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니께서 큰 딸 집으로 며칠 동안 가 계신다길래 동탄역에 SRT 좌석까지 모셔 드릴 찰나 젠장 맞을 열차는 개미 똥꼬 만큼만 대기하고 있다 바로 출발, 하는 수 없이 다음 정차역인 대전역에서 내려 동탄역으로 가는 SRT를 타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이튿날 2일 동안 시간이 주어져 무얼할까 고심에 빠졌다.
맛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건 당연히 오마니와 같이 해야 되니까 대충 차려 쳐묵하고 동탄이나 한바퀴 산책할까? 아님 자전거 타고 용인, 오산으로 둘러 볼까?
차라리 가까운 휴양림으로 가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자.
아쉬움이 남으면 조바심의 촉각을 자극하여 꼭 해소하지 않으면 미련의 꼬리는 점점 길어진다.
보름 전 과감하게 용기 내어 방문했던 조령산 휴양림은 크나큰 기대감 없이 그저 하루를 숲속에서 보낸다는 정도의 약소한 의미만 부여 했고 마치 시간 때우려고 봤던 영화가 예상치 않게 찰진 재미를 준다면 더욱 묵직한 성취감 처럼 기대 이상의 여운이 꽤나 감동적이었나 보다.(언제나 흐림, 조령산 고갯길_20170613)
때마침 조령산 휴양림에 지난번 묵었던 통나무집 바로 밑에 빈 방이 있고 아직 대낮이라 다람쥐가 점프하는 날렵함으로 살림살이를 후다닥 챙겨 바로 출발, 지난번 욱신하게 길을 헤맸던 만큼 이번엔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자신감까지 부풀어 올랐다.
게다가 처음 방문은 야심한 밤이었다면 이번엔 대낮 이니까 만만한 싹으로 본거나 마찬가지다.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지난번처럼 충주-괴산이 도로 공사로 특정 구간은 거북이걸음으로 답답하게 진행되었고 이번에도 똑같이 괴산나들목에서 내려 수안보-조령산 경로를 택했건만 괴산에서 빠져 방향은 잘 잡았는데 워째 차가 산으로 간다냐?
뒤 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 머릿속 계획은 새로 난 도로 였고 차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구길이구만.
그렇담 이정표를 이렇게 표시해 놓지 말고 새로 생긴 도로를 우선적으로 '수안보'라 표시해 놓지!
지도상 결국 수안보로 연결되는 도로 인데다 시간도 많고 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라 그냥 달려 달려 결국 수안보에 다다랐건만 거리나 시간상으로 한참이다.
이제는 헤맬 일 없이 잘 아는 수월한 길이라 고고~
앞전에 워낙 늦은 시각에 지나 가느라 그 자태를 뵙지 못했던 산 가족들로 좌측 봉우리가 신선봉, 우측 봉우리가 마패봉 정도?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 별관의 마당(?) 앞으로 지나가던 길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숨가쁘게 달려와 가득찬 숨을 고르며 늘어선 산을 잠시 바라다 봤다.
강렬한 햇볕과 딱딱하게 늘어선 고속도로의 이정표며 가로등에 지친 눈이 시원해지고 기분도 전환되는 장면이다.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 별관에서 조금만 올라오다 보면 늘어선 식당을 지나 이내 조령산 휴양림이 나오고 체크인 후 예약했던 방으로 곧장 들어와 통나무집 앞에서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짐을 추스려 방으로 들어선다.
집은 나이가 좀 들어선지 얼핏 보이는 외부도 그렇고 내부 집기나 인테리어도 낡은 감이 있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는 고로 대충 산책길에 필요한 짐만 챙겨서 후딱 나와 지난번과 비슷한 코스를 답습하되 이틀 중 밤 늦더라도 오늘 하루만에 고갯길-문경온천-점촌 시내를 거치기로 했다.
그럼 내일 느긋하게 집으로 갈 수 있어 맨날 빚쟁이한테 쫓기듯 마지막 날 벼락치기에 따른 후유증이 없응께로~
통나무집에서 나와 지난번과 같이 산길을 이용하다 한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그 길을 이용하기로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람쥐가 내 앞을 가로질러 가길래 옳다구나 싶어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한걸음 앞에 독사가 꼬불꼬불 다람쥐가 뛰어간 방향으로 급히 기어가는 바람에 심장이 벌렁거려 그 길로 도저히 진행 불가, 관리사무소까지 내려와서 처음부터 한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독사도 나를 보고 놀라서 급히 지그재그로 기어가고 나도 독사를 보고 놀라서 황급히 뒷걸음질 쳤는데 그리 큰 뱀이 아닐지언정 나무가 빼곡히 우거진 숲길을 어떻게 걸어갈 수 있겠나?
