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여름과의 숙연한 작별, 안성 칠장사_20240910

사려울 2024. 9. 18. 03:20
 

진중한 사찰의 저녁, 안성 칠장사_20240902

칠장사는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에 위치한 칠현산 자락의 고찰.조선 영조 9년(1773년)에 간행한 칠장사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으나 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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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방문했을 당시 무거운 구름을 떠받들던 산자락이 이번엔 진공의 하늘을 떠받들어 지루한 폭염의 일탈을 천상의 바다에 담갔다.

구름 한 점 없는 세상은 마치 우주를 동경이라도 한 건지 흙먼지로 날리는 소음은 사라지고 멍한 망울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한 주 지나 확연히 짧아진 대낮은 폭염만 남겨놓고 냉정하게 돌아서서 서녘 칠현산과 칠장산을 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남은 문 앞에서 칠장사로 향하는 걸음이 그로 인해 조급해졌건만 마음은 묘하게 느긋했다.

주차장을 서성이던 댕댕이는 낯선 사람을 맞이하려 하는 걸까? 아니면 세속에 찌든 육신에 불쾌함을 느꼈던 걸까?

문명의 소음조차 촉수를 뻗지 못하는 자리라 이리 차분한 세상의 휴식을 깨는 게 아닌가 싶어 애써 녀석을 부를 수 없었다.

주변을 크게 돌아왔던 길로 돌아가는 녀석의 뽀얀 얼굴은 사라진 구름으로 화장을 한 건지 무척 곱고 화사했다.

한 주만에 그 많던 이파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터널이 사라지고 하늘이 들어찼다.

티끌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목재 법당은 막상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대웅전 방향으로 트여 있어 법당이 아닌 창고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지 각종 기구들이 적재되어 있었고, 주차장에서 바라볼 때 특유의 고풍스러운 목재 건물이었다.

바로 밑에는 키가 작은 나무와 꽃이 있었는데 그중 분재한 나무의 형상은 토끼나 고양이를 염두해 둔 형태였다.

천왕문 사천왕상은 여타 사찰에서 강렬하고 험상궂은 표정과 달리 온화하고 귀염상도 엿보였다.

물론 그 발밑에는 사악한 무리들이 짓밟힌 상태는 마찬가지.

천왕문을 지나자 한 분이 마당을 쓸고 계셨는데 결국 동선이 겹치는 방향이라 이질적이거나 불청객 같은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가벼운 목례를 드렸다.

길 끝에 약수터엔 여전히 경쾌한 물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면 날파리들이 득달처럼 달라붙는 바람에 이번엔 멀찍이 쳐다본 뒤 바로 사찰 내부로 향했다.

법당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한 그루 나무에게서 가을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수 백 년을 버틴 사찰이 일주일 하고도 하루 지난 방문에서 무슨 동적인 변화가 있겠냐마는 일 년 중 네 번 방문하는 계절은 미묘한 변화를 예감했다.

나무에 드리운 가을이 조금 더 짙어지고, 하늘에 펼쳐진 가을 바다가 조금 더 깊어졌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염원의 형상인 석탑.

지난번 적당한 거리를 두고 꼬리를 흔들며 짓던 차우차우는 이번에 한잠 들어 지나는 발자국에도 반응이 없었다.

나무에 얼마나 강인한 영혼이 깃들어 있길래 이런 세월의 주름과 형태를 지니게 되었을까?

갈라진 껍질과 깊게 패인 줄기에 세상이 담겨있고, 생과 사의 수많은 교차가 각인되어 있었다.

암행어사 다리를 지나 나한전과 혜소국사비로 향하며, 길을 기웃거리는 은행나무는 얼마나 노란 꿈으로 가득 차 있을까?

가을에 노랗게 변하는 은행나무는 기나긴 역사를 관통한 성숙의 기록이자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번 가을엔 어떤 성숙의 결실을 보여줄까?

칠장사엔 비교적 선별된 나무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을과 나무를 논하자면 물론 지난해 가을 선암사의 정취를 잊을 수 없고, 나무가 지탱한 역사를 논하자면 부석사를 잊을 수 없다.

다만 최고만을 논하는 순간부터 역치는 걷잡을 수 없고, 지역마다 깨알 같은 존재들을 한 단면만 편협의 틀에 가두는 오류가 생겨 고유 명사처럼 각각의 존재들이 가진 풍미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칠장사는 잘 다듬어 정독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었다.

우뚝 선 고목과 조형물을 뒤섞어 나무의 시각적 풍미는 풍성해지고, 조형물의 빛바랜 흔적들은 적재적소에 시간의 흐름을 묘사하여 책갈피처럼 한눈에 잘 보였다.

여기 또한 하나의 오래된 나무 아래 벤치를 살짝 곁들여 전체가 하나로 보였다.

