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자연의 신비와 여유의 한자락, 변산

사려울 2013. 7. 20. 15:57

망각되어 가는 수많은 시간과 시간들이 시나브로 잊혀짐을 얼마나 느끼고 있으며
또 얼마나 잊혀지는 기억들을 붙잡으려 할까요?
휘발성이 강한 감흥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낙수처럼 잡으려 할 수록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안타까움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 안타까움도 때론 감흥이 남겨 놓은 여운이 아닐런지...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마을, 하지만 곳곳에서 시간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세상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끊임 없는 발걸음이 오고 가며 거기에 연고를 둔 사람들의 활력은 여전한 곰소.
일행 중 한 친구의 고향이라 그런지 그 곳엔 한 사람의 요람기가 길 옆 자그마한 염전에 피우는 소금 결정체처럼 어느새 아련한 기억의 결정체가 내리쬐는 햇볕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생가도, 이웃도 그 자리에서 반가이 맞아 주며 자리를 뜰 때까지 뒷모습을 마냥 바라 보는 착각도 들게 합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시각에 충실하지만 사람의 뇌리에 박힌 아스라한 추억은 육감을 자극한다죠.
마을이 이 자리를 지키는 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여느 향기 보다 훨씬 달콤하고 지속적인 향수를 이 땅에 두게 되었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전나무 숲이 매력적인 내소사 길 입니다.
곳곳에 벗나무와 단풍나무도 가세하여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수직 벡터에 만 가지 포인트를 줍니다.
이렇게 올곧고 거대한 숙연함 이면에 단아한 이중적 매력을 숨기고 있는 산책로는 걷기만 해도 행복을 무차별적으로 전이시키는 파랑새의 둥지 같기도 합니다.
그 행복의 피톤치드로 문명에 찌들고 굳어진 감성을 치유 받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항상 북적대더라도 전나무 숲은 조금이라도 짜증내거나 귀찮은 기색이 전혀 없이 늘 푸른 표정일 뿐 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이나 구절리 전나무 숲과는 또 다른 마력을 지니면서도 그들을 비교하기엔 인간의 얇팍한 깨달음에 대한 비소와 어리석음의 결론만 도출될 뿐입니다.


내소사에 첫 발을 내딛는 설레임이 단풍잎 너머 희미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마치 그 설레임을 단풍잎이 반기듯 손짓하는 것 같죠.




어른이라고 표현한 당산나무는 항상 여행자의 시선과 발걸음을 잠시 묶어 둡니다.

허나 그 당산나무를 기른 더 큰 어른은 바로 내소사를 태곳적부터 지켜 보던 관음봉이겠지요.
그 관음봉은 당산나무가 잠시 쉬어 가게 한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바라 보며 미소를 짓는 듯 합니다.
내소사를 둘러싼 형상이 마치 미꾸라지를 움켜쥐는 게 아니라 손아귀로 그냥 뜬다고 할까요?
탐욕보다 약해 보이지만 더욱 위대한 너그러움의 향연이 관음봉 산기슭에서 개울을 타고, 산능선을 타고, 나무 뿌리를 타고 사시사철 내려와 내소사를 따스하게 품고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다시 온다면 그 온화한 자태에 대한 확신은 강요하지 않더라도 불변의 법칙처럼 확고할 것입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작품, 채석강입니다.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면서 내소사와 더불어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 머무르는 곳입니다.
태초에 단조롭던 암반을 지하세계에서 끄집어 낸 후 페스트리를 굽듯 결결이 얇게 잘라 입힌 조물주의 뛰어난 감각을 찬탄해야 하나요?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채석강의 풍모는 대낮에 보는 것과는 다른 우아함이 서려 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곳이라 밀물에 밀린 바닷물이 가득 들어차 있어 가까이 가 볼 수는 없었지만 이런 작품은 손길로 인한 훼손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또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 볼 때 그 전체적인 미려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두 번째 사진은 파노라마로 찍었는데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다니는 섬으로 착각이 되어 집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해류가 흐르는 대로 바다 위에 떠다니며 세상 곳곳을 둘러 보다 언젠가부턴 변산의 자태에 반해 머물러 이제는 호기심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바람에 영원히 이곳에 자리를 터 버린 건 아닐까요?



마지막 사진은 변산이 아닌 홍성에서 찍은 예전 흔하디 흔한 간이 버스정류장입니다.

고요하기만 한 시골 밤에 외롭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잊혀져가는 정겨운 풍경이 아닐까요?
그 정겨움을 이불 삼아 홍성에서의 밤을, 이 여행의 유일했던 밤을 포근하게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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