게다가 비가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은 수분으로 촉촉하고 우거진 나무의 낙엽이 길 위를 덮고 있어 뱀이 살기 안성맞춤인 환경이라 그 길로 나아간다는 게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외엔 지난번처럼 산책 중인 사람이 거의 없어 관문까지 딱 1팀만 마주쳤을 정도.
길 바로 옆, 어느 정도 높은 곳에 돌다리는 지난번에 산책 했던 옛 과거길이 보인다.
두 길이 서로 평행으로 뻗어있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서로 가까워졌다가 조금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옛길은 좀 더 구불정하게 생겨 먹었는데 결국은 관문에서 만날 운명이다.
이번엔 옛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출발 시점에서 만난 뱀을 보곤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길 초입에 뱀과 벌을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있는데다 숲은 통나무집 부근보다 더 우거져 있고 낙엽은 더 두툼해 뱀이 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일 수 밖에 없다.
아쉽지만 뱀이 겨울잠 자는 늦가을 즈음이나 옛길을 밟아 보기로 하고 지금은 숲향이 가득한 바람 내음에 만족하기로 하자.
역시 여름이 더 익어서 공기는 좀 더 습하고 더웠지만 여전히 우거진 나무숲의 산바람이 더위를 느끼기 전에 땀과 넘쳐나는 체열을 낚아채 버렸고 관문까지 힘 들이지 않고 썰렁썰렁 오르며 조금 키워 놓은 음악과 숲을 쓸고 가는 바람소리와 함께 발걸음은 제법 경쾌했다.
여기도 다람쥐가 많아서 어렵잖게 지나다니는 요 앙증맞은 귀요미들을 볼 수 있는데 처음 마주치면 개거품 물듯 달아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멀찌감치 벌려 놓고 안정권이라 생각하면 얼음 놀이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 동태를 살피곤 다시 걸음아 날 살려 줍쇼.
가던 길에 이렇게 통나무로 만든 계단식 수로도 보인다.
딱히 이렇게 만들어야만 되는건 아니고 휴양림의 상징성과 임산물 판매장이 가까워 컨셉에 맞는 데코레이션 정도.
괴산 방면에서 관문까지 다다르면 이렇게 옛길과 만난다.
한 눈에 봐도 산책해 보고픈 욕구가 솟아나는 분위기지만 길바닥을 보면 뱀이 지내기 최적의 조건을 갖춰 촉촉하고 폭신해 보인다.
관문 앞 공원에는 길 한쪽에 돌을 성벽처럼 쌓아 올렸는데 거기에 다람쥐가 특유의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다 나와 마주치자 꽁지에 불이 나도록 도망간다.
저 탱글한 궁뎅이 좀 보소.
문경 방면에서 관문을 오면 넓직한 잔디밭에 시야가 트여 있는데 반해 괴산 방면은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공원을 꾸며 놓았다.
딱히 어떤 테마가 명료하게 표현 되었다기 보단 산중의 빼곡한 신록이 보기 좋다.
이번 산책의 목적지인 관문 출현, 뚜둥!
며칠 장맛비가 신나게 왔다고 길에 실여울 자국이 선명하다.
장마철의 변덕스런 일기로 이 날도 한바탕 비가 퍼부을 조짐이 보여 가뜩이나 조용한데 지난번보다 더더욱 조용하다 못해 문경 방면은 꾸준히 발걸음이 이어지던 여행객들 조차 이날은 거의 끊겼다.
문경 방면의 널찍한 공원을 봐도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관문에서 보면 좌측에 카페 겸 식당에서 목 놓아 짖어 대는 개자식 만이 이날 따라 텅빈 공간을 독식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가련다.
관문의 늠름한 자태.
광각렌즈 교체가 귀찮아 걍 아이뽕으로 찍어 버렸다.
하루 해는 서산으로 점점 넘어가던 중 관문 너머 괴산 방면에서 구름을 헤집고 다닌다.
문경 방면으로 좀 걸어 내려가는데 집요한 개자식이 쉴 틈 없이 짖어 댄다.
쥔장이 뭐라 그러던 말던 절라리 짖어 대는 통에 더러워서 왔던 길로 내려 가야겠다.
서쪽 괴산 방면에서 서산으로 열심히 달리던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추기 시작한다.
