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곡을 알게 된 건 작년 가을이다.
가을 바람이 들어 불영계곡 갔던 길에 숙소를 덕구온천호텔로 잡았었는데 거기서 울진 방면으로 진행하던 중 평소 좋아하는 통나무집들이 `총각! 우리한테 관심 좀 갖지?'라고 말하듯이 쳐다 보고 있지 않은가?
굳이 새로 생긴 호기심을 억누를 필요 없어 웹을 통해 서칭을 해 봤더니 아홉개의 개울이 합쳐지는 골짜기라?
그만큼 계곡이 깊고 다채롭다고 했다.
바로 예약 들어갔더니 웬 걸? 이미 12월꺼정 주말 휴일은 완전 매진이다.
그럼 1월 도전을 해 보기로 하고 12월 예약 가능일자에 들어가 봤더니 이날 몇 개가 눈에 띄인다.
앞뒤 잴 겨를 없이 바로 예약 때리고 트래킹 멤버 호출.
전부 나 만큼 좋아하는 걸 보고 아주 흡족하게 예약했던 그 날을 기다렸고 당일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날아 갔다.
밤 늦게 도착했으니 금요일은 여독을 풀겸 간단한 반주에 먹거리로 끼니를 채우고 바로 잤는데 겨울이라 춥다고 해도 여긴 넘무넘무 춥더라.
난방을 틀고 한참이 지나도록 실내 추위가 끝까지 버티고 있는데 하는 수 없이 두꺼운 패딩을 입고 커피며 식사를 했으니 여기 날씨도 한 성깔하지만 단열 문제도 있다.
그래도 아무런 불평불만이 없는 걸 보면 이런 문제 정도는 여행 중에 부딪히는 흔하디 흔한 문제로 치부하는 가 보다.
다음 날 기상해서 우리가 묵었던 통나무 집 앞에서 내려가는 길로 한 컷.
여기가 가장 안 쪽 높은 자리였나 보다.
차는 길 따라 쭉 내려 가면 모퉁이 지나 바로 아래에 있어 어렵지는 않았다.
여기가 우리집~
나즈막한 산의 숲에 둘러 싸여 있는데 낮다고 해도 바로 옆 비탈들은 상당히 가팔랐다.
나름 풍성한 끼니를 채우곤 짧은 겨울 낮에 훑어 봐야 되는 고로 재촉하듯 구수곡 트래킹에 나섰다.
계곡 트래킹을 시작하고 첫번째 만나는 다리.
이런 다리가 아홉개?가 있다고 했던가?
일행이 일전에 한 번 다녀왔었고 1시간여 트래킹을 해 봤었는데 계곡이 상당히 깊다고 한다.
이제 다리 하나를 만났으니 한참을 더 가야 된다.
내린 눈이 아니라 아마 서리가 맺히고 맺혀서 이렇게 알소금을 뿌려 놓은 거 같은 결정체가 맺혔을 듯.
드뎌 1교를 건너는데 처음엔 설레고 체력도 충분해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갔으나 나중엔 세상 만사가 귀찮아져 점점 찍어 놓은 사진도 줄고 성의도 없어지는게 보인다.
벽 보고 1분 반성해야지.
이제 2교라고 적혀 있는 다리에 보면 `흔들지 마세요'라고 경고문이 있다.
그리 흔들리지는 않는데 여기서 부터 행여나 흔드는 습관은 들여 놓으면 안 되는게 워낙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이라 사고가 나면 대책 없을 거 같다.
계곡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휴대폰도 통화 이탈이 되니까.
이렇게 길은 시종일관 물길을 따라 올라간다.
문제는 다른 유명 휴양림과 달리 상류로 갈수록 길인가 의심이 드는 기로점이 많아진다는 거.
특히나 나무가 많고 그런만큼 낙엽이 어마무시하게 쌓여 있어 길도 길이지만 잘못 디딜 경우 소복히 쌓인 낙엽 밑이 흐르는 물이 있더라.
지금은 양반이여.
계곡은 지금 봐도 좋다.
오를 수록 강폭도 좁아지지만 골짜기도 넓직한 장소가 점점 줄고 나무도 무성하고 낙엽도 많은 대신 길 윤곽이 점점 희미해 진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 만땅에 의욕도 늘어난다.
낙엽이 많고 생각보다 두텁게 쌓여 있는데 이제 펼쳐질 경관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다.
상류 방면으로 강 옆에 트래킹길이 위태롭게 뻗어 있다.
그나마 여긴 이렇게 가이드라도 있으니 다행.
여기 수심이 꽤 깊은데 낙엽 반, 물 반이라 언뜻 봐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워낙 울창한 원시림이라 낙엽도 어마하겠지?
겨울을 대표하는 빙벽(?)
1월 하순이라 나무는 봄을 준비하려는지 눈에서 작은 새로움이 보인다.
여긴 물보다 낙엽이 더 많을 거 같다.
이렇게 낙엽이 많으니 깊이를 종잡을 수 없어 무셔!