가을이면 계절이 어떤 그림으로 덧칠할까?

또한 황량한 겨울엔 어떤 붓과 지우개로 여백을 표현할까?

칠장사는 이렇듯 풍성하기보단 단순한 것들을 조합하여 다른 하나의 존재를 짜깁기했다.

독립적인 하나의 미약한 것들을 섞어 다른 유의미한 것들을 만든 칠장사만의 정취는 사찰 내부에 들어서 길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어렵잖게 읽을 수 있었다.

칠장사 가장 깊은 곳은 칠현산, 칠장산과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었다.

해가 저물고 여름이 저무는 칠장사의 소소한 전경을 바라보며 큰 변화가 없는 소소한 하루에 감사했다.

변화라는 큰 범주 안에 늘 내가 원하는 스릴이나 도전도 있지만 원치 않은 위험과 퇴보도 뒤섞여 있거니와 오롯이 내 선택과 의도와 동일 선상에 있는 건 아니다.

그로 인해 하루의 저뭄이 내 세포에 평온을 지각한다는 건 치열한 전장으로 비유하자면 꽤나 긍정적인 결과 아닌가.

이제 돌아가는 길에 필연인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우측 산으로 향한 소나무를 지나 곁길로 뻗는 호기심을 부추겼다.

소나무가 법당을 살짝 기댄 건지, 아님 법당이 소나무 아래 웅크린 건지.

하나의 표지석이 보였고, 바위틈으로 이어진 길이 보였으며, 그 틈을 품은 크나큰 나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자 금강 발원지란 표지석이었다.

금강 발원지?

내가 아는 금강 발원지는 장수의 뜬봉샘으로 알고 있었는데 칠장사에 금강 발원지?

아마도 금강으로 합류하는 미호강의 지류 중 하나인 칠장천의 발원지를 확대 해석한 게 아닌가 싶었다.

칠장사를 감상하고 시간에 등을 떠밀려 내려가는 길에 잠시 전에 만났던 것들과 작별을 고했다.

잠시 사이 하늘 지붕의 등불이 희미해졌고, 듬성듬성 박혀 있던 미약한 등불이 하나둘 불을 밝히던 순간이었다.

여기 또한 홀로 선 은행나무가 한껏 팔을 벌려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무의 결, 생명의 자취에 담담한 색을 뿌려 고결한 존재의 헌화곡이 되었다.

석양이 넘어간 뒤엔 하늘 등불이 지는 속도가 빨라져 이내 음지엔 어둠이, 양지엔 은은한 땅거미의 아쉬움이 자리를 대신했다.

뒤늦은 폭염에도 무심히 뿌려놓은 가을의 흔적이 느껴졌다.

천왕문을 지날 무렵 내려가는 산자락에 파수꾼과 같은 나무가 도드라졌다.

하나는 곡선의 뒤틀림을 미학적으로 표현했고, 그 옆엔 직선의 곧음을 미학적으로 표현했다.

천왕문을 뒤돌아서 내려가기 전엔 종교적인 믿음을 떠나 자연의 포용에 대한 화답으로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오래 머무르지 않았음에도 잠깐 사이 꽤 어둑해졌다.

그 심약한 빛에도 자연의 존재는 그들만의 주파수로 빛의 스펙트럼을 외쳤다.

산신각 아래 덩그런 나무와 벤치는 대하소설을 지향했다면 이 자리에선 간결한 시구가 어울렸다.

그만큼 끝나는 여름과 다가오는 가을을 은유적이면서도 복잡하게 펼쳐놓지 않았다.

점점 여름의 이파리가 노랗게 바뀌는 사이 노랗던 이파리는 땅에 가을을 뿌렸다.

어느새 반달이 하늘에 걸렸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앞서 지나쳤던 철당간을 찾았고, 그을린 철당간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옆 민가에 댕댕이가 짖어대는 통에 조용하던 일대가 댕댕이의 짖는 소리로 울려 이내 자리를 내어줬다.

광혜원으로 돌아왔을 무렵엔 완전히 깜깜한 암흑 천지가 되었고, 도서관에 주차를 하자 다른 차량 위에서 태연히 쉬고 있던 냥이 하나가 어렴풋이 보여 트렁크에 있던 밥을 꺼내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어떻게 알고 잽싸게 다가왔다.

깨끗한 자리를 찾아 밥을 한 주먹 올려놓자 조금 경계심이 있던 녀석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녀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쟁여놓은 밥을 내미는 일이었고, 녀석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두려움을 떨치는 일이었다.

이미 9월 중순의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임에도 여름 폭염이 견고하게 뿌리는 내리고 상대적으로 가을이 더디게 다가와 조바심은 극도로 커졌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열망과 달리 더욱 매몰차게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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