관문 안에서 괴산을 바라 보면 좀 전까지 흐리던 날이 변덕으로 죽을 끓여 먹었는지 햇볕이 쨍 하다.
뒤를 돌아서 문경 방면으로도 한 컷.
특이하게 이 날은 혼자 뿐이다.
모든걸 태울 듯한 저 따가운 햇볕 좀 보소.
이제 문경새재에 충분한 시간을 보냈으니까 온천으로 가서 몸이나 풀어 볼까나?
관문을 벗어나 조령산 휴양림으로 내려가면서 뒤를 돌아보자 서서히 관문이 나무의 품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한길과 멀어졌다 어느새 가까워진 옛길은 언제 봐도 숲과 함께 한다.
열심히 어딘가를 돌아다니던 다람쥐 한 마리가 나를 보곤 걸음아 날 살려줍쇼 하며 급히 도망치다 돌 사이로 쏙 들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미동도 하지 않은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난 얼른 갈 길을 갈 테니 이제 네 편한 대로 하렴.
임산물 판매장이 가까워지자 거기서 틀어 놓은 음악 소리가 들려 내 음악의 볼륨을 줄이고 잠시 저 벤치에 앉아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겨 음악을 감상했다.
386 음악이 흘러 나오는 걸로 봐선 쥔장이 중년 이상의 연세이신 듯.
곳곳에 직접 꾸며 놓은 꽃밭이 쥔장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알 수 있다.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 오는 길도 거의 천천히, 그러나 거의 쉬지 않고 휴양림 관리 사무소 부근에 도착했고 다시 이 길을 걸어 통나무집으로 가서 차를 몰고 문경으로 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자갈이 깔린 이 길은 수분도 빨리 마르고 무엇보다 촉감이 까칠하고 울퉁불퉁해서 뱀이 싫어하는 길이라 마음 놓고 걸을 수 있었다.
아직도 뱀 타령하는 것 보면 그 때 내가 좀 놀랐나 보다.
휴양림을 출발하여 연풍에서 매끈하게 뚫린 3번 국도를 타고 문경으로 가다 보면 터널을 지나기 전, 이화령을 지나는 구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산과 산 사이 움푹 들어간 부분이 이화령으로 거기에 들어선 휴게소에서 바라 보면 괴산이든 문경이든 시원하게 트인 전망이 매력이다.(봄과 함께 청풍호로 간다_20150320)
이화령을 지나 문경새재 이정표를 보고 도로에서 빠져 나가야 되는데 행여 좀 더 진행하다 보면 문경온천이 있는 문경읍과 가까운 나들목이 있을까 싶어 계속 진행 했건만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 나들목으로 연결되는 도로 외엔 한참을 따라 가야 되더라.
하는 수 없이 거기서 차를 돌려 다시 이화령 방면으로 거슬러 올라 오다 문경읍에서 내려 온천을 들렀던, 어김 없이 길을 헤매던 착오가 발생했지만 어차피 길이란 게 실수를 하면서 방향 감각을 익히므로써 모르던 길이나 지형지물을 알게 되고 그 이해의 출발이 곧 여행의 가장 큰 준비를 끝내는 거다.
아무런 연고 없는 괴산이나 문경에서 길을 찾던 중의 실수로 인해 나는 결국 부근의 지형을 습득할 수 있었고 앞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문경온천에 도착할 무렵 시각이 7시가 훌쩍 지나 9시까지 운영하는 온천에서 만끽까지는 할 수 없었고 게다가 단체로 입욕한 청년들의 소란은 안정을 통해 피로를 풀겠다던 당초 의도에 조금 빗나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인 도시 생활을 잠시 등진다는 의도로 본다면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온천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해는 지고 가뜩이나 시골 등불이 빨리 꺼지는 마당에 저녁 식사를 할 마땅한 곳은 더더욱 없어 다시 3번 국도를 타고 점촌으로 가서 간단히 요기 후 조령산 휴양림의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시간이 흩어지는 바람처럼 뿔뿔이 흩어지고 깊은 밤까지 음악과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치 요람기에 듣던 자장가인 양 빛을 향해 미친듯이 파고 드는 날벌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온천에서 마저 떨치지 못했던 피로는 시나브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로써 올 여름이 거의 끝나기 전까지 나의 혼행은 잠시 숙면 모드로 접어 들게 되고 피서철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 뒤 잔뜩 웅크렸던 욕구를 크게 점프하며 도시를 탈출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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