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파도와 동행하는 시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1_20230508

사려울 2024. 1. 6. 19:02

호미반도를 에둘러 인간의 자취는 선명했다.
비바람의 예봉이 꺾인 이튿날에 해안둘레길을 다시 도전, 다행히 자연이 허락을 해주고 길을 내준 날이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도구해수욕장 부근에서 시작하여 1구간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까지 6.1km, 2구간은 흥환간이해수욕장까지 약 6.5km, 3구간은 대동배까지 6.5km, 마지막 4구간은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5.6km로 총 24km가 넘는데 2~4구간까지만 걷기로 했다.
2구간은 선바우길이라 명명하는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주차한 뒤 사전 설명과 더불어 틈틈이 나오는 이정표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길을 이용해서 걸었다.
해안둘레길 답게 길은 대부분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들어 때론 파도에 신발이나 바짓가랑이가 젖을 수 있다는 걸 감내해야 했다.
그나마 테마공원과 연결된 길이라 데크구간이 많아 수월하게 걸을 수 있고, 해변길도 조금 가공된 길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는 어느 하나 같은 건 없고 심지어 흙을 빚어 직접 주물러 낸 듯한 기암과 두 세대가 만나 하나로 동화된 바위도 있었다.
가볍게 걸으며 말끔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해안길을 만끽하고 싶다면 경기도 안성, 안성맞춤이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한반도 최동단 지역으로 영일만을 끼고 동쪽으로 쭉 뻗은 트레킹로드로 서쪽의 동해면과 동쪽의 호미곶면, 구룡포읍, 장기면에 걸쳐 있다. 연오랑세오녀의 터전인 청림 일월(도기야)을 시점으로 호미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동해면 도구해변과 선바우길을 지나 구룡소를 거쳐 호미곶 해맞이 광장까지 4개 코스 25km구간과 해파랑길 13, 14코스로 연결되는 5코스는 구룡포항, 양포항, 경주와의 경계인 장기면 두원리까지 전체길이는 58km에 달한다. 어느 코스를 걷든 깎아내리는 절벽과 부딪히는 파도가 있는 포항 12경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으며 곳곳에 도구해수욕장, 독수리 바위 등 다양한 명소가 있다. 특히 2번째 코스인 선바위길은 석양이 일품이니 일몰 시간에 맞추어 걷는 것도 추천한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동해바다와 수놓은 듯한 보랏빛 해국이 펼쳐 져 있고 여왕바위, 힌디기 등 아름답고 기묘한 바위를 감상하면서 파도소리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걸으면 절로 힐링이 된다. 일출이나 일몰 시간에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를 보면서 걸으면 황홀한 광경과 벅찬 감동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야간에 바다에 어른거리는 달빛을 보면서 걷는 것도 로맨틱하다. 단 안전을 위해 기상악화 시 출입이 통제될 수 있다. 둘레길 코스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6.1km, 1시간30분) 청림운동장→도구해수욕장→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2코스 선바우길(6.5km, 1시간 30분) 힌디기→하선대→흥환간이해수욕장 3코스 구룡소길(6.5km, 2시간) 장군바위→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군락→구룡소 4코스 호미길(5.6km, 1시간) 독수리바위→호미곶관광지로 나뉜다.
한마디로 포항 남구 일월동 청림운동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상생의 손이 있는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약 25.7km의 영일만에 접한 해안길이라 보면 된다.
[출처] 호미반도 해안둘레길_퐝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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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포항을 떠나야 되는 날에 비로소 바다의 기세는 누그러져 원래 계획대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디딜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속을 든든히 채워야 되는데 전날 아점으로 택했던 국수집을 다시 찾아 잔치국수 한 그릇에 둘레길을 걷는 도중 에너지 보충용으로 김밥을 포장했다.

그렇게 간단히 속을 채운 뒤 전날 한 번 답습했던 길을 그대로 밟아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도착, 주저 없이 먼 길 걸을 채비를 하고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에 여정을 그려 나갔다.

 

설화가 잠든 바다 폭풍 언덕, 연오랑세오녀 공원_20230507

멀리 포항까지 찾아온 이유,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다. 허나 태풍급 바람에 굵은 빗방울은 해안둘레길은 고사하고 외출도 쉽게 허락하지 않아 아쉬운 대로 공원 뒤편 언덕과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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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구간의 시작은 바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시작하는 고로 이름하야 선바우길의 출발은 주차장 출입구 옆 데크계단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빼곡히 표시된 이정표가 있어 낯선 곳에서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단박에 제대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면 바로 옆에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사설의 주차장이 연결되는데 잠시 혼선이 있을만한 부분에서 이렇게 표기해 놓아 주저 없이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지자체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바다의 최전선에 있는 길임에도 멋진 초원의 정취가 나부끼는 길을 따라 걷다 문득 뒤돌아 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장장 18km 이상을 걸어야 되는데 무사히 끝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크게 심호흡했다.

