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모든게 쉬어가는 겨울_20181209

사려울 2019. 7. 28. 17:29

늦은 밤에 봉화에 도착하여 간단한 다과를 즐긴 후 여독을 참지 못하고 졸거나 누운 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의식이 남아 있는 가족들과 맥주 한 사발 뽀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중 문득 청명한 밤하늘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가 고개 들어 가만히 쳐다 보자 총총히 빛나는 별이 당장 눈에 들어왔다.




별빛들이 모여 강을 이루는 은하수를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

오리온자리를 비롯하여 여러 별자리에 심취 했었던 요람기까지 기억에 선하다.

대충 찍어도 이렇게 선명하게 나온건 사실 오지마을의 추위로 카메라가 오작동 하면서 이거라도 건지자는 심정이 별빛 만큼 선명하다.

서울에서는 희미하지만 언제나 밤하늘을 비추는 별.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

총총하게 별이 박힌 겨울 밤하늘은 그저 아름답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하게 쫓아다니는 다른 가족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늦잠을 잤다.

이런 오지에선 일찍 일어나도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건 없고, 게다가 이른 아침에 살을 파고 드는 추위는 더더욱 몸을 움츠리게 만듦에도 뭐가 그리 할 게 많은지 부산스럽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개울로 내려간건 이런 추위에도-이 겨울의 첫 한파라 당시 봉화 기온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졌다.-밤새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신기했다.

아무리 흐르는 물이라지만 고드름처럼 물살을 느리게 하는 매개체부터 얼어 대부분 그 위를 덮지 않나?



울창하던 나무 터널이 앙상해 졌다.



가지에 송이송이 알갱이가 맺힌다.




길 한 가운데 꼿꼿이 몸을 들고 있는 들국화 한 그루가 건재하다.

얼음조차 용납하지 않을 매서운 겨울이지만, 강인한 아름다움은 우리네 어머니 같다.



3년 전 솔방울 하나에서 나왔던 씨앗이 우리 베란다 화분에서, 오지 마을에 다시 둥지를 틀고 냉혹한 환경에도 잘 적응해 자생하고 있다.

겨울은 빼앗는 계절이 아니라 지켜주고 잠시 쉬게하는 계절이다.

들판이 그렇고, 여울이 그렇다.

모든 생명이 죽은 게 아니었고, 무조건 짓밟힌 게 아니었다.

한파가 찾아온 겨울 밤이었는데 다음 날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들국화는 내 눈에 얼마나 화려하게 들어 찼을까

여울의 흐름에 몸을 맡긴 물방울들이 결국 영롱한 결정체를 만들어 빛 마저 동그랗게 굴절시키는 오지의 계절은 허투루하게 여겼던 것들과 찰진 행복을 누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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