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67

냥이_20241003

가족들을 초대하기 위해 전날 집에 도착한 뒤 아침에 일어나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 쇼파에 앉아 있노라니 녀석이 티비 앞에 냉큼 자리를 잡았다.연신 눈을 맞히는 녀석.내가 없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방에 들어가 냥냥거렸다던데 모처럼 집사를 보자 계속 따라붙었다.그래도 사진 찍으려면 절묘한 타이밍으로 고개를 휙휙 돌려버리는 녀석.한 번 놀아주고 쇼파에 쉬고 있는 녀석을 캐리어에 집어 넣어야 되는데 얼마나 진땀을 뺄 지 안봐도 뻔했다.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녀석을 겨우 캐리어에 넣고 진천으로 궈궈!진천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타고 안성을 지나면서 빗방울은 굵어졌는데 창문을 열어놔서 비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걱정도 잠시, 여기까지 온 김에 진천에서 유명한 막국수는 먹어야지.어차피 비가 들어왔으면 닦아내면 그..

일상_20240922

한 주가 지나지 않았는데 한가위 연휴에 그리도 사람을 괴롭히던 폭염은 순식간에 물러나고 그토록 바라던 전형적인 가을이 다가왔다.전날 이케아에 갔다 기운이 쏙 뽑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뒤늦게 산책을 나서 맨발 걷기의 메카가 된 반석산으로 향했고, 겁나 쾌적한 날씨 속에서 만 보를 훌쩍 넘겨도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던 천국에 있었다.폭염이 불과 며칠 전이라 갑자기 북녘에서 밀려온 서늘한 바람이 밤에는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졌건만 활동을 시작하자 최적의 기온으로 맞춰졌고, 게다가 적당한 구름이 햇살을 가려 외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가을하늘은 언제 봐도 감동이란 단어를 능가할 그 어떤 표현도 생각나지 않았다.그만큼 눈을 뜨고 활동하는 자체로 행복의 달달함이 느껴질 정도였다.반석산에 오르자 금요일 밤부터 전날 ..

한가위 노을 아래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40916

올여름만큼 '기록', '역대'라는 말을 남발한 적이 있었을까?완연한 가을로의 길목인 한가위 연휴조차 폭염의 맹위에 가을이 올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연일 한여름과 같은 후덥지근한 폭염도 모자라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 도저히 참지 못해 9월 초 며칠을 빼곤 에어컨이 열일하는 여름이자 초가을이었고, 때마침 한가위 연휴를 맞아 큰누님이 홀로 친정집에 행차하시어 큰 마음먹고 동탄과 가까운 명소인 아산 곡교천으로 출발했다.내 신조가 더울수록 땀을 흘려야 더위에 둔감해지며, 겨울 또한 추울수록 활동을 해야 몸이 움츠러들지 않을 뿐더러 그런 가운데 겨울의 신선하고 순도 높은 추억이 쌓이는 벱이라 아산 곡교천 나들이를 제안하자 모두 덥석 물었다.[이전 관련글] 멋진 겨울 작품,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00211사실 아산은..

일상_20240815

명절을 앞둔 시점에 걷기 운동 겸 머리 벌초도 할 겸 3.5km를 걸어 단골 미용실로 가는 길에 뒤늦은 폭염을 실감했다.연신 흐르는 땀방울에 등골이 간질간질했고, 얼굴과 머리는 흠뻑 젖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당시엔 땀범벅이었다.뜨겁긴 해도 가을 바람과 건물 내에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으로 땀을 식혔는데 가던 길에 여울 공원의 능소화는 뜬금없긴 해도 멀리서 봤을 때 이쁜 꽃망울이 주렁주렁 달렸다.지난달 벌초 갈 때와 비교해서 열린 꽃망울이 적긴 해도 꽃의 본능을 가득 담은 진수답게 그 빛깔은 곱다는 표현 이상이었다.머리 벌초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서녘 석양의 고운 빛결에 감탄의 화답을 마지막으로 5일 연휴 중 이틀은 소리소문 없이 흘러갔다.

생거의 작은 조각 쉼터, 진천역사테마공원_20240909

예전에 충북이라고 하면 대부분 충주를 찾았다.소위 장단이 맞는 지인들이 있었고, 유적지나 공원, 자연 경관이 우수했으며, 그와 함께 먹거리와 함께 비교적 교통도 좋았기 때문이었다.그러다 진천을 찾은 건 20여 년 전 음성 소재 제약회사에 근무하며 엄청난 궁합을 자랑하던 독수리 오 형제-생산팀 2, 관리팀 1, 연구팀 2명으로 구성된 멤버들로 어느 순간부터 평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퇴근에 맞춰 일대를 훑고 다녔었지-와 함께 진천을 찾았었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하던 늦겨울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던 사람들의 격리를 위해 아낌없이 받아주었던 아산과 더불어 진천에 대한 막연한 관용-코로나 팬데믹 초기엔 스쳐만 지나도 감염될 거란 공포심이 극대화된 시기라 지자체에선 엄청난 모험이기도 했다-에 아산과 더불어 진천을..

진중한 사찰의 저녁, 안성 칠장사_20240902

칠장사는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에 위치한 칠현산 자락의 고찰.조선 영조 9년(1773년)에 간행한 칠장사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으나 초창된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문헌 등을 통해 볼 때 10세기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전하며, 고려시대 현종 5년(1014)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려 우왕9년(1383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조의 역대실록을 이곳에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는 중요한 사찰이었다.공양왕1년(..

일상_20240816

왜 가수 거미가 생각날까?숙소 창 바로 앞에 거대 거미가 집을 지어놓고 먹이사냥 중이었는데 때마침 석양이 비킨 노을이 덧칠해져 거미가 스뽜이더맨처럼 보였다.웬 청승!어차피 방충망 밖이라 그냥 두기로, 그래서 여름 기운에 깝치는 모기들이 걸려 녀석과 서로 상생하기로 했다.내게 있어 거미는 아주 친숙하며 이로운 생명이란 인식이 있어 집안에 돌아다녀도 살짝 건져 밖으로 보낼 뿐 저얼대 살생하지 않았다.먹이사슬을 그대로 둬서 누이 좋고, 매부 좋길.

일상_20240715

이른 아침 출근길에 동녘 붉은 노을에 연일 이어진 장마의 우울한 대기를 말끔히 태웠다.평생 동안 적응이 안 될 새벽 기상에서 그래도 희망은 있는 벱이지.그건 바로 느긋한 출근 광역버스의 여유와 더불어 가끔 만나게 되는 새벽의 전매특허와 같은 쨍하고 찰나 같은 노을.퇴근해서 현관을 열자 녀석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혼자 뀅하게 떨어져 연신 실눈을 난사했다.

일상_20230314

하루의 시작, 자글자글 봄의 아지랑이처럼 차가운 새벽 동녘 마루에 피어오르는 노을을 보며 문득 스스로에게 숙연한 위로를 건넨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는 찰나 같은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건강한 영혼에 대해 효능감을 망각하며, 지금까지 얼마나 엄격하고 인색했던가. 잘게 부서진 노을 따라 눈은 차갑고 가슴은 따스한 어느 봄날 새벽이다. 찰나의 단잠처럼, 순간의 유희처럼 그렇게 검푸른 새벽하늘에 노을이 젖어들어 따스한 하루의 포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