즐긴 후 여독을 참지 못하고 졸거나 누운 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의식이 남아 있는 가족들과 맥주 한 사발 뽀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그러던 중 문득 청명한 밤하늘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가 고개 들어 가만히 쳐다 보자 총총히 빛나는 별이 당장 눈에 들어왔다. 별빛들이 모여 강을 이루는 은하수를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오리온자리를 비롯하여 여러 별자리에 심취 했었던 요람기까지 기억에 선하다.대충 찍어도 이렇게 선명하게 나온건 사실 오지마을의 추위로 카메라가 오작동 하면서 이거라도 건지자는 심정이 별빛 만큼 선명하다.서울에서는 희미하지만 언제나 밤하늘을 비추는 별.별 하나의 추억과별 하나의 사랑과별 하나의 쓸쓸함총총하게 별이 박힌 겨울 밤하늘은 그저 아..

산중의 새벽_20180908

해가 뜨기 직전의 가을 하늘은 차갑다.유난히 말벌이 눈에 많이 띄는데 밤새 10마리 정도 잡은 거 같다.이른 새벽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슬에 젖어 힘을 쓰지 못하고 기절한 말벌들 확인 사살 때문.그러다 시골 깡촌의 새벽 정취에 도치되어 버렸다. 동녘 하늘에는 아직 일출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하늘에 거대한 비늘이 끼어 어디론가 바삐 흘러가고 있다. 감각대를 끼우고 발치에 흐르는 여울에 장노출 했다. 풀잎과 밤새 밖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스피커에 이슬이 아롱다롱 매달려 조잘거린다. 집에서 2년 동안 자라다 올 여름부터 새로이 자리를 튼 흙이 궁합에 맞는지 소나무는 부쩍 자랐다.섭씨 11도로 9월 초 치곤 제법 서늘한 산중 오지에 어떤 문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밤..

베란다 정원과 지상의 가을_20171115

울오마니께서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한 번도 소홀함 없이 가꾸시던 베란다 정원을 모처럼 훑어 보자 어린 생명들이 시나브로 성장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단풍 싹은 이파리 하나 달랑 열렸지만 가을이랍시고 붉게 물들어 소담스런 분위기를 만들었다.모든 생명들은 유년시절에 한결 같이 귀엽다고 했던가? 단풍보다 2년 형인 소나무는 더디게 크는 것 같지만 매년마다 성장을 실감할 정도로 곁가지와 이파리가 부쩍 늘어났다.단순히 눈에 보이는 양분과 햇볕만을 먹고 사는게 아니라 애정도 먹어서 그런지 집 안에서 자라기 힘든 이 야생에 길들여진 녀석도 지칠 기색 없이 야금야금 성장해 간다. 길가에 강인한 생명력으로 관심을 끌어달라는 듯 단풍은 절정의 붉은 옷을 입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서서히 이파리는 오그라 들고 있어 겨울..

화사하고 역동적인 변화, 상동_20170916

흔적과 더불어 기억 또한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상동을 찾고 뒤이어 밤이 되면 제천을 잠시 찾기로 했다. 상동에 오면 시간도 고갯마루를 넘기 힘들어 잠시 머무르는지 과거의 흔적을 한 걸음 늦게 지우고, 지워지기 전 남아 있는 그 흔적들에 대한 호기심과 흩어지려는 기억을 다시 추스리기 위함이었다. 시기적으로 완연한 가을이 내려 앉기 전이라 여전히 여름 색채가 강했지만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는 여름조차 막을 수 없는 순응이었는지 미세한 가을 파동은 조금만 주시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라진 광산마을, 상동_20150912 동화처럼 단아했던 모운동을 뒤로 한 채 더 깊은 산중으로 뻗어난 한길의 끝엔 또 다른 한 때의 부귀를 누리던 탄광마을이며 오늘의 최종 목적지였던 상동이 있었다. 한때 세계 텅..

솔고개를 지나다_20170916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래서 무심코 넘겨 버릴 수 있는 여행의 길목에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자연은 식상해 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동네 인도 주변에 아무렇게나 태동하는 자연의 터전조차 계절까지 넓게 잡지 않고 하루를 비교해 보더라도 신선한 일상의 한 단면 같아 소소한 변화에도 급한대로 폰카를 이용해 담아 둔다.2년 전 방문했던 상동은 길목 켠켠이 쌓여 있던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차에서 내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내 기억의 의심이 기우인 양 정겨움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며 마치 옆 동네를 방문하는 듯 친근한 착각에도 빠졌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자연에선 아직 가을을 느낄 수 없고,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자리를 잡은 여름이 좀처럼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상동으로 가는 길목에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