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가을이 오는 소리_20171001

사려울 2018. 12. 29. 02:44

가을비 내리는 늦은 밤에 레인코트 한 벌에 의지하여 오는 가을을 맞이하러 간다.

황금 연휴의 시작이라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했지만 이미 5월 이전에 대부분 항공편은 동이 났고, 삯은 천정부지, 지랄 옆차기 단가를 불러도 없어서 못 구한단다.

정말루, 정말루 아쉽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니까 사정은 마찬가지.

하긴 나보다 앞서 결정한 분들이 무쟈게 많을 터이니 별반 차이 있겠냐구.

덕분에 도시는 모두가 떠나 텅 비어 있는 랴퓨타 같다.

그래도 유령 도시 같은 느낌은 전혀 없는 게 가을이 오기 시작하는 징후 덕분에 사람들이 떠난 분위기를 대체해 주는 기분이랄까?




이 시기면 아직은 여름색이 짙다.

여전히 짧은 셔츠 차림이거나 여름 신록이 여전하거나.

다른 건 말로써 완전히 규정할 수 없는 가을 내음 정도?



모두가 떠나 버린 근린공원 우레탄은 마치 얼음이 깔려 있는 빙판 같거나 적당한 깊이의 담수 같다.






단풍 잎사귀에 내린 비가 가로등 불빛을 굴절시켜 뿌려지는 빛을 허투루하게 버리지 않고 일일이 보듬어 준다.

여름 내내 가을색을 입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홍단풍은 가장 먼저 붉게 물든다.



잠시만 걷겠다던 당초 생각을 잊어 버리고 도시를 아예 한 바퀴 돌았고, 어느 시점부터 몰려 오는 피로감에 사진조차 찍지 않았었다.

욕심이 문제지만 피로감은 금새 잊고 뿌듯함은 오래 남는다.





홍단풍과 달리 이 녀석은 꽤나 오래 동안 물들 기미가 없다가 서리가 내릴 무렵 단풍 특유의 선홍색 옷으로 갈아 입는다.

첫 추위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12월 초까지도 곱게 물든 단풍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청단풍 덕분이다.

늦었다고 해서 절대 뒤쳐지거나 게으른게 아님을, 시기의 차이일 뿐 도리어 모든 나무가 겨울 동면에 들어가기 위해 나뭇잎을 모두 떨구더라도 이 친구는 여전히 타오르는 가을 정취를 고수해 준다.

10월 한 달 동안 이 녀석은 사람들의 외면에도 상심에 빠지지 않은 채 차곡차곡 가을 준비를 마친 뒤 가을이 떠날 무렵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 삼아 가을을 상기 시켜주니까 얼마나 기특한가.




가족들 뫼시고 곤드레밥집을 찾았는데 근래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식당들과의 분명 차별되는 것들이 쉽게 눈에 띄인다.

흔하게 버릴 수 있는 코르크마개에 이런 감성을 입힐 줄이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품과 공간에 이런 세세한 관심의 씨앗을 뿌려 놓은 정성에 자신의 사업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느껴져 허기만 달래는 곳이 아니라 마음도 잠시 쉬게 할 수 있는 여유의 공간도 만들어 오는 객들의 발을 붙잡고, 친근한 곳으로 적응시켜 언젠가 고민 없이 이 공간을 다시 찾도록 하는 혜안이 엿보인다.

그리 저렴하거나 가지수가 많은 식당이 아니라 주변에 비해 좀 비싸고, 종류가 적어도 익숙한 맛과 정해진 음식에 깊이를 더한 곳이 바로 이 식당이라 하겠다.

자극적이지 않은데 거부감 없는 맛, 푸짐하지 않은데 친숙한 찬거리들.

울 가족들이 칭찬하는 이유를 알 거 같다.


이렇게 기나긴 연휴의 둘째 날이 소리소문 없이 떠나 버렸다.

긴 휴식 시간이 주어져 좋을 것만 같은데 난 왜 이리 벌써 긴 연휴 끝의 아쉬움을 먼저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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