처음부터 길의 매력이 세찬 파도 이상으로 강렬했던 건 길섶 해안 절벽 아래 넘실대는 바다의 절경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길을 걷던 중에도 주변을 아우르는 시선의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나오는데 바다 절벽 위 전망대와 해안둘레길로 나뉘고, 전망대는 막다른 길 이상의 멋진 해안둘레길을 암시했다.

좌측 편엔 바로 전망대가 기다렸고, 우측 편엔 해안둘레길로 진행되는 길로 바로 앞에 전망대가 있어 우선 들렀다.

첫 전망대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바다와 육지의 명확한 경계, 그리고 바다 절벽 아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파편들과 생명을 연신 흔들어 깨우는 세찬 바람이 뒤흔들고 있었다.

진행 방면 또한 까마득한 절벽으로 억겁 동안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에 감탄을 삭힐 수 없었다.

잠시 넋 나간 듯 전망대 일대 전경에 취한 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가야 될 길로 진행했다.

전망대에서 나와 앞서 갈림길에서 해안둘레길로 향했는데 데크로 된 외길이라 길의 방향에 잡념을 투자할 필요 없었고, 오롯이 길섶의 풍경을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데크길을 지나면 바로 일반도로와 합류하는 구간인데 무조건 바다 근접한 길을 선택하면 됐다.

비 온 뒤... 하늘이 명쾌한 해답을 들려줬고, 그 해답으로 인해 의지와 걸음에 힘이 생겼다.

한눈에도 모자를 만큼 광활한 바다와 하늘, 소위 뻥뷰가 오감을 정화시켰다.

파도 소리 쥑인다!

바닷가 옆 내리막길로 내려오자 파도 소리에서 더욱 강렬한 생동감이 느껴졌다.

다시 뒤돌아보자 출발지였던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이 점점 움츠러들었고, 출발할 때 간직했던 기분은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해안둘레길을 걷다 보면 종종 어촌마을을 관통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자연과 삶의 흔적들이 뒤섞여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첫 마을, 입압1리에 들어서자 간간히 여행객들을 제외하곤 무척이나 평화롭고 고요했고, 마을을 채우는 건 오로지 바닷소리뿐이었다.

파도가 유난히 센 곳은 방파제를 뛰어넘어 길까지 흥건했다.

몇 번 젖을 뻔 했지만 날아오는 파도를 요리조리 모두 피했다.

마을 끝머리에 다다를 무렵,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해안둘레길 중간중간에 이런 푯말은 꾸준히 붙어있어 여간하면 길 잃을 염려는 없었고, 해안둘레길은 해파랑길 15코스와 16코스의 접점이라 덩달아 해파랑길 시그니처와 같은 방향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마을이 끝나고 처음으로 바다 위를 걷는 데크길로 올라섰다.

이틀 전과 전날에 태풍과 폭풍의 영향으로 미세먼지가 없는 청명한 날이라 수평선은 조각칼로 새긴 듯 매우 또렷했다.

바다 데크길을 지나자 또 다른 형태의 길로 변신했다.

바로 옆이 바다인데 가끔 파도가 거칠어지면 길까지 훌쩍 넘어와 자칫 신발이나 바짓가랑이가 홀라당 젖을 수 있겠다.

청명한 날에 청아한 동해의 파도가 길 바로 옆에서 출렁이는데 자연의 생동감이 넘쳐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영혼까지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고, 이대로라면 길이 끝날 때까지도 지치지 않을성 싶었다.

해안둘레길의 백미가 길옆 넘실대는 파도의 생생한 현장감이라 동전의 양면처럼 취약한 부분이기도 해서 얼마 전 태풍과 폭풍이 몰아닥쳐 길 곳곳이 유실되어 버렸고, 이제 막 복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길이 유실되고 바로 복구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다행히 해안둘레길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크길이나 견고하게 다져진 곳은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일부 구간이긴 하나 길이 뒤집히거나 생활 쓰레기로 뒤덮인 곳도 종종 눈에 띄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 인가가 없는 곳을 지나 입암2리에 들어서 지금까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출발하여 1.8km를 걸었다.

마을 회관 앞을 지나는 중, 적막한 포구의 모습에서 역시나 평온이 느껴졌다.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 중 백미가 되는 선바우와 힌디기 초입에 도착했다.

