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금요일, 비를 맞는다는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정신 줄 놓았거나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난 가끔 어설프게 비가 내리는 날, 가방 속에 우의를 챙기긴 했어도 내리는 비를 어느 정도 맞다 흠뻑 젖을 만큼 내리거나 오래 노출이 되었다 싶을 때 그제서야 우의를 꺼내 입는다.
왜냐구?
이상하게 비나 눈 내리는 날 왠지 센치해지데~
낙엽 끝이나 가지에 매달린 빗방울들도 이쁜데 꽃러럼 화려,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숭고, 영롱한 아름다움이 맞겠다.
빛이 굴절된 이 빗방울 보면 엥간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건 내 취향이겠지.
이른 새벽 여명이 밀려드는 동쪽 하늘이 결 고운 빛의 오렌지 컬러가 내 방의 창 너머에 고요한 파동을 그린다.
뒤척이던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사진으로 담아 뒀는데 카메라 설정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다르구만.
마지막에 화사한 오렌지 빛깔 위로 얇은 잿빛을 뿌려 놓은 듯한 사진이 가장 현실과 가까운 거 같고 나머지도 나름 눈이 즐겁긴 하다.
느지막이 낮에 동탄복합문화센터 뒷길로 해서 둘레길을 버리고 반석산 정상으로 향한 길을 선택한 건 곧 쏟아질 비가 제법 굵어질 것만 같아 유연하게 대처하고 정상을 넘어 오산천 산책로를 한바퀴 돌기 위함이었다.
오산천 산책로 한바퀴면 걷기엔 꽤 긴 코스인데 둘레길을 돌다 보면 체력의 배터리가 방전 되어 도중에 줏대 없이 돌아설 바엔 처음부터 무리하게 잡지 않았다.
비 예보 때문인지 반석산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반석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왕성하게 자란 이끼의 한 무리를 보아하니 구수곡에서 저희끼리 모여 조잘대던 왕성한 이끼 무리와 환경 자체가 그들만의 세상으로 짜여진 이끼계곡이 생각난다.
(원시적인 겨울, 구수곡 휴양림_20150124, 첩첩한 이끼 계곡과 만항재_20161015)
반석산에서 생태터널을 넘어 노작호수공원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개망초가 지천에 널려 있다.
특유의 그 매캐한 향은 이미 눈에 보이는 꽃을 넘어 사진까지 가득 채울 기세였다.
반석산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노작호수공원엔 드물게 나마 산책을 즐기고 있다.
하늘에 두터운 구름이 연신 몰려 오건만 그래도 산책 다닐 사람들은 그런 구름에 아랑곳 않고 한 두방울 떨어지는 비에 이미 우산을 쓰고 갈 길을 바삐 가는 중이다.
오산천을 따라 걷던 중 오랜 만에 습지에 난 길로 걸어 본다.
조카 여럿이서 같이 장난 치며 웃고 떠들던 기억이 이 자리에 고스란히 묻혀 있을 줄이야.
2009년에 동탄으로 둥지를 틀면서 조카 녀석들을 뻔질나게 이곳으로 데려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가슴을 내어준 정든 곳이라 아주 가끔 지날 때마다 그 당시의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공명 되어 소곳이 웅크리고 있던 기억을 상기시켜 준다.
그 아이들은 이제 훌쩍 커서 이제는 이 자리가 작게만 느껴지겠지?
기흥동탄나들목까지 뻗어있는 이 인공 개울 산책로는 예전처럼 물이 꾸준하게 흐르는 대신 비가 내릴 때 빗물들이 모여 오산천으로 흐르는 길목이 되었고 그 잔해들이 땅에 스며 들어 무성한 풀이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 준다.
인공 개울 산책로의 종착점이 되는 기흥동탄나들목 부근.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같지 않다는 듯 인공수로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의 끝이기에 돌아서 다시 동탄 남쪽을 향해 걷는데 울분이 쌓였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우의를 끄집어 내어 온 몸을 덮었는데 후드 쪽에 부딪히는 굵은 빗방울이 제법 듣기 좋은 금요일 저녁 산책은 이제 절정의 여름에 대한 서막을 넌지시 알 수 있었던 자그마한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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