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추억과 시간이 만나는 곳

사려울 2015. 10. 30. 01:50

충주 봉황휴양림에도 아직은 가을 내음만 나고 정취는 느끼기 쉽지 않았으나 조용한 나만의 휴식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볼 틈 없이 바로 피로를 달래곤 일어나 보니 햇살이 전형적인 가을 답게 모든 걸 태울 듯 따갑다.





이번 숙소는 가장 안쪽에 들어서 있는 통나무집인 다래넝쿨집이라 아주 깊은 산중에서의 하루를 보낸 착각이 들만큼 조용하고 아늑했다.

약간의 우풍을 느낄 정도로 가을 아침답게 약간 서늘했지만 해가 뜨고 금새 불볕더위를 방불케 했다.



현관을 나와 봉황휴양림을 나서는 첫 발걸음에 이렇게 넓직한 뜰을 한 장 담아 두곤 출발.




주위에 다른 여행지를 뒤로하고 바로 남한강과 섬강, 청미천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달려와 트인 전경을 바라 봤더니 녹조가 어마무시하다.

예전에 혼자서도 종종 찾곤 했던 부론의 두물머리였지만 4대강 삽질 사업 후엔 매끈해진 뚝방길이 추억을 덮어 버리기도 했고 거울처럼 유유히 흐르던 남한강이 짙은 녹조와 악취로 인해 유쾌하지만은 않다.

결국 살아가고 누려야될 국토를 자본의 논리로 해석했으니 멀쩡할 리가 있나!




이 멋진 광경을 저렇게 황폐화 시켜 놓은 장본인들은 시원하게 녹조 함유량이 높은 강물을 한 양동이 들이키게나.

그것도 숨 쉬지 말고!



자리를 피하듯 그늘이 없을 것만 같은 뚝방길을 걸어가 봤다.

당췌 옛추억을 곱씹을래야 곱씹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이 바뀌어 땡볕에 왠 고생인가 싶다.



섬강 하구엔 이렇게 멋진 기암절벽이 강물을 맞이하고 있건만 사람들은 참 몹쓸짓을 해 놓았다.



그래도 오리 가족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때마침 초가을 산책 나온 잠자리들이 가을 강바람을 뚫고 사방으로 헤엄치다 잠시 쉬고 있는 잠자리도 눈에 띄는데 바람이 세찬 탓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냉큼 날려가듯 또다시 허공에서 헤엄을 친다.



바람을 타고 일정 공간에 가만히 떠 있는 잠자리를 포착한 걸 보니 올해 티워니가 펌업 후 포커싱 능력이 엄청 좋아졌다.







하늘을 온통 집어 삼킬 것처럼 바람에도 아랑곳않고 잠자리떼는 규칙도, 뒤쳐짐도 없이 분주히도 날아다니다 빈약한 다리를 걸칠 수 있는 곳이라면 잠시 쉬다가도 이내 자리를 떠버린다.

잠자리 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풀잎사귀에 앉아 봐도 강바람이란 녀석은 그리 호락하지가 않아 뿌리채로 뽑아 버릴 기세인데도 조롱이라도 하듯 집요하게 빈약한 가지로 냉큼 앉아 버린다.

그래도 내 인내심에 깐족거리며 어떻게든 부족한 피를 빨아 쳐묵하려는 모기의 천적이라니 얼마나 이쁘냐구.

그런 이쁜 족속들이 가을 바람이며 일광을 즐기시겠다는데 방해하면 안 되니까 경거망동 하지 않고 지켜만 볼 뿐, 근데 잠자리가 여름에도 결코 적은 게 아닌데 왜 가을의 액세서리인 코스모스와 함께 대표 주자가 되었을까?




길은 섬강을 따라 먼 곳에서 무표정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영동고속도로를 향해 뻗어 있는데 내리 쬐는 햇볕이 워낙 따갑고 사나워 발걸음을 돌리기로 하던 차, 섬강가를 가 보니 먼데서 보는 것보단 그리 더럽진 않다.

올 봄부터 가뭄의 여파로 수량이 부족하여 아무래도 수질이 예년만큼 좋지 않겠지만 물이끼를 제외한다면 그리 많지 않은 수량에 비해 수질이 나쁜건 아니다.

9월 초가을은 여전히 불볕더위라 생각 같아선 물에 뛰어 들어 더위를 좀 식히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섬강 건너편은 경기도 여주, 내가 서 있던 곳은 강원도 원주며 부론에서 여주로 가는 길목은 충청북도 충주라 세 도의 도시와 만나면서 세 개의 강인 남한강, 섬강, 청미천이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 일대는 그리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아 언제나 조용한 장소이기도 해서 십 여년 전부터 종종 들리는데 특히나 삶에 지치고 마음이 복잡할 때 먼 곳으로 여행가는 여유가 없다면 어김 없이 찾는 곳이라 나에겐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조용한 동네에서 잔잔한 강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광경을 가만히 보며 산책을 하다 보면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 차분히 정리될 때가 많고 기대감을 넘어 단호한 확신이 어쩌면 내 스스로를 다잡게 해 준건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가을이나 겨울처럼 잔뜩 움츠린 계절엔 어느 누구도 앉아 있지 않은 벤치를 무성하게 자란 풀들로 빼곡히 감싸져 마치 세상 혼자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나만의 공간이라 여겼던 강변이 이제는 무차별 땅 속으로 밀려 버렸으니 어쩌면 시간과 함께 변하는 것들의 변화가 내 욕심일 수 있다.

가슴에 자리 잡은 지난 시간들은 희미해 지고 퇴색될 지언정 잊혀지지는 않는데 그 집착의 사슬을 너무 견고하게 고집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부론 한가운데 보호수는 여전히 건물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 문명은 왜 그런 공존을 간과하는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바뀐 세상과 달리 내 추억은 바래지 않았음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난 여전히 삶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고 그 느낌으로 만족의 꾸러미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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