여기서 비교적 긴 바다 데크길을 걸으며 바다 해안 절벽의 기이한 형태와 빛깔을 마주하게 되는데 원인은 두 세대의 지각이 만나 현재 하나가 되어 기형적이란다.

데크길을 걷자 발자국마다 나무 특유의 통통 울리는 소리가 꽤 경쾌하게 들렸다.

길은 얕은 바다 위를 지나는데 좌측은 밀려온 파도가 생명이 없던 바위에 생기를 불어넣는 소리가 연신 들렸고, 우측은 기암괴석이 마치 거대한 하나인 것처럼, 그러면서도 부위마다 다른 옷을 입어 억겁 동안 조금씩 자라난 트롤처럼 모양, 빛깔, 시각적 질감이 일정하지 않았다.

여긴 바스라져 무너진 것처럼 보였고, 바위는 압축한 모래에 조약돌이 알알이 박혀 손으로 만지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물론 우측에도 바위가 드문드문 널부러져 있었는데 그건 끊임없는 파도의 부딪힘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무척 단단해 보였다.

소위 기암 형태는 길 양쪽 모두 있긴 해도 주로 우측에서 특이한 형상이 많았다.

물까치? 바다직박구리?

새 하나 날아와 응원해 줬다.

마치 모히칸 머리를 한 사람 옆모습 같았다.

화산 활동으로 발생한 지역인데 특히나 화산 성분의 백토로 형성되어 있어 흰 바위가 많아 흰 언덕, 흰덕 -> 힌디기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흥하게 되길 바라는 뜻으로 움푹 패인 동굴 안에서 열심히 기도를 드렸나 보다.

실제 불이 꺼진 양초가 보이기도 했다.

실제 이 구간을 지나며 여러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그냥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힌디기를 지나 잠시 몽돌 해변을 지나면 하선대 데크길이 나오는데 얼마 전 거친 바다를 실감케 했다.

하선대 데크길에 올라 걸어왔던 선바위 데크길로 뒤돌아봤다.

기암괴석 구간 위로 도로가 지나는데 도로에서는 이런 풍광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되짚어볼 때 역시나 도보 여행은 자연이 몰래 만들어 숨겨온 절경을 보여주는 가장 현실적이고 손쉬운 방법 아닐까?

하선대 데크길을 지난 뒤에야 잠시 깜빡하고 지났음을 알았다.

하선대는 바다 표면 가까이 수몰된 너른 바위에서 수면 위로 너르게 솟아오른 편평한 바위였다.

하선대를 지나 데크길이 끝나는 곳이 마산리 마을이었다.

 

마산리 초입 먹바우는 마산리 마을을 밟는 이들에게 작은 겸허의 꽃송이를 꽂아줬다.

흔하게 여기는 자연을 흔치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 아닐까?

그저 흔하게 취급당하는 것만 같아 아쉽긴 한데 그 교태는 흔하지 않아 반드시 시선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마산리 초입에 정박 중인 검둥바우를 지나면 한적한 마산리 마을이 펼쳐졌고, 길은 조금 날 것의 상태인 반면 파도는 잔잔해졌다.

해안의 모래사장과 돌을 퍼즐처럼 끼워 맞힌 길, 이어 데크길을 걸으며 무념을 익혔다.

가공하지 않은 해변을 지나면 익숙한 수순처럼 여느 평범한 어촌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을 자연에 살포시 얹어 바다에서의 삶을 반추시켜 거친 파도의 예봉을 살짝 꺾을지언정 완전 정복하려 들지 않았다.

터전에 대한 존중이자 복종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사유와 함께 바다 또한 그 삶을 인정하되 방관하지 않겠다는 논쟁의 결론을 길은 중재하고 협상하는 경계가 되었다.

굳이 그 길의 성격을 나누자면 보드라운 자갈이 채워진 흥환리 해변까지 해안둘레길의 2코스 선바우길이며, 거기서부터 대동배마을까지 가공이 거의 되지 않고 날 것의 상태와 고도의 편차가 심한 길이 해안둘레길의 3코스 구룡소길이었다.

허나 그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길은 모습만 달리할 뿐 여전히 바다와 삶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불굴의 의지로 생존하며 꿈틀거리는 교착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 하차할 수 없었고, 호기심을 거둘 수 없었다.

 

마산리 초입에 가건물 형태의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먹바우를 지나 꼭 지나가야 되는 경로라 천천히 걸어가는데 뭔가 익살스런 감시망을 느낄 수 있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반겨주는 댕이들이 있었다.

마산리 마을을 지나며.

