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홍천에서의 평온한 하루_20151020

사려울 2015. 11. 3. 23:20

평소와 같은 잠깐의 여유라도 다른 계절엔 지루한 시간일 때가 많지만 가을만큼은 지루할 틈이 없다.

홍천에 들렀던 이틀의 짧지 않은 시간 조차도 난 넘치는 심적 여유로움에 유영할 만큼 타인에 비해 압도적인 많은 추억을 쓸어 담았다.



홍천에 지인이 살고 있다지만(홍천 고사리 채취), 그리고 비발디파크에 가족 여행을 종종한다지만 서먹할 수 밖에 없는건 자유 여행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소갈머리에 치밀한 경로와 목적지를 미리 정하기는 싫고.

지나던 길에 홍천유원지 이정표를 바라고 무조건 왔더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매끈하게 가공된 공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강 가에 넓직한 공간이 있고 잠시 궁뎅이 붙일 수 있는 곳도 여기를 제외하곤 전무후무한 상태나 마찬가지.

막연히 왔던 만큼 실망은 없었지만 유원지라는 간판은 이제 내려야 하지 않겠나?

다만 개미가 많은 걸 제외한다면 여기 제법 괜찮은 자리 같다.




오던 길에 눈에 띄이는 장소를 봐놓았는데 일반 민가 뒷편에 유독 도드라지는 빛깔로 물든 은행나무가 있어서 다시 찾아가 봤더니 그 무리 중에선 짱 먹어도 좋을 만큼 아주 곱게 단장했다.

가을 느낌도 조~코



주차장에 도착해서 팔봉산을 올려다 봤을때 따가운 햇살로 인해 사진도 제대로 나오지 않거니와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 백배라 완전 뒷편 너머로 갔다.

좀 낫구먼.




뒷편이라 가장 좌측에 있는 봉우리가 8봉 되시겠다.

8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어 팔봉산이라 명명되었는데 홍천강이 팔봉산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형상이라 처음에 딱! 봤을땐 나즈막한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어 금강산을 닮았다고 하여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웠데나 뭐래나~

팔봉산 앞에 섰을때 한 눈에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그 산세가 멋지고 맨살을 드러낸 바위를 나무들이 묘하게 가리고 있어 바위산이 야시시한 옷을 입고 모로 누워 있는 형상인 거 같아 진귀하다.





8봉에서 부터 거꾸로 바라 보며 망원으로 사진을 담았더니 얼핏 봉우리에서 있는 사람들도 보이는구먼.

사람들을 봤으니 나도 정상에 오른 사람과 같다고 착각해도 용서 되겠지?

작다고 생각했던 나무들이 사람들과 비교하면 제법 크다.




팔봉산에 가을은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 완연한 가을 느낌은 나지 않지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아도 될 거 같다.




다시 팔봉산 정면으로 돌아와 보니 주차장 곳곳에 서 있는 가로수들은 가을 옷으로 변태하기 시작했고 그 중 한 그루는 유독 붉게 익어 단박에 한 눈으로 들어 왔다.

붉게 익은데다 그 익은 잎파리들이 얌전히 밑에 깔려 자리를 지키는 것 보면 아직은 세찬 가을 바람은 없었나봐.

이 색깔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비치는데 미풍에 살랑이는 나뭇잎이 쏟아지는 햇살을 변이시켜 눈에 파고 들며 인상을 찌뿌리게 하는 햇살과는 달리 콘크리트 색상에 지친 시신경을 보드랍게 이완시켜 주는 따스한 온수 같다.



팔봉산에서 자리를 떠 정처 없이 길을 지나다 만난 전형적인 가을 추수의 진풍경이 아닐까?

비록 멀찍히 떨어져 요상한 현수막이 훼방을 놓았지만 볏단과 수건을 둘러 쓴 아낙들의 분주한 추수는 휴일 아침에 창가를 비치는 부시시한 햇살 같다.







홍천강을 뒤덮기 시작하는 가을 빛깔은 밥을 짓기 위해 낙엽 불을 피울 때 발산하는 향긋한 바람의 내음처럼 지켜 보는 시신경에 잊고 있던 후각을 깨우친다.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홀로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리듬에 맞춰 바람의 선율을 연주하는 가을 빛들을 상상해 보라.



홍천강을 거슬러 잔잔한 강 위를 유영하듯 2시간 여 한적한 드라이브를 해 보니 펜션이 무쟈게 많어.

원주민 인가보다 더 많은 펜션이 제각각의 몸짓과 개성으로 한 없이 펼쳐져 있는데 평일이라 이 일대가 고요함은 말할 것도 없고 밤이 되자 그 많던 펜션들이 한결 같이 암흑의 이불을 덮곤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초저녁이긴 하지만 아직 불이 꺼지기 전, 나도 펜션으로 돌아와 낙엽이 자욱한 마당의 가을 자취를 집요하게도 흔들어 깨워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이 밤엔 가을도, 시간도, 바람도 한 치의 미동 없이 있던 자리에 움츠려 앉아 감상에 빠진 자연을 방해하지 않고 깊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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