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가 자연의 나이보다 유구 하겠냐마는 문명이 잉태되고 제대로 된 역사를 기록 하면서 태초라는 표현도 써 봄직한 징표 중 하나, 백제와 신라의 경계와 관문이던 라제통문은 꽤나 장엄한 시간이 뚫어 놓은 바위 터널이다.
수 많은 시간이 관통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발자취들이 쌓여 매끈해진 흔적은 통렬하게 퍼붓던 비마저 실어 나르던 바람 조차 이 유구한 경계에 서서 잠시 숙연한 고개를 떨구던 곳이다.
휘영청 맑은 대기를 뚫고 하염 없이 쏟아지던 햇살을 외면하며 잠시 나마 이 자리에 서서 잊혀져 버린 기억들을 되새김질 하기엔 아무런 거리낌도, 망설임도 없었다.
언젠가 잊혀질 시간들이 있는 반면 그 이면엔 바위에 새긴 문자보다 더욱 굳건하게 각인될 시간도 있거늘, 먼 길을 달려온 보상처럼 가슴 벅찬 사념 덩어리에 한 동안 발걸음이 철석처럼 길에 붙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런 여행의 가르침이 관대한 스승이 되던 순간이다.
라제통문이 백제와 신라의 경계 였다면 이 자리는 신라의 시간이 묻혀 있는 곳이다.
반면 여긴 백제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자리다.
숙소를 나와 짧은 여행길을 되돌아 보며 당초 목적지던 이 자리에 한참을 두리번 거렸다.
평일이라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역사적인 감흥에 빠져 있던 걸 보면 나 혼자만이 이 자리에 크나큰 의미로 그친 건 아닌가 보다.
좁은 터널을 서로 교차하는 차량과 잠시 뜸한 사이 이 짧은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의 궤적을 그려 보면 상당히 복잡한데 때마침 강렬한 여름 햇살을 식히기에 적당한 세찬 물소리는 먼 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에 대한 배려 같다.
천연 요새와 장벽인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의 대립과 주인의 교차가 있었을까?
사람을 사뭇 경건해지게 만드는 역사적인 유적지다.
라제통문 일대를 둘러 보고 무주로 들어와 산책을 즐기며 첫 발자국을 내딛는 가족의 신기한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말로만 듣던 무주에 별 기대 없이 그저 손을 잡고 첫 걸음을 내딛던 건조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하물며 길가에 피는 야생화 한 포기에도 신중한 시선을 어찌 잊을까?
하나의 자연이 만들어낸 게 아닌 모든 자연과 여러 흔적들이 쌓여 만들어낸 작품 같은 무주를 다니며 어느새 가족들 또한 나처럼 치유의 명현 반응을 겪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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