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는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에 위치한 칠현산 자락의 고찰.
조선 영조 9년(1773년)에 간행한 칠장사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으나 초창된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문헌 등을 통해 볼 때 10세기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전하며, 고려시대 현종 5년(1014)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고려 우왕9년(1383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조의 역대실록을 이곳에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공양왕1년(1389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되어 폐허로 내려오다가 조선시대 중종 1년(1506년)에 흥정이 중건했다고 한다. 이후 인종 1년(1623년)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사세를 크게 중창했다고 전한다.
[출처] 칠장사_대한불교조계종 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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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과 동시에 회사에서 제공된 저녁을 해결한 뒤 곧장 칠장사로 향했다.
월요일이면 광혜원 도서관의 정기 휴무였고, 진천으로 온 뒤 칠장사 방문은 꼭 다짐해 왔었는데 때마침 여름이 저무는 마당에 낮이 더 짧아지면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그러기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 온전히 여행의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헤매는 시간도 사치라 여겨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켜 칠장사까지 앞만 보고 달려 도착했을 때 시계는 벌써 6시 20분을 넘어서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칠장사 아래 너른 주차장엔 차량이 한 대도 없을 만큼 사찰의 적막과 함께 고즈넉함도 누릴 수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사찰에 닿기 전 철로 된 깃대를 보지 못한 안타까움은 어느 여정에서나 마찬가지라 희석시키자.
주차장에서 칠장사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천왕문 뒤편 은행나무길 너머에 희끗하게 절의 형체가 보였다.
여차 하면 하루 해가 떨어질 시간대라 이동에 대한 시간 낭비가 없어 이럴 땐 좋구먼.
짧지만 이 계절, 가을이면 꼬리표처럼 생각나는 완만한 오르막의 은행나무길을 지나면 바로 사찰이 펼쳐져 있었다.
일대에서는 꽤 이름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이 진중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는 하루 일과에 쌓인 잡념을 떨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칠장사가 안성에 있는 건가?
낮에 살짝 뿌린 빗줄기와 달리 두터운 구름은 하루 종일 대기를 짓눌렀고, 절묘하게 풋풋한 초가을 정취와 조화로웠다.
칠장사에 들어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나무의 질감이 시각으로 전달된 목조 건축물이었다.
나무 특유의 까슬까슬한 표면에 고유의 무늬와 더불어 시간을 버틴 짙은 흔적이 청명한 하늘 아래 여과 없이 보였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찰의 고풍과 고즈넉함을 책임질 의지가 목석처럼 단단했다.
악귀를 물리친 사천왕이 봉인되어 있어 세워진 비석일까?
범종을 지나
혜소국사비, 나한전, 산신각은 좌측 오르막길로 오르면 하나씩 나열되어 있었는데 도중 어사 박문각 합격다리란 변종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오르막길은 칠현산을 오르는 등산로의 출발이기도 했다.
약수터로 가는 길에 부도군.
부도군을 지나 약수터가 걸어가는 길에 통통 튀는 여울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이따금 얼굴 주변으로 달려드는 날파리가 성가시긴 했지만 한여름처럼 집요하지는 않아 이내 잊고 경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칠장사와 일대엔 부도가 참 많았고, 또한 이런 석불도 틈틈이 들어서 있었다.
근래 들렀던 사찰들 중 이렇게 갈증을 다스릴 수 있는 음용수를 갖춘 곳이 많지 않아 이런 배려가 평온한 사찰의 분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세상 만물은 인간의 사유에 따라 각기 달리 보이고 느껴진다고 했던가?
칠장사가 그랬다.
자욱하지만 무겁지 않은 평온과 소소한 사물들의 조화로움, 그리고 거기에 함께 공생하는 자연의 흔적들이 유달리 찻잎의 그윽한 풍미처럼 사유의 평온과 차분한 발걸음이 현악의 협주곡처럼 다가왔다.
거기에 지루한 여름 끝자락에서 이따금 뒤섞인 가을 내음과 정취의 격한 반가움이 더욱 이 순간을 무중력 상태로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오랜 세월의 희로애락을 지켜봤던 몇몇 나무들의 자태가 길의 애환과 어울려 진중했다.
약수터에서 대웅전으로 향했다.
아니 어쩌면 대웅전으로 향했다기보단 황량한 흙빛 경내에 우뚝 선 멋진 나무들의 이끌림에 의지를 맡겼다는 표현이 더 옮겠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차우차우가 짖으며 다가오려 했고, 대청마루 밑에서 또 다른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 천천히 돌아섰다.