도중도중에 고도차가 꽤 되는 구간도 있는데 여긴 5나 6교 정도 될 듯.
점점 숨어 들어가는 개울이 보인다.
얼핏 봐서는 길도 숨은 그림 찾기하는 거 같군.
드뎌 7교를 만났다.
건너기 전인데 다른 다리와 좀 다르게 굵직한 철골이 드러내 놓고 다리를 지탱하고 계신다.
이유는 여기가 좀 길고 고도차가 심한 곳이거든.
지나와서 보니 심하게 흔들리고 옆에 동화줄은 삵아서 부스러질 거 같어.
좌측에 좁은 골짜기와는 달리 넓직한 웅덩이가 보인다.
허나 깊을 거 같아서 관심 끊어야지.
7교를 건너니 이런 완만하고 단조로운 길이 나온다.
오는 도중에 물과 길이 만나는 곳에서 낙엽 두툼한 곳을 밟았더니 바닥이 닿지 않을만큼 다리가 쑥! 꺼져서 개거품 나오는 줄 알았다.
그 이후로 낙엽은 저얼대 안 믿기로 했스.
흙과 바위가 그나마 믿을만 한데 감히 위장을 해서 내 족발을 탐내는 이 녀석들이 무서워 이 계곡 트래킹이 끝날때 꺼정 트라우마가 따라 오두만.
이게 아마 8교일거야.
꽤 높은 곳에 다리가 있는데 여기까지는 그래도 수월하게 왔다.
걷기는 좀 했지만 그까이꺼!
골짜기에 길을 신경 쓴 반면에 여느 오솔길과 달라 전혀 지겹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길과 바위들이 하나 같이 다른 모습인데 그 이채로움에 걸어오는 내내 우린 감탄사를 따발총으로 쏘아 댔으니까.
다리를 건너면서 상류 쪽을 바라봤다.
여름에 물놀이 하기 딱 좋겠는데~
내가 봐 온 이끼 중에서 거인 이끼 군락지라고 표현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무성하고 이끼들이 길다
그 위에 얼음 결정체가 올라 타고 있는데 그 결정체의 빛깔이 마치 투명한 보석이 빛을 굴절시키는 모습 같다.
여기까지 올라 왔을땐 길이 중간중간 끊어지길 반복했다.
때론 개울 따라 가다가 아예 길이 없어 돌아나와 바위 절벽 위로 간 곳도 있다.
전체가 하나의 바위 같은 곳.
거대한 바위 개울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중.
어마어마한 양의 낙엽들이 물과 뭍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다.
이 낙엽이 얼마나 두터운지 깊은 곳은 무릎까지 올라 온다.
근데 낙엽 트라우마가 생겨서 서로 눈치를 보다가 내가 소심하게 앞장 섰다.
이 부근에서 간소한 배낭 차림으로 상류에서 내려 오는 젊은 트래커를 만났다.
대충 길이나 여쭤보는 건데...
첫 인상이 상당히 선해 보이면서 패기찬 표정이었는데 우리가 그때 워낙 소심해져서 상류에서 내려오는 용기를 상당히 동경했던 거 같다.
거의 가공되지 않은 골짜기라 이런 모습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두터운 얼음 밑에도 자연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었구나.
급한 마음에 아이뽕으로 찍었다.
누가 봐도 길이란게 모호해지기 시작한 건 꽤 지났고 개울 따라 이렇게 올라갔다.
돌도 점점 작아지고 밟으면 움직이는 게 많아져 자연 앞으로 진행이 더뎌졌다.
계곡의 폭도 상당히 좁아져 개울을 벗어나 기댈 만한 곳조차 없다.
아이뽕으로 찍은 사진은 촬영 위치가 자동으로 입력되는데 이 사진은 위치 정보가 전혀 없어 당시 꽤 오랜 시간 통화권 이탈의 질곡에 묶여 있었다.
결국 길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개울마저 엄청난 양의 낙엽들이 삼켜 버렸다.
한번씩 낙엽을 밟아서 다리가 쑥 빠진 걸 경험한 마당에 이런 장면에선 도저히 낙엽을 믿을 수 없어 이번 여정은 여기까지 하기로 결정했다.
휴대폰 안테나조차 길을 잃은 마당에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용소폭포로 인해 스릴에 모든걸 걸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꽤 많은 시간이 지나 짧아진 겨울해를 신경 써야 되므로 우린 빠르게 하산했다.
이건 8교에서 바라본 7교의 모습인데 제법 개울 폭이 넓고 부근 길도 변칙적이었다.
용소폭포를 바라고 나아간 트래킹에서 거의 목적지까지 가까워진 상태에서 돌아선 이 찝찝한 기분은 한참 지나서 사진을 보니 그대로 재현된다.
지도 없는 여행을 즐기다 보면 가끔 직면하게 되는 난관이 사전 지식이 없단 것!
발동하는 오기를 빌미로 다음 초겨울에 한 번 그 진면목을 다시 되새겨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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