마을 앞은 파도가 거세 사람들은 그 거친 성질머리를 달래는 방법을 선택하여 터전을 보존했다.

출발지에서 2.9km를 걸었는데 바다가 들려주는 꽤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산리 방파제 부근에 이런 구조물들이 있었다.

가설해야 될 구조물들일까? 아님 해일이나 파도를 막는 구조물들일까?

지속적으로 해안둘레길을 표시해 놓았고, 그래서 길 잃을 염려 없이 걸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산과 바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길은 교묘히 파고들어 확실히 구분해 놓기도 했고, 어울리게도 했다.

꾸불꾸불 파랑처럼 데크길이 길게 뻗어 해안과 함께 어울렸다.

마산리 마을을 지나 몽돌해변으로 내려갔다.

출발지에서 3.6km 지났다.

길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 외형도, 내면도 아울러 아름다운 길이었다.

몽돌해변이 끝나면 이렇게 해상 데크길이 분절된 길을 이어놓았다.

우측 바로 옆 언덕 위로 929 도로가 지나는데 예전엔 여기로 사다리길을 놓아 드문드문 출입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대략 아라힐 펜션을 지날 무렵이었다.

폭풍이 실어온 각종 부유물로 어지럽혀진 몽돌해변을 지나면 이내 해상 데크길이 기다렸다.

일부 데크길은 바위에 부딪혀 넘어온 파도로 젖어 있을 만큼 군데군데 파도는 거칠었고, 데크길 아래 자욱한 수초는 내가 좋아하는 톳이었다.

톳 무침은 맛도 좋지만 오돌토돌 씹히는 식감이 끝내주는 해초로 그게 맛있다는 걸 안게 얼마 되지 않아 발아래 그 많은 톳을 지나치며 군침도 흘렸다.

길이 위협받는 자리엔 데크길을 만들어 굳이 거칠게 맞서려 하지 않았다.

데크길에서 시원하게 탁 트인 동해 영일만을 관망할 수 있었고, 영일만 너머 포항을 대표하는 산업 시설과 도심지가 제법 또렷하게 보였다.

그만큼 청명한 대기를 만난 건 대박이었다.

해안둘레길 2코스와 3코스의 경계점인 흥환리해변 초입은 보드라운 몽돌해변이라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은 조금 달랐다.

표현하자면 마치 경쾌한 재잘거림이랄까?

파도가 밀어 몽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에 끊이지 않고 백그라운드로 파도 연주가 멋진 하모니를 이루었다.

흥환간이 해변 옆 데크길을 지날 무렵 길가 냥이가 쉬고 있었다.

꼬질꼬질 저 불쌍한 모습이라니.

출발할 때 아무것도 챙기지 않아 엄청나게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흥환마을은 그리 넓지 않은데 반해 해안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근래 들어서는 숙박 시설, 특히 펜션이 많았다.

한옥 사랑채 같은 집.

오래전 문을 닫은 것 같은 식당도 바다 전망의 나름 괜춘했다.

작지만 이쁜 가게.

흥환리마을을 지나 이내 발산리마을에 접어들어 이쁜 어린 삼색냥을 만났다.

어렵게 생존해 가는 가운데 경계심이 있긴 해도 극도로 예민하지는 않았는데 단지 가엽게 여길 게 아니라 단 한 번의 호의를 베풀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여전했다.

발산리마을 역시 아주 평온했고, 길을 걷는데 있어 힘든 점은 전혀 없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풍경은 급격히 변했다.

만약 이정표가 아니었다면 여기로 갈 수 있었을까?

목적지까지 1/3 정도 온 지점에서 길에 대해 살짝 의심이 들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거친 돌이 깔려 있는 해변을 따라 구룡소를 향해 걸었는데 해변 옆 바위의 모습은 앞서 선바위에서 처럼 두 시대가 뒤섞여 있었다.

어쩌면 길의 모습은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가까이 지나던 도로도 잠시 멀어져 해변이 유일한 통로인 구간이었다.

또한 장군바위가 있는 발산2리까지 꽤 긴 구간 동안 인가는 전혀 없었고, 마주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 길을 걷게 되는데 설사 선택의 여지가 있더라도 이 길을 결정했을 터, 이런 형태의 길이 해안둘레길의 시그니처이자 전 구간 통틀어 백미였다.

절벽 모퉁이를 돌자 거친 길이 나왔는데 각종 부유물까지 뒤섞여 걷기 쉽지 않았던 데다 가벼운 워킹화를 신는 바람에 말끔한 길이 아니고선 그 또한 걷기 쉽지 않아 자연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여기서 큰일 날뻔 한 게 무심코 밟은 나무에 못이 박혀 있었고 신발을 뚫고 발바닥에 살짝 느낌이 전달되었다.

