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류봉에서 석양이 넘어갈 무렵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가족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서울 인근이라 함께 차로 이동할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해 황간역에서 덜컹대는 무궁화호를 이용하기 위해 배웅에 나섰다.
황간까지 왔는데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동해식당에서 다슬기전과 탕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열차 시각에 맞춰 황간역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시골 기차역이라 규모에 비해 너른 광장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많은-대략 10명 이상?-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나머지 그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은 마중을 나왔다.
기차역에 들어서기 전, 광장에 유물과도 같은 것들이 멋진 조경의 일부가 되어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는데 한적한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구시대의 상징인 시골 열차역에 다다르자 석양은 더욱 붉그레하다.
열차 도착 시각이 가까워 플랫폼을 밟자 시골역 치곤 꽤 많은 사람들이 각양의 표정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곳을 바라보며, 배웅 나온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플랫폼 위에 소박하게 꾸며진 소품들은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세월의 흔적들을 차곡히 채우며, 허투루한 게 하나도 없이 모두 정성과 고민의 정갈한 결과 뿐이다.
플랫폼 대합실은 정겨움과 시대의 향수가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방치된 게 아니라 지금까지 정성껏 잘 관리되어 아주 깔끔하다.
그래서 모처럼 마주치는 역은 모든 것들이 정겨웠다.
이런 꾸밈을 누가 했을까?
열차와 손님은 점점 발길을 돌리지만 충만한 정겨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넘쳐간다.
세월에 밀려, 외면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시골 기차역이지만 애정과 정성의 땀방울이 차곡히 쌓여 있는 황간역은 어느 하나 무심한 것 없이 칸칸이 정겨움으로 채워져 있다.
플랫폼 대합실은 현대의 깔끔함과 과거의 정겨움이 합쳐져 기차를 타지 않아도 그저 이 공간에 잠시 머물며 덜컹이는 열차를 기다리고 싶어지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무심할 것 같지만 화단의 흙을 재워 놓은 돌 하나도 많은 땀과 고민의 흔적이 보여 섣부르게 단정 짓거나 넘길 수 없었고, 마침내 무궁화호가 들어와 이 작은 플랫폼에 잠시 멈췄을 때 짜임새 있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배경 음악처럼 잠시 잊고 있던 덜컹이는 소음을 연주한다.
열차가 빠져 나가고 플랫폼을 밟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떠나 텅빈 공간이 되었음에도 플랫폼을 가득 메운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고, 싸늘한 정적과 전혀 다른 온기를 큰 봇짐에서 하나씩 풀고 있을 때 이 정취를 뒤로 하고 빠져 나오는 기분은 간절기의 싸늘한 대기 가운데 포근한 털실이 간직하고 있는 체온의 촉감과도 같았다.
아주 잠시지만 길게 늘어선 여운은 끊이질 않던 특별한 체험이자 모처럼 느껴보는 회상이기도 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역산하기로 황간역을 운영 중인 분들 감성은 재벌일 거야.
약해져 버린 빛에도 반영 사진은 참으로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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