차우차우는 득달같이 달려들 기세는 전혀 아니었지만, 적막이 무겁던 사찰에서 개 짖는 소리는 마치 내가 불청객처럼 느껴져 걸음을 돌려 혜소국사비 방향의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구름이 두텁거나 아니면 햇살 쨍한 날이라 해도 연일 청명한 대기는 더위를 잊고 가을을 맞이하기에 충분했다.
몇 걸음 앞으로 다가온 차우차우가 무섭지 않았음에도 걸음을 돌린 건 녀석들의 쉼을 방해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다시 돌아본 사찰의 고즈넉함은 꽤 달달했다.
혜소국사비와 나한전, 산신각이 있는 방향을 향해 오르막길로 걸었다.
사찰의 적막 이상으로 걸음을 디딜수록 더욱 분위기는 더욱 진중했다.
물론 월요일 저녁이라 찾는 사람도 있을 리 만무했고, 하늘을 자욱하게 덮은 구름들도 그랬다.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는 타루초처럼 오색 기원들이 빼곡하고 두텁게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거의 없는 날이라 이따금 살짝 스미는 미약한 바람에도 몇 개가 살짝 일렁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소원성취를 위해선 일정의 대가가 필요한 걸까?
혜소국사비는 높이 241cm, 폭 128cm의 꽤 거대한 비석이었다.
혜소국사비 지나 나무와 벤치의 조화로움도 빼놓을 수 없었다.
벤치가 그리 작은 게 아니었는데 하늘 가려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내리는 비의 사나운 예봉을 꺾어주는 나무가 거대해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보였다.
가을이 스며들 즈음 얼마나 멋진 반가움으로 맞이해 줄까?
여기에도 샘물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끼가 자욱하게 덮여 심장이 없던 돌에 생명이 깃들었다.
나한전, 혜소국사비를 지나 가장 깊은 자리에 산신각이 있었지만 문이 굳게 닫혀 굳이 문을 열 때 삐걱거리는 소음을 내고 싶지 않았고, 굳이 나지막한 휴식도 깨고 싶지 않아 지나며 슬며시 시선만 건넸다.
칠장사에서 산중 가장 깊은 곳은 산신각을 지나 작은 음악당처럼 꾸며져 있었고, 거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칠현산으로 향하는 등산로의 첫걸음을 디딜 수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오자 사찰과는 또 다른 텁텁한 숲의 내음과 뺨을 스치는 공기 속의 밀도감 있는 습도가 느껴졌다.
그리 규모가 큰 사찰이 아니어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아 금세 박문수 다리가 나왔고, 그 뒤에 사찰과 너른 공터가 있었다.
하루의 등불이 서산으로 넘어가기 무섭게 낮은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칠현산과 칠장산 정상은 그리 멀지 않았다.
또한 일대 산책길은 박문수길이라 명명하여 역사를 고취할 수 있게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경내 주차장에서 저물어가는 하늘과 그 아래 사찰의 정취에 잠시 취했다.
아침부터 무겁던 하늘은 두터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무심히 뿌려 놓은 노을의 곱디고운 색채는 암울한 구름 속에서 희망꽃처럼 유달리 아름다웠다.
노을만 있다면 이 아름다움이 돋보이지 않아 아름답지 않을 게고, 구름만 있다면 이 하늘이 얼마나 암울했을까?
상반된 두 가치가 뒤섞여 자칫 눈에 띄지 않았을 아름다움과 진중함을 서로 부각시켜 전체가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메아리쳤다.
가을은 늘 한꺼번에 오지 않았다.
칠장사 또한 한꺼번에, 급진적으로 가을이 습격한 게 아니라 시나브로 물들고 있었다.
때마침 까치발을 들고 지나는 바람이 나무에게 들켜 한무리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마을버스 한 대가 라디오 음악 소리에 쉬고 있었다.
낡은 것들이 목숨을 연명할 때마다 자연의 마법이 깃든 것들은 고풍과 시간의 일기로 아름다워졌고, 그 자연을 굳이 외면한 것들은 흉측하게 변했다.
인간들이 만든 이기의 창조물들이 그랬다.
차에 시동을 걸어 막 출발하자 길 건너편에 야윈 냥이가 길가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녀석에게 신호를 보내자 녀석이 가던 길을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
그대로 차를 세워두고 트렁크에 밥 한 줌을 들고 다가가자 녀석은 피하지 않았는데 그 경계심도 굶주림 앞에선 무뎌졌던지 가까이 다가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앉아 빤히 쳐다보자 녀석이 무척이나 의식하며 눈치를 보는지라 몇 걸음 물러나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반 정도 비울 즈음 녀석에게 작별하고 차를 출발시켰는데 멀어져 가는 모습을 주시하는 녀석의 눈빛이 칠장사의 여운처럼 길고 애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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