만약 긴 못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했다.

파상풍은 정말 무서운 질병이다.

꽤 길고 걷기 힘든 구간을 지나면 다시 파도가 들썩이는 길이 나오는데 신발을 소금에 절이지 않을 거면 파도를 피해 얼른 지나거나 타이밍을 맞춰야 했다.

발산항에 가까워지면 잠시 도로와 만나고 도중에 이런 길이 유실된 구간이 길어 도로를 이용해서 걸어야 했다.

히말라야 고봉의 미니어처 같았다.

수해의 흔적으로 이정표가 뿌리째 뽑혔는지 간신히 지탱시켜 놓았다.

여기를 지나 장군바위까지 길이 유실되어 공사 중인 구간이 뒤섞여 있었고, 차라리 피하기 번거로워 도로에 합류하여 발산마을까지 걸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이름하야 장군바위라 칭해진 기암으로 바다에서 밀려드는 쪽빠리를 지키기 위해 늘 자리를 지키는 장군의 근엄한 모습 같았다.

그 위에 작은 소나무 하나 뿌리를 내렸는데 그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정취였다.

사람과 자연이 겹쳐진 발산항은 여느 어촌처럼 분주했다.

발산2리를 지나면 바다와 언덕 사이 좁은 지형에 터전을 마련한 인가가 보였고, 지형적 특성으로 도로도 좁았는데 다니는 사람들도, 차량도 적어서 인지 민가의 살림들도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인가로 가는 길에 자연 방파제인 바위에서 연신 파도의 격렬한 소리가 들렸다.

저 민가를 지나게 되면 구룡소 지나 대동배 마을까지 인가가 전혀 없었는데 아마도 군사 시설로 인한 영향 아닌가 싶었다.

최종 목적지까지 9.4km 남았다면 아직 반을 조금 못 온 셈이었다.

지금까지 8.3km로 추정되는데 이쯤에서 쓸쓸 허기가 밀려왔지만 쉴 곳이 마땅찮아서 좀 더 걷기로 했다.

길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마지막 민가에 다다르자 가옥과 바위 사이에 길이 있었다.

민가를 지나 한동안 공백지대로 주변 풍경이 급격히 변해버렸다.

마치 원시적인 길의 형태가 이랬다는 걸 항변하는 것처럼 길을 비롯하여 길섶 풍광은 가공이 거의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상태였고, 딛는 걸음도 자연적 힘이 들어갔다.

근데 난 이런 길에서 찐매력을 느꼈고, 무아지경으로 걸었다.

바다와 바위 절벽이 맞닿은 부분엔 인위적으로 돌을 엮어 길을 내긴 했어도 폭풍의 영향으로 대체적으로 균열이 생겨 점점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바위 절벽으로 접어드는 길을 따라가자 순간 세상과 격리된 진공 세계에 든 기분이었다.

대략 반 정도 되는 지점이라 여겨 이 모퉁이를 돌아 거대 바위 절벽이 만든 움푹 패인 공간에서 처음으로 바위 하나에 걸터앉아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오전에 국수집에서 준비한 김밥을 풀자 참기름 내음이 진동하며 급격하게 허기가 밀려들었고, 순식간에 물 한 병과 함께 김밥과 빵을 비워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인기척이 전혀 없을 만큼 바닷가 오지였고, 하다못해 차량 엔진소리나 생활 잡음조차 들리지 않아 음악을 틀자 다른 세상에 공간이동한 착각이 들었다.

무조건 걷기 수월하고 매끈한 길을 바란 건 아닌데 해안둘레길 3코스인 구룡소길은 예상 밖으로 가공이 거의 되지 않아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이 들기도 했고,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도리어 상상 이상으로 묘한 희열은 먼 길 달려온 보람을 뛰어넘어 다시 오게 되리란 확신까지 들어 그만큼 만족감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극대화되었다.

잠시 앉아 요기하려던 의도를 잊고 제법 오래 시간을 끌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들뜬 기분을 삭힌 뒤 가던 방향으로 재차 발걸음을 채찍질했고, 멀리 굽이진 해안길을 따라 마음속에서 싹튼 기대감을 띄웠다.

대부분은 설렘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피로감에 굴복되기 마련인데 해안둘레길은 걸음걸이가 늘어날수록 피로감을 뛰어넘는 만족감이 목표에 대한 의지를 더욱 응원했다.

왔던 만큼 다시 걸어가면 되는데 벌써부터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아쉬움을 걱정하고 있다니 참 청승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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