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찾아든 산중의 가을은 일상에 젖었던 동안 무언가 잊은 약속을 깨친 듯 급히 서둘러 떠날 채비를 끝내고 잠시 빠뜨린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다.
가을이 떠나면 새벽 이슬이 서리가 되어 무거워지고
내리는 비조차 눈이 되어 둔해져 한자리에 오래 머물려 하고
가을을 응원했던 나무들은 잎사귀를 모두 써버려 깊은 단잠에 빠지고
각양각색의 길들은 반가움을 잊은 채 정색을 할 거다.
모든 문명의 소리를 차단한 채 오직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몸짓으로 활개하던 이 숲의 자연은 조만간 찾아올 겨울엔 선명하던 소리조차 숨고르기에 들어가며 가을을 장식했던 자욱한 낙엽을 바람에게 맡기고 추수에 소외된 열매들은 산중에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맡기겠지.
떠나는 가을, 만추의 빛 바래고 허허로운 공기를 뒤로 한 채 떠나는 나는 이제 모든 계절의 아쉬움과 함께 기다림에도 익숙해지고 무뎌졌나 보다.
그게 여행이 주는 힘이라면 나는 또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아쉬움은 산중에 버려 두고 설렘만 추스려야겠다.
계절이 오가는 길을 따라 나도 길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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