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웅크린 사적의 고독, 안성 죽주산성_20240829

사려울 2024. 9. 4. 19:23
죽주산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산성이다. 고려 1236년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해서 승리한 곳이다. 이 산성은 한양으로 통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 3중 성벽 구조이다. 내성은 조선 시대, 중성은 신라 시대, 외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되었다. 전체 둘레는 1688m 정도이다. 죽주산성은 시대별 성벽 축조 방법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출처] 죽주산성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죽주산성(竹州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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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여름, 죽주산성_20200816

자그마한 숲을 지나 한적한 산성 안에 또 다른 녹음이 웅크린 채 잊혀진 시간을 되새긴다. 졸고 있는 시계바늘을 흔들어 깨워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 바삐 달려가던 해가 서녘으로 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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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사우와 함께 퇴근길에 서둘러 찾아간 죽주산성은 4년 만의 탐방이었다.

장맛비가 유달리 많았던 그 해 여름, 며칠 차이로 여정을 꾸린 죽주산성과 망이산성은 수해의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지만, 잘 관리되었던 흔적이 인상 깊었고, 그와 더불어 죽주산성은 접근성도 좋아 제법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었다.

그런데 4년의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격세지감, 손바닥 뒤집듯 4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고, 가장 확연한 차이의 진원지는 관심과 관리였다.

물론 당시엔 일요일이라 방문하던 사람들의 수적인 부분에선 비교할 바 아니지만 도로 초입에서 이미 온도차가 확연히 달라 당시 좁은 길에서 마주한 차량들이 힘들게 교차하던 장면들과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량, 그리고 거기서 이어진 사람들과 더불어 정비된 주변과 말끔했던 죽주산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멀어진 관심을 방증하듯 무성한 풀과 칡넝쿨이 가득 뒤덮여 있었다.

물론 초입에 짓다만 흉물스런 빌라촌도 한몫했고, 말끔했던 잔디밭 대신 무성하게 자란 야생의 풀들이 그런 멀어진 관심을 대변했다.

그래도 굳이 죽주산성으로 오른 이유는 이제 곧 가을이 찾아오고 여름이 멀어지면 그 여름만의 혜택, 바로 낮의 길이가 짧아져 퇴근 후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거니와 청명한 대기와 가을 하늘 아래 흩뿌려진 구름 경관이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부터 따라붙던 짜증 나는 날벌레가 쫓아오더라도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며 성곽의 길에 오르자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금세 청명한 대기의 응답은 시선에 바로 와닿았다.

성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그리 이쁘고 단아했던 성 내부가 이제는 이렇게 야생의 흔적에 지배당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여울의 경쾌한 소리는 조금 둔탁하게 들렸는데 그게 느낌이라 치부하더라도 4년 전 기억과 너무 상이하게 변해버렸다.

무관심으로 인한 퇴보의 아쉬움을 그나마 만회할 수 있었던 건 이토록 청명한 대기 덕분이었다.

손을 뻗으면 어디든 닿을 것만 같은 착각, 회사 사우와 함께 이 자리에서 서서 청명한 자연의 장엄한 울림에 감탄했고, 굳이 둘레길처럼 끝이 맞닿은 길을 걷지 않아도 이런 감동으로 잠시나마 이런 일상의 망각이 비록 찰나의 스침이라도 영혼의 잔향은 길었다.

북녘 성곽에 외로이 서 있던 나무도 잊고, 성곽 위를 걸으며 무던한 걸음 속에서 발끝에서부터 전달되는 특유의 질감도 모두 잊은 채 한 동안 산성이 들려준 세상 이야기는 설사 벙어리가 되어도 필연의 한 조각이 되었다.

그렇게 남녘을 바라보다 왔던 길을 다시 밟아 발걸음을 돌렸고, 무성한 풀숲이 길을 가리더라도 아쉬울 게 없었다.

성문에 이르자 무심히 졸고 있는 성 안 여름이 적막 속에 산성과 함께 깊은 잠에 빠질 기세였다.

인공적인 게 때론 불친절하고 어색하건만 처음 대면에서 매끈한 단장이 마치 자연이 만든 역사의 기록과 같았고, 그 기록이 이제는 퇴색하여 더 이상 누군가가 남은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예전 성 안의 물 흐르는 소리가 죽주산성의 일부였다면 이제는 무심히 지나 원망처럼 들렸다.

성곽은 여전히 견고하게 하늘을 지탱했음에도 극단적인 대조, 산성이 보여준 세상은 넓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기까지 불편했던 과정들은 마치 세상의 흥망성쇠를 전위적으로 표현했다.

돌아오는 길에 헤어짐이 아쉬워 조용한 카페에서 짧은 삶을 이야기하는 동안 하루 해는 깊게 저물고, 어두운 조명 아래 부엉이는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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