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황금 한가위 셋째 날_20171002

사려울 2019. 1. 4. 20:53

연휴, 아니 그냥 연휴라면 섭하고 명절 황금 연휴 셋째 날, 집에서 뒹굴다 이 귀한 시간의 무료함이 싫어 자전거를 타고 공원길을 달렸다.

당초 계획은 전년도 연휴처럼 40여 킬로 정도를 질주하는 건데 공백이 길어 금새 지쳐 버린다.

시간이 넉넉한 만큼 굳이 강박증에 시달리는 회사 생활과 달리 언젠가 집으로 가는 두리뭉실한 목표를 잡았더니 주위에 보이는 것도 많고, 초가을 정취도 잘 보인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 어차피 남는 건 파워라 앞만 보고 냅다 달려 금새 공원길의 끝인 기흥/동탄IC 부근에 도착했다.

인공으로 조성해 놓은 수로에 민들레 하나가 만개 했고, 이미 그 유혹에 넘어간 벌 하나가 흠뻑 빠져 있다.




아직 여름색이 창연한데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면 올해 여름의 종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오산천 산책로의 가로수는 대부분 벚꽃이라 꽃도 금새 피고 지듯 이파리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벌써 길 위에 떨어져 난리다.



처음 몇 년 간 동탄에서 명절 연휴에 자전거 라이딩 하던 풍경들과 많이 다른건 산책 중인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는 거다.

조용한 한가위 연휴 첫 날, 한가위 연휴 둘째 날의 텅빈 산책로, 한가위 연휴 첫 날_20150926

과거에 비해 가장 큰 차이인 만큼 이제 동탄도 나이가 10년을 넘겼고, 도시가 과실이 익듯 무르익었단 건가 보다.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 오산에 도착했지만 여긴 산책하는 사람들 중 외국인이 좀 더 눈에 잘 띄인다.

아마 명절을 맞아 고국에 가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 인 듯 싶다.

마음은 고국으로, 집으로, 가족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급작스럽게 밀리는 적적함을 너른 공원으로 나와 가을 내음에 맡기는 게 아닐까?



오산천 자전거 길을 턴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허기진 배와 잠깐의 휴식을 달래기 위해 연휴로 무척이나 한적한 카페에 들렀다.

간헐적으로 오고 가는 손님이 있을 뿐 내부에 있는 죽돌이는 혼자라 크로크무슈 하나에 양동이 사이즈 커피 한 잔으로 잠시나마 갈증과 허기를 달래 본다.

귀는 음악에, 입은 커피와 크로크무슈, 코는 목구멍에서 감도는 커피 잔향, 눈은 아이폰 화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선 집만한 곳이 없어 1시간 여 죽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기나긴 연휴에도 욕구 불만족처럼 남아 있던 여행 불발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간단한 배낭을 챙겨 밤이 익을 무렵 밖으로 나와 걷던 중 홍단풍의 붉은 빛을 관통한 가을 정취가 눈에 들어와 잠시 벤치에 앉아 멍 때렸다.

폰카 특성상 약한 조도에서 자글한 노이즈가 많아 언제부턴가 가로등 불빛에 굴절된 낙엽을 담는 경우가 많아 졌다.

그러면 평소 보기 어려웠던 단풍의 컬러들이 생생하게 쏟아진다.



강한 가로등 불빛이 거미줄의 광택도 비춰준다.



늦은 밤까지 많이 걸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뿌듯한 시간, 바로 기나긴 황금 연휴의 셋째 날이었다.

어둡고 인적이 없어 무서울 법도 한데 전혀 무섭거나 낯설지 않은 거리, 여름이 물러나는 자리에 소리소문 없이 들어오는 가을 내음이 어우러져 사진으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초가을 밤을 보냈다.

반응형

'일상에 대한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금 한가위 닷새 날_20171004  (0) 2019.01.05
황금 한가위 넷째 날_20171003  (0) 2019.01.04
가을이 오는 소리_20171001  (0) 2018.12.29
일상_20170925  (0) 2018.12.23
졸음_20170924  (0) 201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